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10월 19일 월요일. 뉴욕 증시가 발칵 뒤집혔다. 이날 다우지수는 무려 508포인트 급락했다. 낙폭은 22.6%. 하루 낙폭으로는 사상 최대였다. 바로 ‘블랙 먼데이(Black Monday)’로 기록된 날이었다.그로부터 딱 20년이 흐름 지금. 뉴욕 증시는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블랙 먼데이’는 역사 교과서에서나 찾을 법한 분위기다. 그러나 불안감마저 가신 건 아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파문으로 신용 위기 후유증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2분기 연속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경기 침체(recession)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블랙 먼데이에 대한 공포는 증시 한쪽에서 스멀스멀 기어 다니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뉴욕 증시가 고공 행진을 하는 것을 보면 미국 투자자들은 둘 중의 하나다. 망각의 동물이거나, 주식 마니아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맞을까. 월가를 조금 지켜보면 바로 후자다. 미국의 투자자들은 주식 마니아다. ‘주식 부동산 현금의 비중을 각각 3분의 1씩 유지하라’는 ‘포트폴리오의 ABC’는 안중에도 없다. 어떡하면 주식을 더 살까 안달복달하는 사람들이다. 직접 주식을 사든, 뮤추얼 펀드나 인덱스 펀드를 사든 주식을 사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이런 성향이 경기 침체의 공포 속에서도 뉴욕 증시를 견인해내는 가장 큰 힘이다.블랙 먼데이가 발생했던 1987년과 2007년 10월의 분위기는 닮은 점이 많다. 우선 강세장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1987년엔 5년 연속, 지금은 4년 연속 강세장이다. 달러화 약세도 유사하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미국은 달러화 약세의 후유증을 겪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역 적자에 시달리고 아시아 제품에 치이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 1987년엔 일본 상품이 미국 시장을 휩쓸었다면 지금은 중국 상품이 일본 상품을 대신한 것이 다르다.물론 다른 점도 상당하다. 우선 증시의 과열 정도가 다르다. 1987년 다우지수는 블랙 먼데이가 발생할 때까지 43%나 올라 누구나 과열을 걱정할 정도였다. 반면 올 들어 지난 10월 12일까지 다우지수는 13% 상승에 그치고 있다. 증시 과열은 자연스럽게 기업의 고평가를 가져왔다. 당시 S&P500 기업들의 주가수익률(PER)은 20배가 넘었다. 지금은 16배로 역사적 평균치를 약간 웃돌고 있다.가장 크게 다른 점은 역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통화 정책이다. 당시는 인플레이션 억제가 최대 과제였다. FRB는 기준 금리를 잇따라 인상했으며 블랙 먼데이 직전까지 이런 기조를 유지했다. 지금은 다르다. 인플레이션은 상당히 안정돼 있다. FRB는 기준 금리를 동결하다 지난 9월 0.5%포인트 인하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덜한 만큼 추가 금리 인하 여지도 넓은 편이다.이런 점이 작용해 올해 뉴욕 증시에서 블랙 먼데이는 남의 일이 됐다. 블랙 먼데이가 재현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그러나 당시와 비교해 지금이 더 좋지 않은 측면도 분명히 있다. 다름 아닌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다. 서브프라임 파문을 야기한 주택 경기는 미국 경기를 침체 가시권으로 몰아넣었다. 주택 경기 침체는 소비와 고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집값이 하락하고, 대출을 갚지 못해 집을 압류당하는 가구가 속출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이뿐만 아니다. 미국 일자리 8개 중 1개가 주택 경기와 연관돼 있다. 주택 건설과 부동산 업체, 모기지 관련 업종 등. 심지어 미국에서 구리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부문도 주택 건설이다. 그러다 보니 주택 경기가 위축되면 실업자가 많아진다. 이 역시 소비에 영향을 준다. 소비가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 소비가 타격을 받으면 경기도 영향을 받는다. 고공 행진을 하고 있는 주가의 이면에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감이 짙게 배어 있는 이유다.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감 속에서도 뉴욕 증시가 고공 행진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된다. 주요 금융회사들이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을 확정함으로써 증시가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걷힌 것이 주된 이유다. FRB의 금리 인하 여력이 충분한 만큼 FRB가 경기 침체를 막아줄 것이란 신뢰도 확고하다.