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가한 모든 부자들은 어느 정도 자린고비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부자들을 직접 만나 보거나 수많은 부자들의 전기를 읽을 때 찾을 수 있는 공통점 중 하나가 바로 이 ‘자린고비 정신’이다. 수백만 달러의 거금을 주저 없이 기부하는 부자라도 ‘쓸데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단 한 푼의 돈도 쓰지 않는 것이다. 부자는 이처럼 양면성을 가졌다. 그들은 부를 일구기까지는 스스로에게 가혹하리만큼 냉정하게 아끼면서 산다. 그러나 단순히 여기에 머무른다면 평범한 보통 부자일 뿐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부러움은 사지만 존경을 받지는 못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쓸 데’를 찾을 줄 알고 자신이 모은 귀한 재물을 과감하게 쓸 줄 아는 사람만이 존경받는 부자가 된다.우리들은 스스로가 자린고비 기질이 있는가를 물어보면 부자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 자린고비 기질이 있다고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기질이 없이 부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린고비 정신은 부자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자린고비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다라울 정도로 인색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의 어원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충청도 충주의 어느 부자가 돌아가신 부모님의 제사 때 쓰는 지방(紙榜)을 제사가 끝날 때마다 불살라 버리기 아깝다 하여 기름으로 결어서 해마다 제사 때면 꺼내 썼다고 해서 ‘결은 고비’ 또는 ‘절은 고비’가 변해서 된 말이라는 이야기다. 여기서 ‘고비’는 성이 고씨요 이름이 비라는 설과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말하는 고비(考)라는 설이 있다.자린고비와 비슷하게 인색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구두쇠’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아마도 ‘굳다’에서 온 것 같다. 재물이 한 번 손에 들어가면 굳어져서 풀려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굳은 쇠’가 구두쇠로 변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여기서 ‘쇠’는 돌쇠, 마당쇠와 같이 명사에 붙어 사내의 이름을 나타내는 말이거나, 돈을 나타내는 쇠붙이(鐵)일 수도 있겠다.어쨌든 하찮은 종이 한 장이지만 제사 때마다 불태워버리고 꼭 같은 것을 매번 새로 쓰는 것은 ‘쓸데없는’ 짓으로 낭비라고 생각한 것이다. 쓸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면 억만금도 쓰지만 쓸데없는 곳에는 단 한 푼도 쓰지 않는다는 것이 자수성가한 부자들의 공통된 특성이다.“까짓것 얼마 된다고 치사하게!” 많은 사람들은 소액을 이렇게 가벼이 여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부자가 된 사람을 필자는 결코 보지 못했다.우리나라의 신화와 전설 속에서 한국인의 원류를 찾으려는 김열규 교수의 저서 ‘한국인의 자서전’에 보면 개성상인의 지독한 자녀 교육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이른 봄, 입춘이 지나고 농사짓기를 미리 대비하는 철이 되었다. 농상을 겸한 사람들이라 똥오줌 거름을 사고팔았다. 파는 사람은 겨울 내내 모아 둔 오줌거름에 되도록 물을 많이 타서 양을 부풀렸다. 그런가 하면 똥거름은 재나 음식찌꺼기, 갈잎 등등을 뒤섞어서 대폭 양을 늘렸다. … 문제는 물을 탄 오줌거름이었다. 사는 사람은 속지 말아야 했다. 겨울 내내 모으고 모아서 발효시킨 거름을 살 경우, 이미 발효한 뒤라서 빛깔이나 냄새만으로는 물 타기의 양을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그런 판에 어느 아비가 꼬마 아들을 데리고 오줌거름을 사들이러 나갔다. 몇 군데 ‘오줌거름통’을 돌아보고는 아들더러, 물 기운이 적은 통을 고르라고 했다. … 아들 녀석이 새끼손가락을 오줌통 속에 집어넣었다. 그대로 한참 담갔다. 이윽고 휘휘 저어댔다. 물씬! 독한 냄새가 아비에까지 밀려드는 듯했다. 그때였다. 재빨리 오줌통에서 빼내진 손가락이 아들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들은 입맛을 연신 다셔댔다. 이윽고 고개를 주억댔다. 그러더니 그 옆의 다른 큰 오줌통 세 개를 차례로 맛을 보고 다니는 게 아닌가! 그제야 겨우 겨우 아비는 눈치를 챘다. 아들이 처음의 오줌통을 두고는 흥정을 하고 혀를 발름대면서 값을 깎았다. ‘맛 묽기가 오줌 반에 물이 곱 반이야!’”조금은 과장된 감이 없지 않으나 부를 일구기 위한 쓴맛을 나타내고 개성상인들의 철저한 상인 정신을 엿보게 한다. 이런 정신이 바탕이 되어 신용을 생명처럼 존중했고 검소한 정신을 낳은 것이다. 