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세포 단위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세포를 기준으로 건강 상태를 실측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고 추상적으로 들린다. 이보다 훨씬 가시적이며 건강의 수은주로 삼을 수 있는 게 바로 혈관이다.우리 몸의 혈관을 이으면 10만km나 된다. 지구를 두 바퀴 반 돌 수 있는 거리다. 이 중 모세혈관이 98%를 차지한다.그렇기에 수많은 세포가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고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내보낼 수 있다.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으나 혈관 건강을 소홀히 다뤄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한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한국만성질환관리협회가 2006년 통계청 자료를 분석했더니 심혈관·뇌혈관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은 2006년 5만6388명에 달해 10년 전보다 16.4% 증가했다. 10분에 한 명 꼴로 혈관 질환에 의해 목숨을 잃고 있다. 또 혈관 질환 사망이 전체 사망의 23.0%를 차지, 암(27.4%) 다음으로 많았다. 당뇨병도 혈관 질환의 하나로 본다면 그 비율은 더 높다.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세분하면 뇌혈관질환은 13%가량 감소했는데 허혈성 심혈관질환은 2.4배로 늘어난 게 눈에 띈다. 영양 상태가 좋아지면서 뇌혈관이 약해 터지는 뇌출혈은 크게 줄었으나 고지방식, 운동 부족 ,음주, 흡연, 스트레스가 개선되지 않아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막힌 게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하나 더 두드러지는 것은 혈관 질환의 남녀 비율이 51.8 대 48.2로 암의 남녀 비율인 63.6 대 36.4와 상반된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남자보다 비만이나 고혈압이 심하고 운동량이 적으며 폐경 이후 여성호르몬 분비가 급감하면서 혈관의 동맥경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음주 흡연을 많이 하는 남성들이 혈관 질환도 많을 것이라는 기존 관념은 바뀌어야 할 것 같다.혈관 건강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분야가 거의 없다. 남자들이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발기 능력도 마찬가지다. 한국 남성은 40대의 20.5%, 50대의 31.4%가 발기부전이라는 국제적 통계가 나온 바 있다.이는 40∼80대 남성 중 64.7%가 흡연하고 34.3%가 고혈압, 30.5%가 당뇨병, 26.0%가 고콜레스테롤혈증에 걸려 있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최근에는 성인병 때문에 발기부전이 생기는 게 아니라 발기부전을 혈관 질환의 시작 단계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주목을 끌고 있다.어렸을 때 파 마늘 양파를 많이 먹어야 머리가 좋아진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이런 음식은 혈관의 신진대사를 촉진하기 때문에 결국 뇌 내 혈관을 청소해줘 뇌세포 기능이 올라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치매 예방도 혈관 청소가 기본이 될 것이다.혈관이 나빠지는 것은 요컨대 혈관 벽이 기름진 음식 등으로 좁아지고 흡연과 비만에 의해 상처를 입는 과정이다. 흡연은 세포에 산화와 염증을 일으키고 나아가 혈관의 탄력을 앗아간다. 비만은 과다한 지방의 축적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방이 독이 돼 세포에 염증을 촉진하는 것이다.특히 트랜스지방은 체내에 들어오는 순간 산화돼 혈관 벽에 염증을 일으키고 딱딱하게 만들므로 패스트푸드 등의 섭취를 자제해야 한다.이와 함께 높은 혈압은 혈관 벽을 자극해 두껍지만 탄력 없게 만들고 찢어지게도 한다.혈압 10mmHg 정도 올라간 게 뭐 대수냐고 할지 모르나 10만km 혈관에 미치는 압력의 총합을 생각해 보면 엄청난 위험이다. 소박한 식단과 규칙적인 운동으로 혈관을 맑고 탄력 있게 가꾸는 일은 건강관리의 시작이자 끝이다.정종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