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원자재 가격의 고공 행진이 지속되고 있다. 앞으로 원유와 금을 중심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은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슈퍼 스파이크(super spike)’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보는 것이 상품 관련 전망 기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그중에서도 국제 금값의 상승세가 가장 눈에 띈다. 11월 들어 국제 금값은 온스당 830달러를 넘어 1980년대 초 이후 27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백금, 은 등 다른 귀금속 가격도 동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국제 금값이 이처럼 급등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세계 금 공급량의 50% 이상을 담당하는 남아프리카 등 주요 산지의 채굴 여건이 악화되는 것이 원인이다. 최근에는 심해 금광까지 개발함에 따라 생산 비용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금 수요 면에서도 세계 경기가 당초 예상과 달리 성장세가 지속됨에 따라 산업용 금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최근 세계 경기를 보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둔화되고 있지만 개도국 경제의 호조로 5% 내외의 성장세가 유지되고 있다. 특히 중국 경제가 11%대의 높은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 산업용 금 수요가 늘어나는 가장 큰 요인이다.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재테크용 금 수요가 다시 증가하고 있는 것도 금값 상승의 요인이다. 오래 전부터 아시아 국민들은 금을 부(富)의 상징으로 여겨왔고 요즘 들어서는 결혼 예물로 금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앞으로 금값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달러 가치의 향방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달러 가치가 약세를 보임에 따라 대체 관계에 있는 금시장에 자금이 지나치게 많이 유입되고 있는 것도 국제 금값이 고공 행진을 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이후 각국의 통화 가치가 미국 측 요인에 의해 주로 좌우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달러 가치의 향방은 미국 경기 전망과 미국 금리 인하 폭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앞으로 미국 경기를 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엇갈리고 있다. 하나는 그동안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긴급 유동성 지원과 재할인율 및 연방기금 금리의 대폭 인하로 유동성 위기가 해결되면서 내년에 미국 경기가 크게 둔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연착륙(soft landing) 시각이다.다른 하나는 FRB의 조치가 오히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을 발생시킨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지연시켜 앞으로 세계 경기가 더 침체될 것이라는 경착륙(hand landing) 견해다. 일부에서는 1930년대와 같은 대공황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보는 시각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으나 내년 미국 경기는 아직까지는 연착륙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악의 경우 미국 경기가 경착륙해 달러 가치가 폭락하더라도 그동안 세계 각국은 아무리 자국의 이해관계를 중시한다 하더라도 급격한 변화와 혼란을 선택하지는 않았고 특히 외환 시장에서 그런 움직임이 심했다.앞으로 달러 가치가 연착륙하면서 대체 자금이 국제 금시장에 유입될 가능성이 적어진다면 금값은 오히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이후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글로벌 머니게임에 의해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최근 들어 국제 간 자금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각종 글로벌 펀드들은 주식, 부동산뿐만 아니라 예술품, 골동품에 이어 심지어는 송아지, 물, 고철, 드라마, 아트 등에 이르기까지 돈만 되면 어디든 투자하는 것이 특징이다.이 때문에 세계 경제 질서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위기를 우려하는 경고음도 잇따르고 있다. 총성이 없는 3차 대전으로 비유되고 있는 글로벌 머니게임을 들여다보면 바로 선진국 자금의 상징 격인 헤지 펀드와 중동 산유국의 오일 머니, 중국의 외환 보유액 등이 주축이 된 개도국 국부 펀드의 대결이 그 중심에 놓여 있다.이미 규모 면에서는 국부 펀드가 레버리지 비율을 감안하더라도 헤지 펀드를 추월하고 있다. 헤지 펀드 전문 자문 업체인 헤네시 그룹에 따르면 현재 헤지 펀드 규모는 1조5000억 달러로 파악되나 국부 펀드 규모는 10조 달러를 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금이 늘어나는 속도도 국부 펀드가 헤지 펀드보다 약 10배나 빠르다.자금 운용에 있어 선진국 헤지 펀드는 높은 수익을 좇아 잉여 자금은 사모 펀드 형태로, 잉여 자금이 없을 때에는 금리차를 이용한 캐리 자금 형태로 개도국에 유입된다. 