개성 출신의 기업가로 대표적인 사람은 대한유화공업의 이정림, 동양화학공업의 이회림, 신도리코의 우상기, (주)태평양의 서성환 회장 등이 있으며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바로 근검한 생활이다. 그들은 ‘쓸데없는 곳’에는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아무리 큰 부자라도 음주가무 소리나 고기 굽는 냄새가 담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부자들의 이러한 자린고비 정신은 작은 재물이라도 아껴서 큰돈을 만든다는 저축의 의미도 있지만, 작은 재물도 결코 무시하거나 소홀히 생각하지 않는다는 정신이 들어 있다.세계 최대의 부자가 빌 게이츠라면, 세계 최대의 부자 집안은 바로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의 가족이다. 포브스가 집계한 2007년 억만장자 순위를 가족으로 보면 샘 월튼의 부인, 세 자녀, 며느리 등이 모두 20위권에 이름이 들어 있고 이들의 재산을 모두 합하면 832억 달러(약 79조 원)에 이르러 가문으로 친다면 가장 큰 부자라고 할 수 있다.그렇지만 창업자 샘 월튼은 웅장한 타이틀의 일, 호화스러운 사무실, 운전사, 요트, 골프장, 그리고 경쟁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이 과시하는 모든 장식물들을 경멸했다. 그는 ‘자린고비 정신’으로 평생을 살았다. 샘 월튼 회장이 몰고 다니는 자동차는 픽업트럭이었다. 그는 언제나 낡은 1979년형 붉은색 포드 픽업트럭을 몰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이 트럭은 1992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벤턴빌에 있는 월마트 방문센터에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샘 월튼이 처음 운영했던 아칸소 주 뉴포트에 있는 가게 이름이 ‘벤 프랭클린’이었으며, 벤저민 프랭클린과 월튼의 공통점은 ‘서민성’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고, 그러한 희생 중에는 일체의 사치가 포함돼 있었다.아버지 샘 월튼을 이은 롭 월튼도 10㎡(옛 3평) 정도의 창문도 없는 사무실을 쓰고 있으며, 기업 간부들이 출장을 갈 때도 호텔 방을 두 명이 같이 쓰는 게 원칙이고 비행기 좌석은 일반석을 이용한다고 한다.샘 월튼은 ‘예스 위 캔 샘’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에게 비용 절약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았고, 비용 절약 아이디어를 제안한 직원에게 적절한 포상을 했다. 어찌나 지독했는지 비용 관리에 관한 월마트의 직원들의 관심은 거의 강박관념 수준이어서 사무용 비품을 회사 비용으로 구입하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들고 오는 직원도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부하 직원들이 샘의 검소함이 지나치다고 불만을 털어놓을 때 샘 월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난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지만 쓸모없는 관습은 버릴 줄도 아는 사람이다.”존 D 록펠러는 열여섯 살 때 경리사원이 됐다. 그는 교회에 가는 일요일에만 쉬었다. 그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는 그렇게 많은 돈을 쓰지 않았다. 그는 담배도 피우지 않았고, 술도 마시지 않았고, 파티에도 가지 않았고, 극장에도 가지 않았으며 자식들의 용돈도 또래 친구보다 적게 주었다.록펠러는 1937년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교회에 낼 십일조를 계산하기 위해 40명의 직원을 둘 정도로 철저했지만 구두쇠 부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비해 아들인 록펠러 2세 대에 와서는 ‘미국 1호 가문’이라고 불릴 정도로 존경을 받으면서 부를 누릴 수 있었다. 그것은 창업자 록펠러의 ‘자린고비 정신’에 이웃을 위하는 ‘사회책임 정신’이 더해졌기 때문이다.록펠러 2세의 이러한 정신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용돈 교육 때문이었다. 록펠러 2세가 아들의 용돈기입장 검사를 할 때면 가끔씩 할아버지(존)가 작성했던 가계부를 보여주었다. 이 장부에는 수입과 지출, 저축과 투자, 그리고 기부 항목이 1센트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록펠러는 아들이 어렸을 때 “재산이라는 것은 성실하게 관리하라고 신이 잠시 맡겨 놓은 것이기 때문에 낭비하지 않는 게 도리”라고 가르쳤으며 낭비를 죄악이라고 생각했고 식사 시간에도 접시에 음식물을 남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부자가 단순히 자린고비에 그친다면 자식은 그 재물을 탕진하게 된다. 자린고비 정신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이 자린고비 정신에 더불어 사는 이웃을 생각하는 사회책임 정신이 보태질 때 진정 존경받는 부자가 될 수 있다.전진문 영남대 경영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