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바오 중국 총리는 올 초 “중국 경제가 올해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일 것”이라고 말했었다. 어려운 상황이란 경제지표의 악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도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국내외의 변수들로 인해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나타날 것이란 뜻이었다.원 총리의 말대로 중국 경제는 지금 진퇴양난에 빠졌다. 앞만 보고 계속 가자니 숨이 차고, 쉬어가자니 한번 앉으면 못 일어날 것 같은 그런 형국이다. 물가가 너무 뛰어서 긴축을 하고 싶지만 세계 경기가 침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중국의 이 같은 처지는 이달 초 열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원 총리가 밝힌 올해 정부사업보고에도 잘 나타난다. 원 총리는 물가 억제의 의지를 강력하게 내비쳤다. 유동성 환수, 가격 통제 등 모든 물가 억제 수단을 열거했다. 그는 “빠른 발전보다 좋은 발전을 지향한다”고 강조, 성장만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올해 성장 목표를 작년보다 3.4%포인트 낮은 8.0%로 제시한 것도 긴축에 따른 성장률 저하를 감수하겠다는 것이다.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고민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난다. 원 총리는 긴축에 대한 의지를 밝히면서 예금 지급준비율 인상을 언급한 반면 더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금리 인상에 대해선 “금리의 조정이 합리적 성과를 발휘하도록 하겠다” 정도로 말해 고민의 일단을 드러냈다. 당장 긴축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지만 만의 하나 지나친 긴축으로 경기가 경착륙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식품 공급의 안정화와 관련, “식량은 증산하되 야채는 시장에 맡긴다”고 말했다. 인플레 억제를 위한 정부의 직접 개입 범위를 놓고 갈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원 총리의 발언의 핵심은 물가와 과열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의 물가는 전례 없는 속도로 오르고 있다. 2006년 한 해 평균 물가상승률은 1.5%였다. 그러나 작년에는 4.8%로 뛰었다. 올 1월은 7.1%, 2월은 8.7%다. 국민들은 이런 오르막길을 1년 넘게 오르며 숨이 턱 끝까지 찼다.물가를 억제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금리 인상이다. 금리를 올려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하는 것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이다. 물론 작년에 금리를 6차례 올리고, 은행지급준비율을 10차례 상향 조정했는데도 물가가 계속 올랐다는 점에서 금리 인상 무용론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이번엔 올리더라도 아주 큰 폭으로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리를 큰 폭으로 두세 차례 올려야 한다(중국국제금융공사 하지밍 주임)”는 것. 그러나 미국 쪽을 바라보면 쉽사리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의 금리차가 벌어지는 게 골치다. 작년에 중국이 6차례 금리를 올린 결과 중국의 기준금리인 1년 만기 정기예금의 이자율은 4.18%로 뛰었다. 미국 기준금리인 연방기금목표금리 3%보다 높다. 미국은 금리를 다시 내릴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미국과의 금리차가 더 벌어지고 이에 따라 핫머니가 유입될 게 뻔하다. 이에 따라 “외환자금의 유입에 대한 통제를 먼저 강화하고 금리 정책을 써야 한다(리더쉐 전통계국장)”는 금리 인상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그래서 나온 게 환율조정론이다. 위안화 가치를 올려 수입 물가를 낮추고 전반적인 인플레를 줄여나간다는 것. 그러나 이것도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중국의 수출 감소세가 예사롭지 않아서다. 중국의 지난달 무역수지 흑자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64% 감소한 85억6000만 달러에 그쳤다. 수출 증가율은 6.5% 증가에 그쳐 6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4개월 연속 무역 흑자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폭설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치부하기만은 어렵다는 지적이다. 로버트 쿠이지스 베이징 주재 세계은행 수석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지금 1순위로 다뤄야 할 문제는 인플레가 아니라 세계 경기 침체에 대한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미국의 대중국 수입이 155억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줄어드는 등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안화 절상 속도를 높이다간 자칫 중국 경제가 경착륙할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중국은 이처럼 물가와 과열을 억제해야 한다는 당면 목표를 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가와 부동산 가격은 폭락 중이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 13일 4000선이 무너졌다. 작년 10월 16일 6092로 최고점을 찍은 지 넉 달 만에 35% 이상 하락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00년 초 닷컴 버블이 깨질 때 미국 나스닥지수의 하락 속도보다 더 빠른 수준으로 중국 주식시장이 무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사장들은 이날 증권감독위원회 등에 △현재 대기 중인 102개의 펀드 발매를 신속히 허용하고 △금리 인상을 유보하는 한편 △거래세를 신속히 인하할 것을 긴급 건의하는 등 초비상 상태다.부동산 시장도 휘청거리긴 마찬가지다. 상하이 선전 광저우 등에서 전례가 없는 주택 할인 판매가 나타나고 있다. 충칭의 2월 주택 가격이 전월에 비해 2.9% 떨어지는 등 그동안 가격이 많이 올랐던 선전(마이너스 1.2%) 선양(마이너스 0.8%) 광저우(마이너스 0.5%) 등의 부동산 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창휘그룹 등 대형 부동산 중개 업체들도 잇따라 도산하고 있다.물가 급등에 자산 가치가 급락하는 시나리오는 국민들에겐 최악이다. 이뿐만 아니다. 경제 시스템 자체가 위기를 맞게 된다. 은행의 부실화가 문제다. 신용 대출 등으로 주식과 부동산을 산 사람들이 자 산가치 하락으로 상환 능력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은행 공상은행 건설은행 농업은행 등 4대은행의 부실 채권은 작년 4분기 8.05%로 전분기의 7.83%를 웃돌며 증가세로 돌아섰다. 농업은행의 실적 악화가 주된 이유이긴 하지만 자산 버블 붕괴가 심화될 경우 부실 채권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베이징사무소의 창량 상무는 “자산 가치가 작년에 비해 30%가량 떨어진 상황에선 부실 채권이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금리를 쉽사리 올리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리 인상은 부실 채권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자산 버블이 꺼지면서 부실 채권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금리를 인상할 경우 타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가능성이 크다.물론 중국은행의 부실 채권이 증가한다고 해도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주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중국 삼성경제연구소 박승호 소장은 “중국의 펀더멘털이 튼튼하고 외환보유액이 1조5000억 달러를 넘고 있어 부실 채권이 어느 정도 늘어난다고 해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 침체로 중국의 수출이 급감하고 있는 가운데 자산 버블이 붕괴되고 부실 채권이 양산될 경우 내수 부양을 통해 경제 성장을 끌고 가겠다는 중국 정부의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상황도 만만치 않다. 중국 은행감독위원회는 최근 전국 120개 중소은행들에 리스크 관리를 긴급 지시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금융시장이 대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을 감안,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라는 것이었다. 불량 채권을 조기에 회수하고 적립률도 높일 것을 요구했다. 중국이 그만큼 긴장하고 있다는 이야기다.중국 정부는 올해 경제 구조 전환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수출과 투자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경제 운용 시스템에 소비를 추가한다는 것. 또 산업 구조 고도화를 통한 부가가치형 경제 구조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당장 코앞에 닥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문제다. 성장의 틀을 깨지 않으면서 인플레를 막아야 하는 과제는 자본주의 초년병인 중국에 너무 힘든 과제물이 아닌가 생각된다.조주현 한국경제신문 베이징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