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새벽같이 일어나 매일 무슨 일을 하러 가는 걸까.”아침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출근하는 언니를 지켜보며 동생은 이런 의문이 들었다. 회식이 있어 술을 마시고 귀가한 다음 날에도 언니의 출근 시간은 한결같았다. “일이 그렇게 재미있나? 아니면 책임이 그렇게 무겁나?” 당시 학생이었던 동생은 문득 언니가 하는 일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한국투자증권의 유정현 연구원(사진 오른쪽)과 유진투자증권의 유정민 연구원. 두 사람은 여의도 증권가에서 유일한 자매 애널리스트다. 언니 정현 씨는 교육·제지, 동생 정미 씨는 유통 담당이다.두 사람은 불과 2개월 전까지만 해도 한국투자증권에서 한솥밥을 먹고 지냈다. 유정민 연구원이 2005년 공채로 입사, 근무하던 한국투자증권에 언니 유정현 연구원이 2006년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옮겨온 것이다. 유정현 연구원은 “자매가 같은 회사에 다니는 게 부담이 될 수 있어 처음에는 주변 사람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됐다”며 “다행히 회사 윗분들이 호의적으로 봐 주신데다 동생이 여러 가지 도와줘서 한국투자증권에 연착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유정현 연구원은 지난해 한국경제신문을 비롯, 주요 언론의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된 입사 11년차의 중고참이다. 반면 두 살 어린 유정민 애널리스트는 국내에서 사학을 공부하다 언니와 같은 길을 가기 위해 뉴욕 주립대로 유학을 떠나 회계학을 전공한 후 2005년 증권업계에 발을 디딘 늦깎이다.“동생이 애널리스트를 하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말렸어요. 리서치 업계에서는 ‘노가다’로 불릴 정도로 애널리스트 일이 만만치 않거든요.”하지만 동생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큰딸을 지켜본 부모님도 “힘들지만 옆에서 도와줄 언니도 있으니 한 번 해보라”며 적극 권했다. 유정민 연구원은 “언니는 ‘수많은 사람을 대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혼자 삭혀야 하는 일인데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걱정했지만 일단 결심을 알고 난 뒤부터는 누구보다 많은 조언을 해주고 있는 애널리스트 멘토(mento)”라고 치켜세웠다. 유정현 연구원은 리서치 세계에 갓 뛰어든 병아리 애널리스트인 동생이 서툰 모습을 보일 때면 가차 없이 야단쳤다고 한다. “일부러 심하게 ‘깨면서’ 트레이닝을 시켰어요. 리서치 업계는 성별을 떠나 업무로 평가받는 시장인 만큼 스트레스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거든요.”유정민 연구원이 2006년 말 결혼하기 전까지 두 사람은 나란히 매일 아침 5시에 기상해 나란히 여의도로 출근했다. 아침잠이 없는 자매의 ‘얼리 버드(early bird)’형 생활습관도 애널리스트로서 경력을 쌓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유정현 연구원은 1998년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단 한 번도 7시 30분인 출근 시간을 어긴 적이 없다고 한다. 똑똑한 후배들이 부쩍 많아진 요즘에도 가장 강조하는 덕목이 성실성이다.“최근 입사한 후배들이 모두 똑똑한 친구들이다 보니 실력차보다는 성실성 차이가 더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요.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적극성과 근면성이 큰 경쟁력으로 작용하는 게 이 직업이거든요.” 그래서 유정현 연구원은 동생 유정민 연구원을 비롯해 후배들에게 업무에 파고드는 ‘헝그리 정신’을 유독 강조한다. 꿈에서도 차트를 그릴 정도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창 영어 공부에 빠질 때는 꿈도 영어로 꾸게 된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애널리스트도 중요한 보고서를 앞두고는 차트를 그리고 기업 IR에서 질의에 답하는 꿈을 꿀 정도로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실제 직장 생활 11년차인 유정현 연구원은 요즘도 가끔 ‘차트 꿈’을 꾼다. 얼마 전에는 꿈속에서 모 교육 업체 IR 담당으로부터 들은 실적이 다음날 발표된 실제 실적과 너무 똑같아 깜짝 놀랐다고 한다.형만한 아우 없다는데 동생 유정민 연구원의 생각은 어떨까. “아직 언니 정도는 아닌지 꿈에 차트까지 등장하지는 않네요. 하지만 지난해 유진증권으로 옮긴 후 업무가 늘어 하루 수면 시간이 4시간 밖에 안돼요. 