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dEx 창립자 프레드릭 스미스

명적 변화를 일으키려면 ‘역발상’이 필요하다. 역발상 자체도 쉽지 않지만 현실에 적용하기는 더욱 어렵다. 이런 난관을 딛고 독창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경영자는 엄청난 경제적 보상은 물론 사회적 존경도 한 몸에 받는다. ‘익일 배달 비즈니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레드릭 스미스(63) 페덱스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대표적인 경우다.세계 최대 항공화물 회사인 페덱스는 프레드 스미스의 간단한 역발상 덕분에 310억 달러의 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스미스는 40여 년 전 머리를 스친 이 발상을 한 장의 종이에 곧잘 그려 보인다. 처음 그림을 보면 ‘자전거 바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바퀴가 어떻게 28만 명의 종업원, 643대의 화물 운송 항공기, 220개국 영업망을 갖춘 물류 대기업을 창조했는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의아한 표정을 지으면 스미스는 빙긋 웃으며 설명에 들어간다. 자전거 바퀴는 ‘허브(바퀴 한가운데)와 스포크(바퀴살)’로 나눌 수 있다. 바퀴살의 끝부분에 있는 화물을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싸게 배달하는 방법은 일단 허브로 화물을 모으는 데서 시작한다. 여기서 같은 목적지로 갈 화물끼리 분류해 다시 운송한다. 이는 스미스가 1965년 미국 예일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 리포트를 쓰면서 얻은 착상이다.전통적인 포인트 투 포인트(point-to-point: 두 지점을 최단거리로 잇는 배송 방식)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의 주장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뉴욕에서 필라델피아로 부치는 화물을 3200km나 떨어진 테네시주 멤피스의 페덱스 허브를 경유하게 한다는 게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의 리포트를 받아본 당시 예일대 교수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개념은 잘 구성됐지만 아이디어 실행 가능성이 없다”는 평과 함께 C학점을 줬다. 하지만 이 발상은 이후 페덱스가 글로벌 경제라는 거대한 기계를 돌리는 중요한 톱니바퀴로 발전하는 단초가 됐다.스미스는 자신이 고안한 시스템의 효율성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나는 수많은 점에서 다른 수많은 점을 연결하는 방법에 관한 수학 공식을 사용했습니다. 여러 배송 건에서 하나만 떼어내 보면 그것은 비효율적일 겁니다. 그러나 전체로 보면 훨씬 효율적입니다.”이런 공식에 또 하나 자신이 창안한 공항 내 배송 트럭 배치법을 가미했다. 트럭과 항공기를 통합 운영하는 아이디어는 그가 해병대 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했을 때 얻은 것이다. 군 항공기 조종사로 병참 업무를 수행하면서 육상 운송과 항공 운송을 최적으로 통합하는 방법을 체득했다.페덱스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도는 이후 아마존 델컴퓨터 월마트에 이르는 독창적 비즈니스 모델 개발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경제학이나 경영 학계에서 페덱스의 발전 과정을 깊이 연구하는 붐까지 일었다.스미스는 미국 중부지방인 미시시피주 마크스에서 태어났다. 멤피스에서 남쪽으로 128km 떨어진 시골이다. 그의 아버지는 버스 회사를 운영했다. 가문에 벌써 물류 기업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그가 네 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기억은 하나도 없지만 훌륭한 모친 아래서 똑똑한 아이로 커갔다. 예일대에 진학한 스미스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존 케리 전 민주당 대선후보와 같이 어울렸다고 한다. 존 케리와는 항공기 조종사의 꿈을 같이 키웠다.스미스는 1971년 베트남전에서 돌아와 바로 사업에 뛰어든다. 400만 달러에 달하는 유산을 담보로 자금을 마련한 뒤, 벤처캐피털과 가족, 대부업자에게서 추가로 8000만 달러를 끌어들였다. 그리고는 1973년 세계 최초의 특급 배송 업체 페더럴 익스프레스를 설립한다.특급 배송이란 우체국 서비스에 시간의 중요성과 신뢰성을 결합한 것이다. 