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금리 하락기 투자 원칙

하반기 재테크 전략을 수립할 때 가장 먼저 염두에 둘 요소는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의 도래다. ‘실질금리 마이너스’란 은행예금에 저축했을 때 물가가 오른 부분을 빼고 나면 손에 남는 것이 거의 없음을 뜻한다. 지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대비 4.9%로 높아짐에 따라 연 5%대에 머물러 있는 은행예금을 조만간 추월할 기세다.실제로 지난 2004년에는 실질금리가 ‘0’ 이하로 떨어지면서 가계 금융자산 운용에 큰 변화가 왔었다. 2004년 8월의 경우 은행 저축성 수신 평균 금리는 3.7%였던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4.8%를 기록해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1.1%로 낮아졌다. 그러자 시중 자금이 은행을 탈출하기 시작했다.은행의 저축성 예금은 2003년 말 470조4000억 원에서 2004년 말 463조1000억 원으로 7조4000억 원 감소했다. 반면, 적립식 펀드를 필두로 한 주식형 펀드는 고속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4년 말 8조6000억 원에 불과했던 주식형 펀드 잔액은 2005년 말 26조2000억 원으로 증가했고 오늘날 140조5000억 원에 이르렀다.이에 따라 우리나라 개인 금융자산의 구성비도 달라졌다. 예금은 2002년 54.3%에서 2004년 50.4%, 2007년 42.9%까지 낮아진 반면 주식과 펀드의 비중은 각각 2004년 16.7%, 5.2%에서 2007년 21.2%, 9.8%로 각각 높아진 것(표1). 향후 실질금리가 또다시 마이너스에 진입하게 되면 자산운용의 변화도 속도를 더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렇다면 2004년 당시와 2008년 현재는 어떻게 다를까. 가장 특징적인 차이점은 2004년 실질금리 하락의 주요인이 ‘금리 하락’에 있었던 반면 최근 실질금리 하락의 주요인은 ‘물가 상승’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실질금리가 하락하고 있다’는 현상은 동일하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현재의 투자 환경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사실 2004년 이후 저금리 국면에서는 주식뿐만 아니라 부동산, 상품(Commodity) 등 실물자산의 투자 매력이 모두 증가했고 이후 풍부한 유동성이 몰리면서 수익률도 높았다. 부동산의 경우 주택 담보대출이 2004년 16조4000억 원, 2005년 20조6000억 원, 2006년 26조8000억 원으로 각각 늘어나면서 주택 가격의 상승을 부추기도 했다.기업 입장에서도 금리 하락은 금융비용의 절감을 가져와 이익이 호전되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기업들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거치면서 부채 비율을 낮추는 등 재무 구조를 지속적으로 개선했다. 주식시장의 투자 대상이 결국 기업임을 고려할 때 2004년 이후 주가 상승은 기업의 이익 성장 및 건전성 확보를 바탕으로 한 이유 있는 상승이었다고 판단된다.한편 최근 물가 상승의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매출액 대비 재료비 비중은 2003년 31.7%에서 2007년 35.5%로 높아졌는데, 제조업의 경우 2003년 51.2%에서 2007년 53.5%로 더 높게 나타났다. 이는 기업의 수익성 측면에서 이익 성장의 둔화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주식시장에 비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다시 말해, 실질금리가 하락함에 따라 현금성 자산인 은행예금보다 주식, 부동산, 상품과 같은 실물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나은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4년처럼 모든 자산 가격이 크게 상승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물가 상승은 개인의 가처분소득을 축소하고 소비 심리를 위축해 내수경기의 회복을 저해한다. 부동산의 경우에도 약점은 있다. 이전 정부의 부동산 관련 규제 강화로 이미 투자 매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서 규제가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고는 있지만 거래 활성화 및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 공급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어 투기적 수요의 제약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예를 들어 현 세제가 유지되는 한 부동산 가격이 올라 수익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이익 실현 시 세금을 내고 나면 실제 수익률이 높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물가 상승은 금리 상승을 자극하는데 2004년 누렸던 레버리지 효과(대출을 받아 투자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를 이번 2008년에는 기대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돌이켜보면 2004년은 투자 환경이 상대적으로 좋았던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또다시 실질금리 하락 국면을 맞고 있는 2008년도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되돌아보면 역시 ‘기회의 순간’이었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투자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하게 고민할 것이다.그러나 오히려 우리가 지금 맞고 있는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는 투자 전략을 잘 세우지 않으면 수익을 덜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진한 결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금리 하락형이 아닌 물가 상승형 실질금리 하락 국면에서 투자 전략은 다음 세 가지 원칙을 기준으로 세워볼 만하다.첫째, 투자 대상 자산 군은 현금성 자산보다 실물자산을 선호한다. 지난 2004년 3% 중반에 비해서는 은행예금 금리가 올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5% 대에 머물러 있어 절대 수준 자체가 낮고, 여기에 물가상승률까지 고려할 경우 실현 수익률은 매우 저조해진다. 따라서 주식, 부동산, 상품 등 실물자산 군을 선정해 동 자산군 내에서 투자 대상을 선별한다.둘째, 투자 대상을 선정할 때 수익성뿐만 아니라 리스크도 함께 고려한다. 주식은 원가 상승 부담에 따른 이익 성장 둔화 가능성, 부동산은 투기 수요에 대한 높은 세율 및 금리 상승에 따른 대출이자 부담, 상품(Commodity)은 대체재 출현 및 가격 하락 반전 시 변동성 확대, 밸류에이션 산정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 수익성만을 좇아서는 안 된다.셋째, 자산군 내에서 실질적인 투자 대상 선별에 더욱 주력한다. 인플레이션 주도형 실질금리 하락 국면에서는 주식, 부동산, 상품 등 어느 자산이 가장 좋다고 판단하기 어렵고, 설사 주식이 좋다고 하더라도 모든 주식이 좋을 수 없는 제한적인 투자 기회가 발생한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견디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투자 대상을 선별하도록 한다.예를 들어 주식 투자에 있어서는 원가 상승을 제품 가격으로 전가할 수 있는 가격 결정력을 확보한 기업, 인플레이션과 함께 보유 자산의 가치가 상승할 수 있는 기업, 고유가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하는 기업(대체 에너지 개발 사업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거나 오일 달러의 투자를 받아 수주 모멘텀이 증가하는 기업) 등에 관심을 기울여 볼 만하다.홈 경기에서는 이기는 데 원정 경기만 하면 꼭 지는 팀은 무엇이 문제일까. 징크스. 아니다. ‘실력’이 문제다. 2004년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에 편안하게 홈 경기를 하며 우수한 성과를 거뒀던 투자자라면 2008년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에는 원정 경기를 떠난다는 생각으로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할 것이다.황금단 삼성증권 투자정보파트 연구위원 kd.hwang@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