숙면을 취한 적이 거의 없는 초긴장 상태라 마치 고3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증권가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애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기업 분석 시 나름의 확실한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유정현 연구원은 “산업 내의 경쟁력과 기업 전망, 재무 상태 등 기본적인 분석 외에 최고경영자가 시장의 트렌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를 읽어내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여성 애널리스트를 만나보면 묘하게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똑순이 기질’이다. 리서치 시장은 철저하게 실력으로 몸값을 평가받는다. 여성 애널리스트들이 업무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넘어 담당 분야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다른 승부 근성이 필요하다. 유정현 연구원은 회식 자리에 절대 빠지지 않는다. 주량도 웬만한 남자 못지않다. 하지만 결혼해 가정을 꾸린 여성 애널리스트에게 쫓기는 시간은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2006년 말 결혼한 유정현 연구원은 연애 기간은 만 6년이었지만 실제 만난 기간을 다 합하면 채 300일이 안 된단다.유정현 연구원은 “증권업에 전문직 여성의 진출이 늦은 때문에 아직은 우리 자매가 ‘희귀한’ 존재”라며 “최근 여성의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으니 10년 뒤쯤에는 여의도에서 여성 리서치센터장도 볼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패션·교육 업종 내 경기 방어주 주목유정현·정민 연구원은 신정부 수혜주로 주목받는 교육주와 경기 방어주를 유망 종목으로 추천했다. 유정현 연구원은 온라인 교육 시장 1위 업체인 메가스터디와 LG패션 FnC코오롱을 교육과 패션 분야의 최우선주로 꼽았다. 제지 업종은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가격 전이가 쉽지 않아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유 연구원은 “교육 업종은 경기 민감도가 떨어지는데다 특목고 확대 등을 제시한 정부의 교육 정책이 사교육 시장에 또 한 번의 ‘빅뱅’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 사교육 시장 1위 업체인 메가스터디가 가장 유망하다”며 ‘장기 매수’ 의견과 목표 주가 37만1000원을 유지했다. 메가스터디는 올 들어 국내 증시가 큰 폭의 조정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30만 원을 기준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유 연구원은 “특목고에 전체 중학교 졸업생의 26%가 지원하고 있는 현실은 사교육 시장의 폭발성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며 “올해 처음 도입된 수능 등급제에 따라 재수생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실적에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패션 분야에서는 경기에 민감한 여성복 관련 업체보다 아웃도어·스포츠 의류 업체 중심의 접근을 권했다. 지난 4분기 영업이익이 시장 전망치를 22.7% 상회한 FnC코오롱과 브랜드 포트폴리오가 잘 짜여 있는 LG패션을 유망 업종으로 제시했다. 유 연구원은 “지난 4분기 대부분의 의류 업체들이 경기 침체로 실적 부진을 보였으나 LG패션은 남성 정장, 캐주얼, 아웃도어 등의 다양한 포트폴리오에 힘입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1%, 21.6% 늘었다”며 “아웃도어와 캐주얼 중심으로 유통망이 늘고 있고 점포당 매출 증가도 두드러지고 있어 올해 두 자릿수 매출 증가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LG패션에 대해 유 연구원은 목표 주가 35만 원을 제시했다. FnC코오롱은 아웃도어 스포츠 브랜드 판매 호조에 따른 타 의류 업체와의 매출 성장 차별과 자회사인 캠브리지 및 코오롱패션의 재무적 시너지 효과가 체크포인트라고 지적했다. 유정민 연구원은 유통 분야 유망주로 신세계를 꼽았다. 경기 악화로 올해 유통 업종 전망이 전반적으로 불투명해지고 있어 백화점 중심 업체보다 할인점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춘 업체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유 연구원은 “신세계의 2월까지의 누계 실적은 소비 경기 위축에 대한 부담 속에도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3월 매출 증가율이 예년 수준만 유지하더라도 무난한 실적 달성이 가능할 정도로 유통 업종 가운데 순항 중”이라고 설명했다. 신세계의 2월 누계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10.3%, 22.4%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올해 설 기간 매출 호조와 지난해 2월 이후 문을 연 백화점 본관과 죽전점 개점 효과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신세계에 대해 유 연구원은 투자 의견 ‘매수’와 목표가 82만 원을 제시했다.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