이것이 경기 침체 우려가 실제 침체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강하게 만드는 요인이다.그렇지만 주가는 ‘사자’는 세력이 ‘팔자’는 세력보다 많아야 오른다는 게 만고의 진리다. 결국은 주식을 사자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얘기다. 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FRB가 기준 금리를 0.5%포인트 인하했다.시중 유동성이 그만큼 많아졌다. 그렇지만 얼었던 대출 창구마저 풀린 건 아니다. 주택 관련 사업, 영화 등 일부 서비스업, 자동차 관련 업종 등에 대한 대출 조건은 여전히 깐깐하다. 그러다 보니 돈이 가는 곳은 증시다. 이전과 다른 점은 업종에 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돈이 투입되지 않는다는 점. 안전하고 전망 있는 업종과 기업에만 돈이 몰리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대기업,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 경기를 덜 타는 음식이나 약품 관련 업종 등으로 돈이 들어가고 있다. 반면 자동차 주택 관련 업종은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다. 중소형주의 집합체인 러셀 2000지수는 별로인 반면 다국적기업과 대형주들이 모인 다우지수와 S&P500지수가 고공 행진을 펼치는 이유다.이건 그럴듯한 분석이다. 어쨌거나 금리 인하로 숨통이 트인 시중 유동성은 다시 증시로 몰리며 주식을 사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미국 투자자들에겐 ‘120-나이’란 공식이 낯설지 않다. 다름 아닌 전체 자산 중 주식과 주식 관련 상품(펀드 등) 비중을 구하는 공식이다. 120에서 자신의 나이를 뺀 숫자만큼 주식 비중을 유지하라는 게 이 공식의 메시지다. 예컨대 50세면 120에서 50을 뺀 70%를 주식 관련 상품으로 운용하는 게 현명하다는 얘기다. 이렇게 따지면 나이가 젊을수록 주식 비중이 커진다. 리스크를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는 나이를 감안한 공식이니 그럴듯하게 들릴 만도 하다.이런 공격적인 주식 투자가 가능한 것은 역시 역사가 주는 교훈 때문이다. 미국의 주가 상승률은 물가 상승률을 웃돌고 있다. 1926년부터 2007년 9월까지 S&P500지수의 연평균 상승률은 10.5%에 달했다. 같은 기간 장기 국채의 연평균 수익률(5.4%)의 2배다. 역시 같은 기간 연평균 물가 상승률 3.1%의 3배가 넘는다. 물론 누구나 이런 수익을 챙긴 건 아니다. 그렇지만 역사적 교훈으로만 보면 다른 무엇보다 주식 투자가 돈 버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장기 투자와 간접 투자가 활성화된 미국인들의 투자 방법도 주식 없이는 못살게 만드는 요인이다. 대부분 미국 가정은 저축하듯이 뮤추얼 펀드에 매달 꼬박꼬박 돈을 불입한다. 시장이 좋아도, 좋지 않아도 펀드에 돈을 넣는다. 시장이 나쁘다고 펀드를 당장 해지하는 것도 아니다. 은퇴할 때까지 불입한다는 생각으로 돈을 넣고 있다. 이 방법은 상당히 효율적이다. 1982년부터 2001년까지 S&P500지수는 연평균 11.8% 올랐다.이 수익률을 얻는다고 가정할 경우 처음에 1만 달러를 투자한 뒤 2001년까지 갖고 있었다면 9만3075달러를 쥘 수 있다. 그러나 주가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열흘 동안 주식을 갖고 있지 않고 나머지 기간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면 손에 쥐는 돈은 5만6044달러로 줄어든다. 상승률이 높았던 30일간 시장에서 빠져 있었다면 고작 2만8144달러만 얻게 된다.물론 미국과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이미 수없이 주식에 배반당해 온 우리로서는 주식을 믿고 장기 투자하기가 겁난다. 더욱이 부동산 불패 신화와 한탕주의에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주식 비중을 섣불리 늘리는 건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곤란하다.그렇지만 이제 달라지고 있다. 코스피도 2000선에 안착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자산 운용의 중심으로 금융자산이 자리 잡고 있다. 펀드 운용사들도 이젠 그럭저럭 믿을 만하게 됐다. 더욱이 남북 관계의 진전으로 위험 변수도 가시고 있다.블랙 먼데이 20주년인 2007년 10월. 월가가 주는 메시지는 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시장 참여가 역설적으로 경기 침체의 우려감을 가시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한번쯤은 눈여겨볼 대목인 것 같다.돈을 벌기 위한 10가지 원칙1 가능한 한 일찍 재테크를 시작하라2 시장 수익률을 뛰어 넘으려 하지 마라3 트렌드를 좇지 마라4 120에서 나이를 뺀 만큼 주식 비중을 유지하라5 시간이 없으면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라6 신용카드 빚은 우선적으로 갚아라7 이자가 붙는 저축성 계좌를 습관화하라8 각종 거래 수수료를 절약하라9 세금제도를 적절히 활용하라10 기업연금 등 연금도 재테크다<자료: 포천>하영춘 한국경제신문 뉴욕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