이 때문에 개도국에서는 선진국 헤지 펀드 자금이 판치는 과정에서 윔블던 효과(Wimbledon effect)가 더 심해져 국부 유출, 기업 경영권 위협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반면 개도국 국부 펀드는 특성상 수익성보다 안정성을 중시해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국채를 비롯한 선진국 금융자산에 투자해 왔다. 지금까지 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이 비교적 안정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선진국 자금이 유출되더라도 이를 개도국 자금이 채워주는 국제 간 자금 흐름 메커니즘이 잘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문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국제수지 불균형으로 미국 국채를 비롯한 선진국 금융자산의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지금까지 유지돼 온 국제 간 자금 흐름 메커니즘이 흐트러지고 있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국부 펀드의 투자 대상이 갈수록 선진국의 국채와 같은 금융자산에서 기업 인수와 같은 실물자산으로 투자 방향을 옮기는 추세가 뚜렷하다.그중에서 개도국 국부 펀드가 선진국의 항만, 에너지와 같은 기간산업을 인수하기 시작하면서 선진국들이 경제 안보상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이른바 개도국에서 나타나는 윔블던 효과와 똑같은 역윔블던 효과(anti-Wimbledon effect)다. 이 점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를 외쳐 왔던 선진국들이 이제는 모든 경제 현안을 자국의 주권확보 차원에서 바라보는 ‘경제 애국주의(economic patriotism)’를 낳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그동안 세계 경제를 주도해 왔던 선진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경제 애국주의로 나아감에 따라 자원 보유국을 중심으로 한 국수주의 움직임 등 개도국들의 반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세계 경기 상황과 관계없이 유가와 금값을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의 고공 행진이 지속되고 있는 것도 이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결국 헤지 펀드와 국부 펀드 간의 3차 대전은 국제 금시장 입장에서는 두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하나는 이 전쟁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설령 경제 여건이 받쳐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국제 금값은 더 오르고, 다른 하나는 투기성이 강해지면서 국제 금시장의 질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점이다.국제 금값의 상승으로 대내외 금융시장에서는 본격적인 골드뱅킹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는 골드뱅킹이 활성화된 지 오래됐다. 단순한 금 계좌와 금 대여 상품보다는 금 스와프, 금 선물 등 금 관련 파생 금융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대조적인 것은 미국은 금 관련 파생 금융 상품 위주로 활성화되고 있으나 귀금속 세공업이 발달한 유럽에서는 세공업자 등에게 금을 빌려주는 금 대여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이다.아시아 지역에 있어서는 홍콩과 중국, 인도에서 금 계좌와 금 대여 상품을 중심으로 골드뱅킹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 선진국과 맥을 같이한다. 일본도 지난 1980년대 초에 금적립 플랜(GAP)이라는 상품을 처음 선보인데 이어 산와은행과 후지은행 등이 골드뱅킹 업무에 주력하고 있다.우리는 어떤가.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교해서 골드뱅킹을 도입한 시기가 늦었고 목적도 다르다. 정책 당국이 그동안 밀수금 위주로 운영돼 온 국내 금시장의 구조를 개혁할 목적으로 금융사들의 부수 업무로 골드뱅킹을 허용한 시점이 2004년 7월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골드뱅킹 역사는 불과 3년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일천하다.최근 들어 금값의 상승과 기존의 투자 수단이 주춤하고 있는 데다 현 정부가 집권 후반기를 맞으면서 사회적으로 어수선함에 따라 거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골드뱅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금융사들이 국제 금값이 다시 상승함에 따라 이 업무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금융사들의 골드뱅킹이 활성화되면서 산업계 전반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처럼 양극화 현상이 심하고 정권 교체기에 놓여 있을 때에는 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따라서 시중은행을 비롯한 금융사와 기업들은 변화가 심한 금값의 특성을 고려해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될 수 있는 다양한 금 관련 파생 금융 상품을 개발해 위험 관리 방안을 만들어 놓아야 본격적인 골드뱅킹과 골드 마케팅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한상춘 한국경제신문 전문위원 겸 한국경제TV 월가특파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