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부터 시작된 유동성 장세의 꿀맛을 봤던 개인 투자자들도 상하이지수 반 토막,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 국내 증시 급락 등의 대형 악재로 한바탕 마음고생을 치렀다. 최근 코스피지수가 장중 한때 1900선을 회복하면서 투자 심리가 다소 살아나는 모습이나 불안감은 여전하다.상반기 마감을 앞두고 주요 증권사들의 하반기 시장 전망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대체적으로 하반기 국내 주식시장은 상반기에 비해 분명 호전될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지만 잠재돼 있는 외부 변수가 워낙 많아 연초에 비해 보수적 전망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미국의 실물경기 침체를 두고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등 시장 외부 변수에 대한 증권사별 편차가 두드러지고 있다. 주요 증권사들이 내다본 하반기 국내외 증시 전망과 주요 변수, 유망 업종 등을 짚어봤다.지난해 말 올해 지수 밴드를 1600~2400으로 예상했던 것과 비교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으로 돌아섰다. 현재까지 하반기 전망을 내놓은 주요 증권사 가운데 대신증권이 최고치인 2300을 제시한 가운데 대우 현대 동부가 2200선, 우리와 신영이 2100선을 각각 올해 코스피 최고치로 잡고 있다. 지난해 4분기에 기록한 전고점 2080 돌파가 가능하겠지만 상승 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마디로 하반기 국내 증시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횡보 장세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하지만 이 가운데 삼성증권은 하반기 최고치를 1840 또는 1960선으로 제시하며 현 주가 수준이 결코 싸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그만큼 미국의 경기 침체와 국내 내수 회복을 두고 시각차가 크다는 지적이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미국 경기가 3분기에 최악의 상황을 지나면서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채권 부동산 주식 등 상품 간 수익률 경쟁 양상이 펼쳐질 것”이라며 “이 경우 상대적으로 투자 수익률이 높은 이머징 국가의 주식 선호 현상이 강화되면서 상승장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전략팀장도 “불확실한 경기 여건에도 불구하고 상반기 상장사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22.9%, 26.1%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상반기 경기 하강을 이끌었던 내수 역시 정부의 경기 부양책 및 기업 투자 증가에 힘입어 모멘텀상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반면 삼성증권은 미국발 스태그플레이션 리스크를 감안할 때 하반기 증시는 전고점 돌파도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나리오별로 달러 가치 하락세가 완화될 경우 1840~1950선, 달러 가치가 현재보다 더 급락하며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될 경우 최저 1540선까지 내려앉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의 신용 경색은 일단락됐으나 실물경제 위축은 하반기부터 본격화된다고 봐야 한다”며 “중국과 미국의 소득 불균형과 물가 압력 등으로 하반기로 갈수록 수요 둔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삼성증권은 특히 경영 및 재무상 레버리지 높은 기업이나 국가의 리스크가 한층 커질 가능성이 높다며 국가로는 중국, 국내 기업 중에서는 금호 두산 한화 STX 등의 레버리지가 높다고 평가했다. 또 그동안 투자 중심으로 성장해 온 중국이 올림픽을 전후로 수요 중심으로 변화할 것이란 전망에도 회의적 의견을 피력했다. 김 센터장은 “지금까지 중국 수요는 일부 부유층이 주도했으나 중국 내 소득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면서 소비 확대에 따른 성장 폭이 예상에 못 미치고 있다”며 “특히 신노동법에 따른 인건비 상승, 원자재 가격 상승, 소비 중심의 성장 전략 등으로 인해 기존에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큰 물가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하반기 증시의 아킬레스건은 인플레이션 압력이다. 이런 면에서 유가와 곡물 가격 등 커머더티(Commodity) 가격 상승세가 상반기와 같은 급등 추세를 지속할지가 인플레이션 여부를 푸는 핵심 고리라는 지적이다. 신흥 국가의 물가 구성에서 식료품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곡물 가격 급등세는 물가 상승 압력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신흥 국가의 물상 상승 원인 중 45%를 곡물 가격 상승이 유발한 것으로 분석됐다.원자재 가격 급등세의 첫 번째 함수는 미국의 금리 정책이다. 그동안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에는 미국 달러 약세에 따른 리스크 프리미엄을 겨냥한 투기 수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미국의 금리 정책에 의한 달러 약세의 변화가 관건이다. 