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필자는 탁월한 통찰을 주는 책 한 권을 읽었다. 그것은 에릭 바인하커(Eric Beinhocker)가 쓴 ‘부의 기원(The Origin of Wealth, 안현실·정성철 옮김)’이다. 부의 창출 원리를 이처럼 근원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파헤치고 있는 책은 드물다.이 책은 “부는 어디서 오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서술을 시작한다. 이 물음은 필자도 오래전부터 계속 품어오던 테마이기에 더욱 흥미가 있었다. 성급하게 바인하커의 결론부터 말하면,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존재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끝없이 변화하고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세상은 공평하다. 이렇게 말하면 “팔자 좋은 소리 한다”고 곧장 반박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세계의 8억 인구가 기아에 시달리고 있으며 매일 2만5000명 이상이 기아로 사망하고 1초에 5명의 어린이가 굶어 죽는다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그렇게 부분적으로 보면 그 말도 맞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풍요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온갖 부패와 악의 수렁이 그곳에는 없다. 그래서 보다 높은 또 다른 차원에서는 새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다.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며, 여기에 노동을 제공하고 대가를 얻으며 절약으로 일부를 비축하고 새로운 확대 생산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혁신을 감행함으로써 이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 자본주의의 원리다. 그러므로 부자가 되거나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자신의 행위의 결과라는 것이 소위 우파의 주장이다. 이에 반해 그 결과가 운 또는 한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외적인 구조적 요소에 의한 결과라면 그것은 고쳐져야 한다는 것이 좌파의 주장이다. 세상은 불평등한 것 같으면서도 궁극적으로 크게 보면 공평해져간다는 생각이 전자의 기본적인 입장인 반면, 좌파적인 사람들은 반대라고 보는 것이다.인간이 사는 세상은 외적인 환경과 내적인 능력에서 원천적으로 차이가 있다. 지구의 표면은 한결같이 평평하지 않고, 그 위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은 모두가 다르며, 완벽하게 꼭 같은 사물이나 꼭 같은 사람은 단 한 경우도 없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인간은 주어진 시간 동안 주어진 공간에서 살다가 죽는다. 그런데 인간이 처해진 그 공간과 시간 또한 모두가 다르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는 사람과 미국에서 태어나는 사람,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이미 공간적 조건이 다르고, 중세에 태어난 사람과 현대에 태어난 사람은 시간적 조건이 현저히 다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의 모든 인간은 모습이나 능력이 다른 인격을 가졌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며 숙명이다.그러나 어떤 한 측면에서의 이러한 불균형은 대립적인 다른 측면에서 상보적으로 또 다른 불균형을 형성해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불균형 상태가 심할수록 균형으로 회귀하려는 기본적 속성 때문에 변화가 크게 일어나고 변화의 속도는 커진다. 그러므로 지금의 균형이란 엄밀한 의미에서는 일시적인 균형, 더 높은 차원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한 불균형적 균형, 또는 의사균형의 상태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앞서 언급한 책에서 바인하커는 엡스타인과 액스텔이라는 사람의 실험 즉, ‘가상의 설탕 섬’에서 난파된 사람들이 두 무더기의 설탕 더미를 찾고 소비하며 비축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게임의 결과를 소개했다.이 실험 결과에서 시뮬레이션 초기에는 평등한 조건이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이 소유한 설탕이라는 부의 분포는 크게 바뀌어 처음에는 3에서 30단위까지 퍼져 있던 것이 나중에는 0에서 270단위까지 분포가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놀랍게도 파레토의 분포와 흡사하다는 것이다.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파레토는 1895년에 여러 나라에서 수집한 소득 데이터의 분포를 그렸더니 정규분포가 아니라 부의 아래쪽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중간층은 넓게 분포돼 있으며 몇몇 소수의 슈퍼 부자들이 상단에 있는 특이한 곡선을 형성함을 확인했다. 이 분포는 전체 부의 80%를 20%의 소수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며 이러한 양극화 현상을 파레토의 법칙이라고 말한다.