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진 빅뱅티앤씨 대표
범한 은행 여직원이 연간 약정액 120억 원을 목표로 하는 자산 컨설팅 회사 대표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내면에 숨어 있던 적극성을 재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종합 자산 컨설팅 업체 빅뱅티앤씨(Bigbang TNC)의 최성진 대표. 그는 “일선 창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은행원이었던 저를 크게 변화시킨 것은 1996년 가락지점에서 근무할 당시 경쟁과 이에 대한 보상을 일깨워준 지점장님”이라고 회고했다. 당시 내부 경쟁이 그다지 치열하지 않았던 축협에서는 보기 드물게 각종 전국 대회 우승을 목표로 직원을 강하게 독려하는 새 지점장이 온 것. 이에 자극받은 그녀도 입사 후 처음으로 구체적 목표를 세우고 도전에 나섰다. 1998년 축협 전체 직원 중 4위에 오르며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듬해에는 전 사원 중 종합 1위를 기록해 상금 1000만 원을 받았다. 직원 평균 연봉이 3000만 원 내외였던 당시 그녀는 상금 등으로 일반 직원의 두 배가 넘는 월급을 받으며 스스로의 가능성에 놀랐다고 한다.2002년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와 ING생명으로 옮긴 후 그는 영업부문에서 본격적으로 역량을 발휘했다. 2007년 국내 23만 명의 보험 재무설계사(FC: Financial Consultant) 가운데 단 0.01%만이 영광을 누릴 수 있는 TOT(Top of Table)에 뽑힌 것. TOT는 2007년 현재 국내에 단 30명뿐으로 연봉이 5억 원에 달한다. 평생 동안 보험 FC를 해도 달성하기 어려운 영광을 그녀는 ING로 옮긴 지 단 5년 만에 해냈다. 앞서 2005년에는 국내 판매 실적에서 4위(30대 여성으로는 유일)에 올라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ING가 전 세계적으로 발간하는 연간 보고서의 표지인물을 장식하기도 했다. 보험 FC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작년 10월 그녀는 회사를 박차고 TOT 3명이 주축이 된 빅뱅티앤씨를 설립해 업계의 시선을 끌었다. 보험업계 최고 영업맨인 TOT들이 힘을 합쳐 독립회사를 설립한 일은 극히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기존 보험 영업은 인해전술 방식이어서 고객의 질보다는 양을 중시하고 일단 가입하고 난 후에는 고객을 크게 챙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관행에서 탈피해 고객과 프렌드십을 구축할 수 있는 자산 컨설팅으로 업계에 빅뱅을 일으켜 보고 싶어 독립을 결심했다”고 말했다.하지만 이 같은 표면적 배경 이면에는 ‘꼭 내 회사를 차리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개인적 아픔이 자리하고 있다. 네트워크도 넓히고 공부도 할 겸 지원한 한 대학의 최고경영자(CEO)과정에 합격했으나 입학을 불과 하루 앞두고 취소 통보를 받은 것. ‘보험 FC를 CEO과정에 입학시킨 전례가 없다’는 게 학교 측의 이유였다. “당시에는 정말 화가 나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분한 마음에 인권위원회 등에 제소하는 방법도 생각했어요. 주변 분들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며 힘을 북돋워줬어요. 일단 학교 측에 입학 취소 이유에 대한 설명이나 듣자고 찾아갔는데 이 과정에서 얘기가 잘 풀려 결국 입학해 다녔어요. 이때부터 나중에 꼭 내 회사를 갖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고객 확보 비결을 묻자 최 대표는 ‘경청의 기술’이라는 의외로 간단한 답을 내놨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호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가 말할 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진심으로 들어야 해요. 누군가의 자녀가 자폐증에 걸렸다면 내 자식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진정성을 전달하면 말 한마디로도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요.”또 다른 비결은 배움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아닐까. 강릉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축협에서 근무하면서 늘 공부에 대한 아쉬움을 가졌던 그는 2001년 한양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해 만학의 물꼬를 텄다. 