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사태 이후의 금융시장 전망

가장 관심이 됐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와 같은 금융 위기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금융 위기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탐욕과 공포의 줄다리기에서 탐욕이 승리할 때 금융시장은 또다시 버블을 형성하고, 공포가 탐욕을 누를 때 시장은 위기를 맞는 과정이 반복되기 때문에 다음 금융 위기는 반드시 발생된다는 것이다.민스키 모델에서는 인간의 욕망이 도를 넘어 탐욕 수준으로 변질되면 투자자들의 심리가 급변하면서 ‘돈을 잃을 수 있다’는 심리가 확산돼 결국은 버블이 붕괴(boom&burst)되고 금융 위기를 맞게 된다. 대표적으로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 1997년 10월 아시아 외환 위기, 2007년 10월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신용 위기에서 볼 수 있듯이 10년마다 버블의 형성과 붕괴가 반복되는 10년 주기설을 들 수 있다.중요한 것은 현 시점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금융 위기는 언제 어디서 발생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지금까지 금융 위기의 시장별 발생 패턴을 종합해 볼 때 모기지 사태 후 다음 위기는 이머징 마켓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머징 마켓에서 발생한 마지막 위기는 1990년대 후반 러시아 모라토리엄 사태로 10여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이머징 마켓은 공포의 기억이 잊혀져 가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한국만 하더라도 외환 위기를 언제 겪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다행인 것은 JP모건은 이머징 마켓의 붕괴가 당장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는 점이다. 아직까지 이머징 마켓의 버블이 극에 달한 상황이 아니고 이번 모기지 사태처럼 금융시장 붕괴 직전에 극에 달하는 시장 모멘텀과 레버리지(차입 비율)가 관찰되지 않는 것이 당장 금융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낮게 보는 근거다.하지만 보고서는 원자재 시장의 고공행진이 이머징 마켓의 상황과 연결돼 있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머징 마켓 금융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의 대부분이 매수에 치중하는(long-only) 자금 또는 국내 예금이라는 점은 이머징 마켓의 과열 양상을 보여주는 증표라 보고 있다. 특히 상품 시장의 과열 정도가 높기 때문이다.지난해 2월 이후 1년 넘게 글로벌 금융시장을 휩쓸고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한마디로 금융의 증권화(securitization)의 명암이 극적으로 발현된 결과다. 저금리 시대가 시작된 2002년 이후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을 통해 당장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마저 유동화할 수 있게 되면서 금융시장이 만개할 수 있어 모기지 사태까지 이르렀다는 평가다.JP모건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증권화의 양상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변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금리가 낮은 단기 자금시장에서 유동성을 조달해 금리가 높은 장기 여신을 제공함으로써 예대마진을 챙기는 만기 불일치(maturity mismatch) 전략은 모기지 사태를 계기로 조달비용이 상승함에 따라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동시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주범인 부채담보부증권(CDO)의 발행은 2차, 3차에 걸쳐 재생산하는 구조가 사라지고 CDO 발행의 기초가 되는 자산도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이 아닌 회사채, 은행채 등 우량 자산으로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한동안 위축됐던 회사채 시장이 모기지 사태의 바닥론이 제기된 이후 활기를 찾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이 경우 CDO의 주요 매수 세력과 고객층도 헤지 펀드에서 보험사, 연기금 등 보수적인 투자자들로 바뀌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모기지 사태 이전까지 CDO의 주매수 세력은 헤지 펀드였다. 하지만 주요 자금 공급원이었던 단기 자금시장에서의 유동성 조달이 어려워지게 되면서 헤지 펀드들은 더 이상 CDO의 주고객 역할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헤지 펀드가 떠난 자리는 보험사와 연기금 등이 채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CDO 가운데 가장 안전한 대신 수익률이 낮은 보험사와 연기금 등 보수적인 투자자들이 CDO의 주고객층으로 떠오르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모기지 사태 이후 금융 구조와 산업은 은행과 머니마켓펀드(MMF), 헤지 펀드, 신용평가사, 채권보증사(모노라인) 등 금융시장 구성원들이 신용위기 이후 피해를 어떻게 복구할 것인지, 진로를 어떤 방향으로 수정할 것인지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무엇보다 전통적인 시중은행은 부채 비율 축소를 위해 개인예금 공략에 더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감독 기관이 은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자기자본비율을 상향함에 따라 은행은 더 안전해 지는 대신 수익성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변화는 감독 주무기관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로 이관될 것으로 보이는 투자은행에 주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MMF는 자금줄을 손에 쥔 은행권 공세에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수년간 계속됐던 MMF 시장의 급성장은 은행의 개인 예금 점유율을 잠식한 결과다. 