파레토의 분포와 비슷한 것으로 유대인들의 상술의 기초가 되는 78 대 22라는 법칙이 있다. 이것은 정사각형과 그에 내접하는 원의 관계에서 정사각형의 넓이를 100이라 한다면 원의 넓이는 78 정도이고 그 나머지 면적이 22라는 것이다. 또 공기 중의 질소와 기타의 비율도 78 대 22 정도며, 사람의 신체도 수분과 기타가 78 대 22 정도의 비율로 이루어졌다. 같은 원리로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과 돈을 빌리려는 사람도 78 대 22 정도의 비율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은행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고, 좋은 사업거리만 있으면 돈을 제공하려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이렇게 보면 ‘80 대 20’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구조적 비율인지도 모른다.바인하커는 ‘가상의 설탕 섬’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의 분포가 달라지는 과정을 순수 수렵·채집 단계와 거래 단계의 두 단계로 나누어 관찰했으며, 부의 분포가 변화하는 원인을 물리적 환경, 우연, 유전적 형질, 적응력 등으로 설명했다.이런 사실을 응용해 부익부 빈익빈의 원인을 외적인 환경 요인과 내적인 개인 능력 요인으로 간단히 구분해 볼 수 있다. 환경 요인은 다시 공간적 조건과 시간적 조건으로 나눌 수 있다.평균 이상으로 좋은 환경에 처해 있으면서 능력 있는 사람은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환경이나 능력 중 어느 하나가 좋지 않은 사람이 4분의 2쯤 있고, 환경도 좋지 않고 능력도 없는 사람이 4분의 1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 정규분포를 이루고 있다가 차츰 환경이 좋고 능력이 있는 소수는 여러 게임에서 이기게 돼 소비량보다 더 많은 부를 획득해 소비하고 난 나머지를 축적하게 된다. 이에 비해 중간층은 자기가 소비할 만큼만 겨우 벌뿐이어서 현상 유지하기에 급급하다. 이에 비해 나쁜 환경에 처한 능력 없는 사람은 자신이 소비할 만큼의 소득도 올리지 못해 자꾸 먹이를 줄여가다가 결국에는 도태되고 만다.이러한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면 상층의 부자는 축적된 자본으로 다음의 경쟁에서는 유리한 게임을 하게 돼 더 많은 부를 얻게 된다. 결국에는 4분의 1(25%)의 소수 부유층이 사회 전체의 부 중에서 4분의 3을 지배, 파레토의 분포와 비슷하게 된다.그런데 문제는, 한 번 상층에 든 부자라고 해서 계속 부자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환경이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포브스지의 처음 100대 기업이 70년 후에 조사하니 18개 기업만 존속한 사실이나, 스탠더드앤드푸어(S&P)의 500대 기업이 40년 후에는 74개 기업만 남았다는 사실, 한때 탁월한 기업이었던 IBM이 지금은 실패한 기업으로 변한 것도 비슷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변신하며 진화하는 능력, 그것이 진정한 능력인 것이다.전통적 경제학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시장을 완전 경쟁시장이라고 가정, 가격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조정해 일물일가를 이루기 때문에 인위적인 개입이 필요 없다고 보았다.그런데 실제의 현실에서는 이러한 완전 경쟁 시장은 없다. 따라서 현실의 균형은 잠정적·일시적 균형으로서 언제나 틈새가 존재한다. 제공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이나 수량에 대한 정보도 정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기호나 선호가 같지 않으므로 지극히 부분적으로만 그리고 일시적으로만 균형을 이룰 뿐이다. 부자들의 개인적 특성을 살펴보면 수렵·채취 시대에는 부지런하며 민첩하고 힘이 센 사람이 재화를 선점했고, 교환 시대에는 어디에서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고 다른 장소에서 재빨리 구해 공급함으로써 차익을 누렸고, 생산 시대에는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 새로운 재화를 만들어 공급했고, 창조 시대에는 인위적으로 새로운 틈새를 만들어 수요를 능동적으로 창출함으로써 부를 창조해 나갔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틈새를 찾아내고 만들어간다.파레토는 한정된 재화로 구성원의 어느 누구도 희생 없이 최대의 만족을 가져올 수 있는 배분 방법으로 ‘파레토 최적’을 제시했으나, 이는 실현 불가능한 많은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슘페터는 부의 원천은 개별 기업가들의 영웅적인 노력에 근거한다고 보고 혁신을 핵심적인 요소로 보아 나누어 먹을 파이 자체를 키울 것을 주장했다.자유 시장 경제에서의 개인 간의 소득 차는 구조적인 것으로 다소는 줄일 수 있을지언정 완벽하게 회피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상대적 만족을 평준화하려는 노력보다는 절대적 만족의 크기를 확대하는 슘페터적 노력이 더욱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전진문 영남대 경영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