이후 서울시립대 한양대 한국체대 고려대 등에서 CEO과정을 수료했다. ING생명의 FC로 지낼 당시에는 “일반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신뢰를 갖지 못한 부자들이 많으니 직접 부동산 공부를 해보면 고객 유치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고객의 제안에 9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에 입학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석사학위 2개와 4개의 CEO과정 수료증을 갖고 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한 뒤 여성들이 더 이상 배우지 않는 것은 스스로 방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CEO과정에도 여성의 비율이 15% 정도에 불과해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대한상사중재원이 진행하는 중재CEO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보험 분야의 분쟁을 중재하는 자격증을 부여받을 수 있어 실제 업무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반기에는 4년 장기 계획으로 경영대학 박사과정에도 도전해 볼 계획이다.때론 학교에서 만난 동료가 인생의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한양대 대학원 재학 시절 만난 ING생명 FC 동기는 은행 업종만 알던 그에게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해줬다.“사교성이나 영업 스킬이 딱히 탁월해 보이지도 않는데 연봉이 1억 원이라는 얘기에 놀랐어요. 저는 당시 축협에서 비과세저축 캠페인, 축협공제, 복권 판매 등 갖가지 대회에서 우승하고서야 1억 원가량을 받고 있었거든요. 마침 대학원에 다니면서 은행 업무를 병행하기가 벅찬데다 지금 정도 노력이면 보험업계에 가서도 대학원 동기 이상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어요.”ING로 옮긴 후 그녀의 목표는 연봉 3억 원. 당시 서른두 살의 새내기 여성 FC의 목표치고는 너무 높아보였지만 은행에서 발견한 스스로의 가능성에 자신감을 가졌다. 우선 자신에 대한 투자부터 아끼지 않았다.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키우기 위해 백지연 아카데미에 다니고 걸음걸이 교정을 위해 모델라인에도 등록했다. 차는 움직이는 사무실이라는 생각에 승용차도 BMW로 업그레이드하고 골프도 배웠다. 최 대표는 “보험 판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을 파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첫 만남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게 경쟁력”이라며 “주변에서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했지만 저는 고객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고 그게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최 대표는 보험뿐만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긍정적 사고라고 강조한다. “보험업계에 첫발을 디뎌 영업을 시작할 때 회사가 정해준 매뉴얼대로 하면 한 달에 200만 원 정도 수입이 가능합니다. 조금 더 노력하면 400만∼500만 원도 가능하고요. 남보다 두 배 이상 뛰면 1000만 원까지도 되는데 여기서 2억 원 이상 연봉에 도달하려면 노력 외에 이론과 마케팅 능력을 개발하는 적극적 영업 마인드가 필요합니다.”빅뱅티앤씨 설립 후 그가 참석하는 모임은 15개까지 늘었다. 중소기업 오너 및 CEO들이 참석하는 다양한 모임에 참석해 특화된 맞춤 서비스를 앞세워 고객을 늘려가고 있다. 현재 빅뱅티앤씨가 확보한 금융자산 30억 원 이상의 거액 자산가는 70여 명. 최근에는 30억 원짜리 종신보험 고객들도 잇달아 유치했다. 최 대표는 “거액 자산가들의 가장 높은 관심사가 증여와 상속인만큼 종신보험이 상속 증여가 용이하면서도 펀드 등을 포함한 상품 구성을 통해 수익성까지 챙길 수 있는 상품인 점을 집중 부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업계에서 부러움을 살 정도로 보험 FC로 성공을 거뒀지만 마음고생과 직업병이 생길 정도로 심리적 압박도 적지 않다. 최 대표는 “하루 종일 고객들을 만나기 때문에 항상 당당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크다”며 “특히 대화 도중 상대방의 자산 상태를 파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깜짝깜짝 놀란다”고 털어놓았다.앞으로의 포부를 묻는 질문에 그는 “고객이나 컨설턴트 한쪽만 만족하는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실패한 영업”이라며 “외형적 성장보다 도움이 필요한 고객에게 정확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회사로 키워보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