정확한 시간을 강조하는 정시 배달, 다음 날 배달이 도착하는 익일 배달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비용을 더 들이더라도 정시 배달하는 것이 훨씬 더 높은 고객 만족을 이끌어 낼 수 있고 익일 배달이 가능하다면 고객 역시 추가 지불 의사가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27세의 청년 CEO 스미스는 처음엔 멤피스 공항에 창 하나 없는 방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소형 항공기 8대로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이르는 미국 내 25개 도시를 연결했다. 하지만 영업 첫날 화물은 186개에 불과했다. 선발 회사인 에모리 항공화물이 시장을 거의 독식하고 있었기 때문. 1974년엔 가문에서 끌어다 쓴 자금이 바닥났고 은행 대출은 상환 일자가 코앞에 닥쳤다. 정시 배달과 익일 배달에 대한 시장 수요도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스미스는 그러나 굴하지 않았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화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야간에도 배달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비행기 이동이 많지 않은 밤 시간을 이용하는 전략으로 고객의 신뢰를 확보해갔다. 소비자의 머릿속에 ‘철야(overnight)=특송(express)’이란 인식을 심어갔다. 자신의 화물이 어디쯤 이동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화물 추적 시스템도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런 노력이 어우러지면서 ‘땅에서는 UPS, 하늘에서는 페덱스’라는 평판을 차츰 얻게 됐다.페덱스는 창립 13년째인 1986년 드디어 100억 달러의 매출을 돌파한다. 지금은 하루 650만 개의 화물을 취급한다. 페덱스라는 기업 명칭은 물건을 밤 사이에 택배로 보낸다는 뜻으로도 통용되고 있다. ‘페덱스했다(fedexed)’란 말이 사용될 정도다.스미스는 거대 기업 오너답지 않게 소박하고 절제된 삶을 살기로 유명하다. 멤피스 본사에는 트럭과 항공기가 넘쳐나지만 사무실 어디에서도 스미스의 초상화나 사진을 찾아볼 수 없다. 그가 강조하는 비즈니스 철학을 새긴 문구 또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답한다. “조정 경기를 보면 배의 브리지에 앉아 노 젓는 사람들에게 명 령내리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 아닙니다.”그는 CEO도 잘못된 호칭이라고 주장한다. 아무래도 ‘치프(Chief)’란 단어가 걸리는 모양이다. 그는 오늘날 대기업에서는 매니저들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입장에선 이사회 이사들과 컨센서스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사회에서 컨센서스가 도출되지 않으면 이사들은 농구 경기에서 볼 수 있는 ‘점프볼’을 외친다. 다시 논쟁을 벌인 뒤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다.스미스는 경영에서 ‘사람’을 가장 중시한다. “사람(종업원)들을 지성으로 보살펴 주면 그들은 고객이 원하는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러면 고객은 회사의 미래를 확실하게 다지는 데 필요한 이익을 가져다 줍니다.” 사람(People)을 바로 세우면 서비스(Service)가 살고 연쇄적으로 이윤(Profit)이 창출된다는 철학이다.대표적인 예가 무해고 정책, 공정 대우 보장 프로그램(GFTP: Guaranteed Fair Treatment Program) 등이다. GFTP는 회사 내 어떤 직원이든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필요한 경우 CEO에게까지 상급자의 잘못을 시정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다. 이 밖에 서베이-피드백-액션(SFA) 시스템, 각종 보상 제도 등도 완비돼 있다. 이런 제도는 한마디로 종업원 제일주의(People are first)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미스는 가정에서도 많은 직원(자녀)을 두고 있다. 아이들이 10명이나 된다.스미스의 사람 중시 경영 철학은 해병대 장교 시절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본인도 당시 사람을 어떻게 다루고 이끌어야 하는지를 배웠다고 말한다. 특히 자신과는 다른 블루칼라 출신 부하들을 리드하는 법을 체득할 수 있었다. 지금도 회사 노동자들의 생각과 반응하는 방법을 잘 이해하고 편파적이라고 느끼지 않게끔 주의를 기울인다.스미스의 경영 철학은 ‘1 대 10 대 100 법칙’에도 숨어 있다. 불량이 생길 경우 즉각 고치는 데에는 1의 원가가 들지만 책임 소재나 문책 등의 이유로 이를 숨기고 그대로 기업의 문을 나서면 10의 원가가 든다. 또 이것이 고객 손에 들어가 문제가 제기되면 100의 원가가 든다는 것이다. 이 또한 스미스가 가장 존경받는 미국 CEO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유다.장규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