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도자기 그라피티로 등단한 도예 작가 이진

, 에너지, 그라피티 그리고 소통’이라는 주제의 그라피티 도예 전시회로 데뷔전을 치러낸 작가 이진을 신사동 주갤러리에서 만났다.“예로부터 훌륭한 문화유산인 우리나라 도자기에 새로운 문화 에너지를 담아 세계인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우리 민족의 에너지를 그라피티 방식으로 낙서하듯이 그려봤죠.”그녀의 작품엔 한국인의 뜨거운 심장이 담겨 있다. 한국인의 혼이 담겨 있다.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사명감이 실려 있다.그녀에게 한국인이라는 사명감이 그 어느 누구보다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고종 황제의 증손녀이자,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손 이석 씨의 1남 2녀 중 둘째 딸이라는 사실 때문. 하지만 황제의 후손으로 대한민국 현재를 살아가던 그녀는 그 사실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을 ‘최초로 그라피티와 도자기의 만남을 시도한 도예작가’로 봐주기 바란다. “사람들은 제가 특별한 인생을 살아왔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남들이 다 어려웠던 외환위기 땐 저도 집에 보탬이 되기 위해 돈을 벌었죠. 대학 때 호주로 워킹 할리데이를 떠나 GMF란 의류 업체에서 일하며 학비를 벌었어요. 2002년 한·일 월드컵 땐 KT에서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죠. 졸업 후엔 외국계 정보기술(IT) 업체에서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피는 속이지 못하나 봐요. 집안 여성들이 대부분 문화 예술이나 사회복지 쪽에 종사하고 있듯, 저도 어느샌가 문화의 매력에 빠져 이 길을 택하게 된 거죠.”진로를 다시 정하려고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학을 공부하던 그녀는 터키 여행 중 우연히 알게 된 도자기 예술에 매료됐다. 이스탄불에서 3대째 내려오는 도자기 장인의 집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체험을 하게 되고, 그때 처음으로 흙을 느껴봤다. 도자기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경희대 도예과의 만학도가 된 그녀는 아버지의 소개로 무형문화재 호봉 장송모 선생의 제자가 됐다.“이번 제 작품 중 조선백자 형태에 스텐실 기법을 사용한 것은 모두 호봉 선생님께 영향을 받은 것이죠. 전체적으로는 한국의 도자기가 세계적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도자기의 혼에 열정적인 에너지를 담고 싶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에너지가 많아요. 그걸 분출하고 싶었고, 그 기제로 스프레이 건을 사용했어요. 뿌리는 방식으로 에너지 분출을 시도한 거죠. 그리고 소통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거리의 예술인 그라피티를 도자기에 접목하게 됐습니다.”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총 50여 종으로 도자 물감을 이용한 스텐실 그라피티 방식으로 제작됐다. 스텐실 그라피티는 영국의 그라피티 작가로 유명한 로빈 뱅에 의해 시작됐으며 이진 작가의 도자 물감을 이용한 ‘도자기 그라피티’는 세계 최초. 미술계가 이번 전시회에 거는 기대는 그만큼 크다.“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고모할머니를 추모하면서 만든 작품이에요. 외국엔 아직 한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우리 것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도 작용했죠. 한글을 변형하고 제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색을 되도록 많이 첨가해 만들었어요. 무겁고 형식적이지 않으면서 기존의 것을 탈피했다는 평을 듣고 있죠. 그중에서도 ‘에너지가 넘친다’라는 평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아요.”곧 미국에 가서 MBA를 통해 못 다한 경영 공부를 마치겠다는 그녀. 도자기는 한국에서 배웠지만 문화예술경영 분야는 국내보다 발전한 선진국에서 배워오겠다고 당차게 말한다.“앞으로 7차례 전시를 더 가질 예정이에요. 3차 전시까지는 그라피티를 선보이고, 4차부터는 21세기에 맞는 색다른 분야를 접목하려고요. 미국에서 공부를 더 한 뒤에는 작가와 문화예술경영 전문가를 병행하려고 해요. 제가 작가로 자리 매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내 훌륭한 작가들을 외국에 알리는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이죠. 외국인들에게 한국 문화의 우수성과 매력을 널리 알리는 게 제가 가진 가장 큰 사명감입니다.”글 김지연·사진 이승재 기자 jykim@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