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K스페셜 다큐멘터리 ‘세계의 철강대전’

리나라 상장 기업의 평균 연령은 30년 정도다. 80년이 넘는 기업은 5개에 불과하다. 비상장 기업까지 더하면 평균 수명은 더 짧아진다. 기업이 단명하는 현상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유럽 스트라틱 컨설팅 조사에 따르면 유럽과 일본의 기업은 평균 13년이다.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은 사람이나 기업이나 다를 바 없다. ‘지속가능경영’, ‘100년 기업’이 현대 경영의 화두로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역으로 보면 기업의 장수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시장의 변화 속도가 무척 빠르기 때문이다. 강산이 변하는 주기는 10년이지만, 기업 환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더구나 세계 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개별 국가의 ‘보호장벽’이 거의 무너지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도 이젠 미국 일본 유럽 기업과 경쟁하며 생존을 모색하고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당장 수익을 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가롭게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만족할 여유가 없게 된 셈이다.따라서 세계의 기업들은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고,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기업들이 가장 많이 쓰는 전략은 인수·합병(M&A)으로 신사업 진출은 물론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지름길로 여긴다. 여러 업종 중에서도 철강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M&A 전쟁이 가장 치열하다. 업계 판도가 하루 아침에 바뀌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기업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정도로 무섭고 격렬하다. 에너지 항공 자동차산업에서도 M&A는 활발하지만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군웅할거 시대로 접어든 반면, 철강업계에서는 ‘1인 천하’ 시대가 열리는 모양새다. 포연이 자욱한 전쟁터에서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든 기업은 인도의 철강 기업 미탈 스틸(아르셀로 미탈)이다. 마치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처럼 무서운 기세로 세계의 철강기업들을 수중에 넣고 있다.최근 한국경제매거진이 출간한 ‘세계의 철강대전’은 제철소를 한 번도 지어본 적이 없는 무명의 철강 기업 아르셀로 미탈이 2위가 따라올 수 없는 세계 1위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실감나게 다뤘다. 책은 271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두껍지만 그 내용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역시 M&A다. M&A는 먹고 먹히는 ‘게임’으로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글이나 다름없다. 저자인 NHK다큐멘터리 팀은 미탈 스틸의 치밀하고 과감한 공격과 아르셀로와 신일철, 포스코 등의 방어 전략을 세밀하게 포착해 생생하게 전달했다. 특히 다큐멘터리 팀은 미탈 스틸의 오너 락시미 미탈은 물론, 전쟁이 난 지 5개월 만에 항복 깃발을 든 아르셀로의 최고의 경영자(CEO) 로랜드 융크, 미탈의 공격에 맞서고 있는 신일철의 미무라 아키오 사장과 포스코의 이구택 회장 등 세계 철강 업계를 움직이는 거두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등 ‘커튼’ 뒤편의 이야기까지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흔히 ‘철은 산업의 쌀’이라고들 한다. ‘산업의 쌀’을 두고 벌어지는 세계의 철강대전은 그래서 더욱 드라마틱하고, 그래서 현대 기업 경영에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다.NHK다큐멘터리 지음 정연태·조항 옮김 / 1만2000원권오준 기자 jun@prosume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