은행권은 대출을 하고 이에 대한 이자를 받는(lend-and-hold) 방식에서 대출에 대한 채권을 유동화(lend-and-securitise)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변경하면서 개인 예금부문을 소홀히 한 반면 MMF는 고수익을 보장함으로써 개인 예금 시장의 고객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시중은행들이 강화된 금융 감독 하에 전통적인 영업 방식을 더 선호할 경우 MMF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바젤Ⅱ 협약이 추진돼 은행권에 대한 건전도를 더 강화해 나갈 경우 의외로 빨리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이번 모기지 사태의 주역인 헤지 펀드는 자금 조달처가 장기 시장으로 전환되면서 활동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용 위기로 인해 헤지 펀드들이 보유한 자산 가치가 급격히 하락해 헤지 펀드들은 마진 콜(증거금 부족분 보전 요구) 압력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만기 불일치 전략을 구사하는 헤지 펀드들로서는 단기 자금 시장이 경색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앞으로 주요 자금 조달처를 단기 시장에서 장기 자금 시장으로 바꿔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헤지 펀드와 함께 커다란 변화가 예상되는 신용 평가 회사들은 구조화 채권 평가는 사라지고 회사채 평가는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신용 위기는 평가사들이 최고 신용등급(AAA)을 남발한 채권이 신용 위기의 주범이 됐기 때문에 이번 모기지 사태로 신용이 크게 떨어졌다. 감독 당국은 이제 금융시장에서 신용 평가사의 역할을 축소하는 쪽으로 개혁의 방향을 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투자자들은 신용 평가사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나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모기지 사태 이후 부동산 등 자산 시장이 다시 꽃피울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좋았던 날은 되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투자자들은 유동성을 자유자재인 것처럼 부담 없이 누렸던 시대를 만끽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는 모기지 사태 이후 금융시장의 회복세가 더딜 것이라는 예상이라기보다 위기 이전 단기 자금 시장의 저금리 상황이 이례적이었다는 데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금융 당국의 규제권 밖에서 이뤄지는 단기 자금 시장이 빈사 상태에 빠지고 헤지 펀드와 MMF 등 단기 시장의 주요 참가자들이 퇴출되는 상황은 향후 금융시장이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뢰성이 떨어지는 금융시장 규제권 밖의 자금 시장은 사라지고 시장 참가자들 또한 신뢰성을 갖춘 프라이머리 딜러 대출(PDCF)을 통해 FRB 창구를 이용할 수 있는 구성원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970년 영국의 금융 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와 같은 심각한 금융 위기를 겪은 시장이 원상태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극복 과정에서 FRB가 새롭게 도입한 유동성 공급 제도는 향후 금융 감독 기구와 감독 방향에 많은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다. 국채임대대출(TSLF)과 PDCF의 도입은 한마디로 전통적인 상업은행에 한정돼 있던 FRB의 감독 권한이 투자은행은 물론 다른 금융사로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지금까지는 ‘글래스-스티걸법’ 하에서 FRB와 통화감독청(OCC) 및 연방준비은행급의 감독 기구가 상업은행을,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투자은행과 기타 금융회사를 관장해 왔다. 최근에는 대부분 미국계 상업은행이 투자은행 업무를 하는 반면 투자은행이 상업은행 업무를 맡는 경우가 드물다.앞으로 FRB 위주로 금융시장 감독권을 일원화하는 것은 시장 상황을 미루어 볼 때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지난 20년 동안 금융시장은 20여 개의 대형 종합 금융사가 출현해 채권과 외환, 파생상품 등 다양한 종류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취급한 반면 감독 기구는 여전히 국가별, 영역별로 구분돼 새로운 금융 영역에는 감독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이번 모기지 사태도 다양한 금융상품의 문제점이 세계적으로 번져나가는 동안 감독 기구들이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해졌다는 비판이 있는 만큼 감독 기관의 단일화는 적절한 대처 방안이 될 수 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발표한 ‘금융감독 개혁을 위한 청사진(blueprint for regulatory reform)’이 감독 기관을 FRB로 일원화하고 감독 권한을 보다 강화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와 별도로 금융 당국의 국제적인 공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신용 위기의 영향력이 국가 단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파급되는 양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각국 감독기관들이 자신들의 권한을 쉽사리 내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전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국제 감독 기구의 창설은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국내 금융사와 투자자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다가올 글로벌 금융시장의 이런 변화를 잘 읽고 선제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 겸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부소장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