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지만, 과연 모든 작가의 작품이 다 그럴까. 시장에서 이름이 오르내린다고 모두 잘 팔릴까. 인기는 한쪽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최근 (사)한국미술정보연구소와 경희대 최병식 교수가 함께 진행한 ‘코리아 아트인덱스’ 집계에 따르면 수요자의 관심이 어느 작가에 쏠려 있는지 알 수 있다.예를 들어 지난 10년간 미술품 경매 낙찰 총액을 기준으로 ‘작품이 가장 많이 팔린 작가’에 관한 통계 결과를 보면 1위는 박수근(320억8300만 원), 2위는 이우환(249억9800만 원), 3위는 김환기(227억8100만 원) 등이며 이대원 김종학 천경자 오치균 장욱진 도상봉 백남준 등이 뒤를 이었다. 주목할 점은 주요 순위에 작고 작가나 기존 원로 블루칩 작가 사이에 중진 작가 오치균이 오른 점이다. 지난 10년을 집계했는데 불과 2년 내외에 급부상한 중진 작가가 상위권에 진입했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만큼 현재 활동 중인 현역 작가들도 잠재적 시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더욱이 ‘지난해 그림 값이 급상승한 작가 순위’ 1위가 이석주라는 점 역시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뒤를 따르는 작가들이 오치균 권순철 이숙자 사석원 김병종 등임을 감안할 때 시장의 중심에서 밀려났었지만 탄탄한 기반을 갖춘 다른 중진 작가들도 충분히 재도약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이석주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1970년대 하이퍼 리얼리즘 세대의 주역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를 극사실적인 표현 기법으로 재구성한 그의 작품은 보는 이를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가령 자주 등장하는 시계나 말, 달리는 기차 등은 깊이 잠들었던 인간 본연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무한히 펼쳐진 시공간을 가로질러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간의 굴레를 맴도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초기 작품들은 삶의 현장을 주제로 ‘익명의 도시인’들이 건네는 고뇌와 사색을 보여주었다. 공허한 권좌를 상징하듯 구겨진 천을 뒤집어쓴 텅 빈 의자는 인간 욕구의 무상함을 말하는가 하면, 간간이 공중을 유영하듯 떨어지는 낙엽이나 꽃잎들은 거스를 수 없는 시간성이나 덧없음을 전하려는 것은 아닐까.최근에는 도시적인 모티브와 자연적인 모티브를 동시에 나타내고자 시도한다. 간혹 내면 풍경의 우울하고 서사적인 개인사가 연상되지만 여전히 화면 가득히 감도는 서정성은 그만의 매력적인 장치로 통한다.김근중은 이제 ‘모란 작가’로 통한다. 이전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십수년은 고구려와 돈황벽화의 모티브를 차용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하지만 잠시 휴지기를 거쳐 새롭게 선보이고 있는 최근의 ‘모란’ 시리즈 역시 매우 남다른 인상을 전한다. 화려한 원색을 앞세운 작품의 이미지는 모두 전통 화조화와 민화를 현대적 조형어법으로 재해석한 것이다.이미 알려졌듯 모란은 ‘부귀영화’의 대명사다. 특히 궁중이나 사대부의 규방을 독차지할 정도로 그 입지는 대단하다. 가장 황홀한 결혼 장면에도 풍성한 모란 병풍은 예외 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김근중에게 모란은 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굳이 모란으로 보이지 않아도 좋다. 겉으론 꽃의 형상을 가졌지만 오히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존재감’에 가깝다. 그 상징성은 바로 우리 마음속에 내재된 아름다움에 대한 시각적 잔상인 셈이다. 거기에 생뚱맞게 등장하는 말 풍선이나 캐릭터, 혹은 바탕에 자막처럼 깔린 영어 단어와 문장, 그것은 무심결에 내비친 감탄사이거나 우리 속마음의 독백이다.정복수에게 있어 아름다움은 추함으로부터 출발한다. 사실 미에 관한 판단 기준은 관점의 차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아름다움에 대한 척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정복수가 보여주는 관점 역시 그런 미의 양면성을 적나라하게 노출한다. 그리고 그의 주된 표현 수단인 인체야말로 온갖 모순적인 가치 부여의 집합체임을 고발하고 있다. 특히 그가 화두로 삼은 우리 사람의 몸은 익숙하지만 결코 친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구토하는 모습, 인체해부도처럼 내장기관이 훤히 드러난 몸, 만화 속의 인형을 닮은 가족 군상 등. 이런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그가 구사하는 조형어법 또한 다양하다.정복수가 전하는 메시지는 의외로 간단한 측면도 있다. 아름다움의 양면성처럼 우리 인간이 지닌 두 개의 초상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아무리 고귀하고 고상함을 추구하고 있다지만 누구나 밥 먹고 똥을 싼다. 정조와 순결을 얘기한다지만 본연의 원초적 교감인 섹스를 외면할 수는 없다. 이렇듯 두 얼굴의 가면을 쓴 우리의 초상을 거부감 없이 희화화하는 것이 바로 ‘정복수 스타일’이 아닐까.임근우의 일관된 명제는 ‘고고학적 기상도’다. 사전적인 풀이로는 ‘인류의 지난 생활사 전반을 과학적인 연구를 토대로 살펴서 미래를 예측해 본다’는 정도겠다. 제목이 언뜻 어렵게 느껴지지만 그림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의외로 쉽게 풀어갈 수도 있다. 우선 자주 등장하는 형상을 살펴보면 메인 테마를 이끄는 모티브로서 중절모가 눈길을 끈다. 이는 중절모가 작가 자신도 애용하지만 고고학자들이 즐겨 썼던 모자라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바탕에 보조적으로 등장하는 형상들도 다양하다. 화석처럼 평면적으로 처리된 말의 형상, 돌도끼나 화석 잎사귀, 오래된 토기 형상, 나선형 이미지나 꽈배기 형상 등 매우 다양하다. 이 중에서 구름과 소용돌이 모양 등은 날씨나 기류 현상을 암시할 것이다.작가에겐 발굴 그 자체가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을 통해 겹겹이 쌓인 시공간의 벽을 극복해서 현재의 존재감을 새롭게 깨우쳐 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결국 그가 내보인 표상들은 무수한 시간의 지층이자 세월의 두께를 말한다. 그것은 다시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이며 살아나갈 미래의 운명을 전하는 매개체일 것이다.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