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아직은 깜깜하다. 밤이 더 깊어질지, 동이 곧 터올지 모른다. 밤이 오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니 감 잡기가 더 어렵다. 미국 경기 얘기다. 경기 침체(recession)에 이미 빠졌다는 사람도 있고, 빠지기 직전이란 사람도 있고, 어렵지만 침체에 빠지지 않을 것이란 사람도 있다. 일부에선 다소 성급하기는 하지만 ‘바닥론’을 주장하기도 한다.어떤 주장을 펴는지에 관계없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름 아닌 ‘상반기 둔화, 하반기 회복’이다. 상반기에 미 경기가 침체에 빠지든, 빠지지 않든 관계없이 하반기 경기는 상반기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데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물론 그 정도는 다르지만 말이다. 만일 하반기 경제가 나아진다면. 답은 간단하다. 지금 주식을 사는 것이다.문제는 전망은 어디까지나 전망이라는 점이다. 특히 케인즈는 “경제 전망은 예술”이라고도 했다. 그만큼 경제를 예측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만의 하나 예상이 빗나가 연말까지 경기가 침체의 수렁에서 헤맨다면.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경기 침체를 의미하는 ‘리세션(recession)’의 첫 글자인 ‘R’의 공포가 심하다. 경기 침체란 경기 순환 과정에서 정점과 저점 사이의 기간을 말한다. 이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다. 보통은 2분기 연속해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경우를 경기 침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 경제는 10번의 경기 침체를 겪었다. 주목할 점은 경기 침체 지속 기간은 평균 10개월로 비교적 짧다는 점이다. 최근엔 지난 1990년 7월부터 8개월간, 2001년 3월부터 8개월간의 경기 침체가 있었다.과거 미국의 경기 침체 시기를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우선은 고용 사정 악화다. 지난 1990년에는 16만 명, 2001년에는 17만 명가량의 비농업 취업자 수가 줄었다. 이로 인해 실업률이 경기 침체 기간 중 매달 평균 0.1%포인트씩 상승했다. 전년 동월 대비 산업생산도 지속적으로 줄었다. 개인 소득도 감소했다.이런 통계적 공통점에 비춰보면 현재의 경제 상황은 경기 침체에 이미 들어갔거나 침체에 들어가기 직전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작년 4분기 성장률은 0.6%를 기록했다. 마이너스성장으로 수정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지난 1월 비농업부문 신규 취업자 수가 1만7000명 감소하는 등 고용 사정은 악화되고 있다. 산업생산도 정체 상태다. 미국인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이미 침체 상태다. 지난 1월 백화점 매출은 1.1% 줄었다. 가전제품 판매량도, 식당 매출도 일제히 감소했다. 직감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다고 느껴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다. 가히 ‘R의 공포시대’다.상반기 경제에 대한 전망은 우울 그 자체다. 1분기와 2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골드만삭스는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0.5%를 기록한데 이어 2분기에는 마이너스 1.0%로 더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모건스탠리도 각각 마이너스 0.8%와 마이너스 0.6%로 뒷걸음질할 것으로 예상했다. 씨티그룹도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0.2%를 나타낼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가 침체에 이미 빠졌거나 빠질 것이란 전망에 일치하고 있는 셈이다.그동안 낙관적 견해를 유지해 오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상반기에 관한한 다소 비관적 전망으로 돌아섰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지난 2월 의회청문회에 출석해 “미 경제 전망이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악화돼 왔으며 경기 하강 위험이 높아져 왔다”고 시인했다. 특히 “좀처럼 회복 기미가 없는 신용 위기가 경기 하강을 부추기는 근본 요인”이라며 금리 인하 방침을 분명히 했다.이런 비관적 전망 가운데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게 하반기 경기 회복론이다. 우선 버냉키 의장은 “미 경제 성장이 일정 기간 둔화되겠지만 하반기부터는 금리 인하와 긴급 경기 부양책 등에 힘입어 다시 성장세를 회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도 ‘2008년 경제 보고서’에서 “단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위기가 닥치고 있다”며 위기 상황임을 시인하면서도 “하지만 정부의 경기 부양책과 FRB의 금리 인하가 약효를 발휘할 것”이라며 장기적 성장세를 낙관했다.월가에서도 비슷한 견해를 내놓는 사람이 상당하다. 모건스탠리의 채권 전략가인 제임스 카론 대표는 “최근 5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반등세로 돌아섰다”며 “이 수익률이 반등하는 것은 향후 경기 회복에 낙관적인 신호”라고 진단했다. 