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보상금이 토지 시장을 어떻게 불안하게 하는지는 경기도 시흥시의 최근 사례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시흥시 일대 땅값의 최저가는 3.3㎡(1평)당 40만 원이다. 지적도에 길이 없는 밭(맹지)이라도 30만 원대에는 매물을 찾아볼 수 없다. 재작년만 하더라도 28만~30만 원이면 구입할 수 있던 땅이다. 시흥시청 인근 중앙공인 관계자는 토지 보상금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제3경인고속도로 보상금이 풀렸는데 3.3㎡당 30만~36만 원 정도 지급되면서 어떤 땅이든 40만 원 밑으로 내놓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작년에 제3경인고속도로 부지 매입을 위해 풀린 토지 보상금은 2000억 원에 육박한다. 시흥시는 전체 면적의 70% 이상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고 필지가 커서 소액 투자가 어렵다. 땅값이 들썩이기 힘든 조건인데도 토지 보상이 맞물려 지난해 14.73%가 올랐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9번째로 높은 상승률이다.물론 시흥시 땅값 상승 원인을 토지 보상금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와 가까워 후광 효과가 예상되고 지난 3월 착공한 제2서해안 고속도로의 출발지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첨단산업단지로 조성할 시화 멀티 테크노밸리(MTV)도 개발 호재다. 그러나 현지 부동산 업계는 이러한 호재들은 이미 가격이 모두 반영돼 있었던 터라 최근의 땅값 오름세와는 큰 영향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오히려 토지거래허가제 때문에 외지에서 오는 매수자들의 발길이 끊긴 지 한참 됐다고 설명했다.주목할 만한 것은 매수세가 거의 사라졌는데도 땅값은 여전히 강보합세라는 것이다. 역시 토지 보상금이 원인이다. 시흥에서는 현재 장현택지개발지구가 이달 중순 보상을 앞두고 있다. 장현동 장곡동 광석동 능곡동 등 293만1330㎡다. 국민임대주택 6500가구를 비롯해 모두 1만5000가구가 들어서는 장현지구에는 5000억 원의 보상금이 풀릴 계획이다. 이곳에서 풀린 보상금 가운데 상당 부분이 주변 땅을 구입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호가가 떨어질 생각을 않는 것이다. 실제로 보상금을 받으면 땅을 사겠다며 매물을 알아보는 원주민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시흥시에서 보듯이 토지 보상금이 땅값을 자극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토지 보상금이 비싸게 책정돼 인근 땅값을 끌어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토지 보상금이 다른 부동산 매입 자금으로 쓰여 수요를 늘리는 것이다.문제는 토지 보상이 이뤄져 시흥시와 같이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땅값 상승세가 국토 전체로 확산된다는 사실이다. 토지 보상금을 받은 사람 가운데는 굳이 주변 땅을 사야 할 필요가 없는 지주가 많다. 토지 보상 대상자가 주변에서 부동산을 구입하려고 하는 이유는 세금의 영향이 크다. 보상을 받은 땅에서 실제 농사를 짓고 있었을 경우 인근 지역 땅을 살 때는 취득세(2%)와 등록세(2%)가 면제된다. 양도소득세도 1억 원까지 감면된다. 양도세가 1억2000만 원으로 계산됐다면 1억 원을 제외하고 2000만 원만 납부한다.하지만 농사를 짓지 않고 외지에서 생활한 지주는 사정이 다르다. 인근 지역에 땅을 샀다고 해도 세제 혜택이 전혀 없다. 보상금으로 받은 돈을 갖고 전국 어디에서 부동산을 구입하더라도 똑같은 세금을 낸다. 부재지주 입장에서는 땅값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한 실제 거주하지도 않을 지역에 부동산을 사둘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당연히 보상금은 전국으로 흩어져 토지 시장 전체를 뒤흔들게 되는 것이다.국토해양부가 한국토지공사 대한주택공사가 시행한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도시) 김포신도시 등 전국 131개 사업지구에서 작년 상반기에 토지 보상금을 받은 1만9315명의 1년간 부동산 거래 내역을 조사한 결과 금액 기준(가족 포함)으로 48.9%가 부동산 시장에 다시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 25%는 수도권 부동산을 매입했다. 서울 요지의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행정복합도시 등의 보상금 수령자가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고 전하는데 이것이 빈말은 아니라는 뜻이다. 지난해 영종도에서 토지 보상금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서울 강남권이나 수도권의 부동산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인 유엔알컨설팅의 박상언 대표는 “토지 보상금을 받으면 금융상품에 투자하기보다 다시 부동산을 사들이는 데 돈을 쓴다”며 “부재지주도 예외는 아니다”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실제 거주자가 아니면서 토지 보상을 받은 비율이 절반을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토지 보상금의 규모는 수십조 원에 이른다. 국토해양부가 밝힌 토지 보상금은 지난해만도 25조 원 정도다. 2006년 29조9000억 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참여정부 5년간 98조 원이 보상금으로 풀렸다. 올해와 내년에도 각종 택지 개발과 도로 조성 사업을 위해 많은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갈 전망이다. 토지공사 주택공사 한국도로공사 등 토지 보상 업무를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에 따르면 올해 토지 보상금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은 많지 않다. 주공은 지난해 4조4000억 원이었던 토지 보상금을 올해는 9조 원으로 책정했으며 도로공사는 2740억 원에서 4175억 원으로 늘렸다. 택지 개발이 주임무인 토공만 지난해 7조8000억 원이었던 보상금이 4조7000억 원으로 줄었다.주무 부처인 국토부도 토지 보상금이 땅값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올해 보상금으로 얼마가 풀릴 것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토지 보상 업무는 정부가 직접 하는 것이 아니고 사업 시행자들이 알아서 하는 일”이라며 “올해 토지 보상금이 시장에 얼마나 지급될지 모른다”고 말했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토부가 토지 보상금에 따른 지가 상승을 막겠다며 내놓은 대책들도 ‘약발’을 내지 못하고 있다. 토지 소유자가 요청할 경우 보상금을 채권으로 지급하는 제도는 1991년부터 도입됐지만 자발적으로 채권을 받아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2006년부터 부재지주가 받을 보상금 가운데 1억 원 초과분에 대한 채권 보상을 의무화했지만 실적은 극히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 국토부는 지난달 채권 의무 보상 기준을 사업 인정 고시일 현재 해당 지역 거주자에서 고시일 1년 전부터 거주로 강화했다.대토 보상도 인기가 없다. 대토 보상이란 일단 토지를 수용한 뒤 ‘개발된 땅’을 보상금 대신 주는 제도다. 작년 1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지만 토지 소유자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양주 옥정지구의 경우 토지 보상금 1조6000억 원 가운데 2.5%에 불과한 400억 원에 대해서만 대토 보상이 집행됐다.한 부동산 업계 전문가는 “각종 개발 사업으로 엄청나게 풀린 토지 보상금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크게 불안해진 것이 사실”이라며 “마땅한 해법을 마련하지 못한 채 지금처럼 토지 보상금을 무턱대고 쏟아내면 부동산 시장 안정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박종서 한국경제신문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