대 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시경제, 정치, 및 문화적 이슈와 더불어 시대와 동시대적으로 흐르는 철학과 관습적 이해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세계 유수의 도시들이 광역적으로 연결됨에 따라 지적 자산의 공유가 가능해졌으며 경제와 문화의 연관성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연관성은 미술 시장에도 적극 반영되고 있다. 국가 간 미술품의 거래량은 그 나라의 재정적 상태를 반영한다는 것이 요즘 미술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자산이 그 나라의 재정 상태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가령 문화적 자산이 많은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들이 경제 규모가 크지 않은 것이 좋은 예다.최근 현대 미술을 보면 중동의 캘리그래피(Calligraphy), 추상화, 사진, 서양의 어반(Urban) 아트와 그라피티 아트, 그리고 일본과 동양의 젠, 망가와 애니메이션 아트로 구분 지을 수 있다. 특히 일본 망가(만화)는 어린 아이들이 보는 수준을 뛰어넘어 예술적 경지에 이르고 있다. 동양만의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낸 것 치고는 굉장히 훌륭하다.망가 아트의 대표 주자로는 무라카미 다카시와 요시토모 나라를 들 수 있다. 무라카미의 1998년 작 ‘마이 론섬 카우보이(My Lonesome Cowboy)’는 최근 소더비 미술 경매에서 158억 원이라는 경이적인 가격에 낙찰됐다. 이는 추정가의 5배를 웃도는 것으로 아시아 현대 미술품 중 최고가이기도 하다. 참고로 무라카미는 올해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무라카미의 혁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카이카이 키키(kaikai kiki)’라는 회사를 설립해 명품, 미술 딜러, 브랜딩 및 아마추어와 프로작가들을 위한 아트페어 ‘게이사이(Geisai)’ 등을 개최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중국의 이우 웨나 헝퉁 루, 웨이 지아, 영국의 뱅크시와 론 잉글리시 또한 현대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는 신진 작가들이다. 물론 작품 가격 역시 비싸다.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앞으로 좋은 작품과 작가는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튼튼하면서도 수요층이 두터운 성숙된 곳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인도와 중국 등 신흥시장보다는 일본 미국 영국 등 미술 시장의 성숙도가 큰 지역을 주목하라고 강조하고 싶다. 젊은 작가의 작품에 투자할 때는 향후 계속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지 우선 살펴야 한다.장르로 보면 현대미술과 사진 시장이 급부상할 전망이다. 소더비, 크리스티 등 주요 경매 회사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들 장르는 2000년 대 접어들면서 가격이 큰 폭으로 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거대 자본들이 주춤거리는 사이 중국 인도 러시아 등 브릭스로 대표되는 신흥국가의 수요가 커지면서 전반적으로 미술 시장의 규모를 더욱 키우고 있다.미술은 앞으로도 괜찮은 투자 상품이다. 미술품도 경기의 영향을 받지만 주식보다는 덜하다. 실제로 필자가 주식, 채권과 미술 시장의 장기 투자 수익률을 비교 분석한 결과 미술품의 가격 상승률이 이 둘을 크게 앞질렀다. 최근 3년간 미국 증시가 하락한 달을 뽑아 수익률을 조사했더니 S&P500지수가 56.5% 떨어질 때 예술품지수인 ‘아트100’은 오히려 2.1% 상승했다. 왜 이럴까. 우선 미술은 부호들이 주로 찾는 투자 상품이다. 이 때문에 경기 민감성이 적다. 전 세계 수많은 부자들이 주식·부동산과 함께 미술품으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경우 리스크를 줄이는 효과가 생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미술 시장을 모두 말할 수는 없다. 미술 투자는 기본적으로 시장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고 장기적인 투자가 뒷받침될 때만 수익이 좋다. 단기 수익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은 미술 투자 자체의 성격과 맞지 않다. 따라서 올바른 미술 투자의 개념을 정립하고 소더비, 크리스티 등 해외 주요 미술품 경매 회사들의 정보를 꾸준하게 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시아 미술 시장에 대한 관심 역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지난 수년간 각광을 받았던 중국 미술은 다소 침체기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중국 미술은 기존 서구미술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의미를 전달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중국인들의 정서가 혼합되면서 전혀 색다른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이에 대해 환호를 보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 쏟아지고 있는 작품들은 다소 실망스럽다. 가격적인 면에서도 다소 숨고르기가 필요한 시점이다.한국 역시 일본과 비슷한 팝아트 쪽이 강세인 것 같다. 마릴린 먼로, 미키마우스 등이 소재로 등장하는 팝아트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은 베이비 부머들이 미술 시장에 진입하며 팝 아트 가격이 폭등했다. 따라서 앞으로 시장은 네티즌 세대가 주력이 될 때를 대비해 빠르게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정작 한국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자국 미술의 우수성을 생각하는 것은 미술 투자에 있어 기본이다. 일본의 망가가 한 장르를 열었듯 한국 미술도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 미술 투자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기호를 찾아가는 즐거운 여정이며 이를 위해선 미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바탕이 돼야 한다.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 ‘아트 비즈니스’ 부문 대표런던시티대 박사베이징,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 교육 분야 명예 감독이안 로버트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