증권사들은 향후 미국의 금리 인하 추세는 완화될 뿐만 아니라 이르면 1년 이내에 긴축(금리 인상)으로 돌아설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 현재 물가 상승 압력이 비교적 강하고 유동성 공급이 급격하게 늘어난 상황이라 미국 정부가 경기 침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어느 정도 진화되면 긴축 스탠스로 돌아설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CNN머니도 최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올해 말 혹은 대선 직전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성주 대우증권 팀장은 “금리 인하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고 달러 약세가 완화되면 원자재에 몰렸던 투기 수요가 감소하면서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도 낮아져 소비 수요가 한층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 팀장은 “미국의 금리 인하가 종반부에 들어서고 있어 그동안 주식시장을 철저하게 외면했던 투기적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며 “역사적으로도 금리 동결기로 접어들 때 리스크 프리미엄이 하락하면서 투기 수요가 이탈해 옮겨가는 특성을 보여 왔다”고 설명했다.실제 미국의 경우 역사적으로 주식시장이 금리 인하기보다 금리를 동결하는 기간에 보다 더 좋은 성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S&P500 기준으로 금리 인하 시기의 평균 수익률이 7.1%에 그친 반면 금리가 동결된 기간에는 평균 수익률이 17%를 기록했다. 동부증권도 “유가 등 상품 가격이 달러 약세 진정과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투기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하향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최근의 국내 증시는 4월 말을 기점으로 체계적 위험이 감소하면서 3분기까지 과실을 얻을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망했다.이 같은 전망을 종합해 보면 하반기 미국 달러 약세 완화, 원자재 투기 수요 감소, 곡물 유가 등 원자재 가격급등세 안정 등의 과정을 거쳐 인플레이션 압력이 낮아질 것이란 분석이다.하지만 일부에서는 원자재 가격의 핵심 변수를 투기 수요보다 수급에 더 무게를 두고 있어 향후 전망도 크게 다르게 내놓고 있다. 최근의 원자재 가격 급등세는 중국 인도 등 이머징 국가의 급증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금리 정책에 따른 달러 약세가 완화되더라도 인플레이션 압력 해소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마땅한 대체에너지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글로벌 유가 수요가 급증한데다 곡물도 구조적인 수급이 깨진 상황이라 하반기에도 원자재 가격 강세는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삼성증권은 물가 상승 압력을 기업의 생산성이 상쇄하면서 눌러왔던 미국에서조차 하반기에는 기업의 수익성이 약화되면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김학주 삼성증권 센터장은 “미국과 중국 내에서 소비의 한 축인 저소득층의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어 소비 심리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최근의 원자재 오름세를 투기 수요 측면보다는 구조적 문제라고 접근할 때 미국의 금리 인하 동결에도 불구하고 원자재 가격 강세에 따른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 압력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외부 변수에 대한 증권사의 전망이 크게 엇갈리면서 개인 입장에서는 투자 전략을 세우기가 한층 어려워진 상황이다. 하지만 주요 증권사의 하반기 전망 속에는 눈에 띄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불확실한 대외 변수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형 정보기술(IT), 자동차 등 일부 업종 내 선두 업체들의 실적은 하반기로 갈수록 더욱 좋아질 것이란 분석이다.특히 IT 관련주들의 경우 그동안 따로 움직이던 반도체 휴대폰 액정표시장치(LCD) 시황 사이클이 동시에 호조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이들 대형 IT들을 최우선주로 꼽는 증권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구희진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하반기로 갈수록 국내 기업들의 이익 개선 속도가 빨라지는 상황에서 한국 주식시장의 위험 대비 저평가 매력이 부각될 것”이라며 “특히 IT 업종은 올해부터 본격화되는 이익 개선과 2006년 이후 오랜 소외에 따른 수익률 키 맞추기 등으로 하반기에도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LG전자 삼성전기 LG디스플레이 등 대신증권이 뽑은 투자 유망주 25선 가운데 IT 관련주들이 대거 포함됐다. 대우증권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도 글로벌 내수 성장과 환율 수혜 폭이 큰 자동차 관련주와 업황 호조를 보이고 있는 간판 IT주를 유망 종목으로 꼽았다.또 은행 증권 등 금융주는 경쟁 격화 우려와 서브프라임 여파로 상대적으로 오랜 조정을 받고 있으나 4분기 이후 회복세를 보일 업종으로 평가했다.김학주 삼성증권 센터장은 “하반기 증시는 철저하게 실적호전주 중심으로 재편되는 양극화 현상을 보일 것”이라며 “현 정부의 친기업 정책도 수출주 중심으로 수혜가 집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동차 IT 관련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서용원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하반기 중 전 고점에 육박하는 완만한 상승세가 예상되므로 조정 시마다 비중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상승 추세 하단에서는 이머징 마켓의 고성장 수혜주(GS건설 한국가스공사), 서브프라임 관련 위험 증가로 주가 하락 시에는 미국 경제 회복 수혜주(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현대모비스), 초과 수익 종목으로는 신정부 경기 부양책 수혜주(현대제철 롯데쇼핑 우리금융) 등으로 투자 전략을 세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