모건스탠리의 수석 전략가를 지낸 후 헤지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바톤 빅스는 “미 경기가 하반기 회복할 공산이 크다”며 “증시도 바닥에 근접했다”고 진단했다.이처럼 하반기 회복론이 고개를 드는 것은 공격적인 통화 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것이란 기대감이 첫 번째 요인이다. 보통 통화 정책은 6개월 후 효과를 나타낸다. FRB는 1월에만 1.25%포인트의 기준금리를 내릴 정도로 공격적인 금리 정책을 취해 왔다. 이는 당장은 아니지만 하반기부터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이다. 여기에 1680억 달러 규모의 긴급 부양책이 시행돼 5월부터는 1억3000명에게 세금 환급이 실시된다. 한계는 있겠지만 역시 하반기 경제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경제에 가장 큰 짐이 되고 있는 금융회사의 손실도 어느 정도 마무리돼 가는 분위기다. 월가 금융회사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투자로 지금까지 1500억 달러가량을 손실 처리했다. 이로 인해 작년 4분기 미 500대 기업의 순이익은 20%가량 감소했다. 금융회사들의 손실 규모가 늘어나겠지만 고비는 넘겼다는 진단이 많다. 이렇게 되면 올 1분기 기업 순이익도 증가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 사정도 나아지고 그러다 보면 소비가 늘어나 경제에도 도움이 될게 분명하다. 이를 반영해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도 하반기 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상했다.그렇다고 낙관만은 할 수 없다. 아직은 하반기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더 우세하다. 당장 발표되는 경제지표가 호전되지 않고 있다. 체감적으로 경기 침체를 예감한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는 더욱 얼어붙고 있다. 이들의 심리가 풀리려면 경제지표가 호전됨을 확인해야 한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가장 큰 복병은 뭐니 뭐니 해도 신용 경색이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 신용 시장은 마비돼 있다. 국채와 주식만 제대로 거래된다. 그나마 현찰을 가진 사람만이 주체다. 파생상품시장은 ‘거래 뚝’이다. 사려는 사람은 없고 팔자는 물건만 쌓여 있다. 대출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하거나 파생상품을 사는 행위는 이미 옛날 얘기다. 은행들은 신용도가 좋은 일반인에게도 문턱을 높이고 있다.신용 경색은 금리를 아무리 내려도, 돈을 아무리 풀어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 말 그대로 신용이 무너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돈의 힘’만으로 신용이 회복될 리는 만무하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경기가 회복세를 탄다고 해도 신용 위기가 해소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하반기에 플러스로 돌아선다고 해도 그 수준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만일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신용 위기가 심해질 경우 하반기 경기 회복도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신용 경색으로 금융회사들의 손실액이 더욱 불어나면서 경기 침체가 1년 이상 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그렇지만 밤이 깊으면 새벽도 가까운 법. 경기 회복론이 나오는 것 자체가 새벽이 머지않았다는 얘기도 된다. 새벽이 올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일 경우 새벽에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투자 포트폴리오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힘들다고 할 때 새로운 투자 전략을 생각해 볼 시점이라는 얘기다.특히 과거 미 경기 침체기의 주가 흐름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기가 침체에 빠지기 6개월 전에 주가는 크게 하락했다. 그러나 막상 경기 침체기에 빠졌을 경우 주가가 오른 경우가 절반이다. 경기 침체에서 빠져나온 6개월 후 주가는 대부분 상승세를 탔다. 이를 좀 확대 해석할 경우 경기 침체기에 주식을 사는 것을 한번쯤 고려할 만하다는 논리로 비약시킬 수 있다.문제는 경기 침체란 지나봐야 안다는 점이다. 또 경기 침체가 나타나 모두가 어렵다고 아우성칠 때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에 나서는 ‘강심장’도 드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미래는 준비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월가에서는 이미 그런 움직임이 보인다. 하반기 주식 비중을 늘리려는 투자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들의 움직임을 반면교사로 삼을지 여부를 한번쯤 고민해볼 시점이다. 과연 하반기에 봄은 올 것인가.하영춘 한국경제신문 뉴욕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