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30호지만 특히 잘 빠져서 3000만 원입니다. 조만간 이 작가야말로 오치균 사석원 못지않게 엄청 뜰 겁니다.” 인사동 거리를 지나다 쇼윈도에 걸린 40대 후반 중진 작가의 낯익은 작품을 만났다. 관심을 보이기가 무섭게 작가와 작품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다. 대개 ‘~카더라’식의 호객형 미사여구가 대부분. 어느 한구석 호가를 뒷받침할만한 믿음직한 논리는 없다. 이런 경우는 시장의 현장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한 일반 고객(컬렉터)에겐 매우 주의해야 할 상황이다. 자칫 시장에 형성된 일반 가격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작품을 구입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대개 되팔 때 구입 가격까지 만회하기 위해 무척 고생하게 된다. 이는 이중 가격의 역류 현상이다.최근 들어 미술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역이중 가격이 부쩍 횡행하고 있다. 이전엔 작가나 화랑 호가의 60~70% 선에서 실제 유통 가격이 형성됐다면, 요즘 일부 인기 작가의 경우 유통시장에서의 호가가 기본 정가보다 적게는 2~3배에서 많게는 10배 가까이 부풀어져 있다. 이런 현상의 시발점은 경매다. 한창 미술품 수집의 열기를 풀무질하는 경매 열풍이 국내 미술 시장의 리트머스지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로 10년째를 맞은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은 최근 낙찰가 신기록 이외에도 수많은 화제를 낳고 있다. 지난 9월 서울옥션 주최로 열린 ‘아트 옥션 쇼 인 서울’에선 1만2000명이라는 초유의 관람객을 유치했으며, 단 1회에 300억 원 이상의 매출액을 올렸다.왜 이처럼 많은 이들이 경매에 열광하는가. 미술품 투자의 진정한 매력인 환금성 때문일 것이다. 컬렉터 입장에선 수집한 작품을 되팔아 수익을 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유통 경로가 바로 경매다. 이를 방증하듯 서울옥션과 K옥션 양대 경매사 이외에도 D옥션, 옥션M, A옥션, 오픈옥션, 인터알리아 등 연말까지 최소 10여 개의 경매사가 출사표를 던지며 경쟁 체제에 합류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수요자 입장에서 무작정 환영할 만한 것은 아니다. 혹여나 어수선함을 틈타 불공정 거래나 불건전한 유통이 조장될 수도 있기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그렇다면 경매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바로 가격 혼선이다. 위에서도 언급되었듯, 이중 가격의 역류 현상이나 역이중 가격의 단초는 경매의 낙찰가에서 비롯된다. 일부 중개상인은 경매의 낙찰가를 근거로 시중에 형성된 기존 작품가보다 터무니없이 높게 부르기도 한다. 물론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고,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할 경우 가격은 올라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유통 시장의 고유 영역을 초월해 전반적으로 확산된다면 객관적인 유통 질서는 무너지게 된다. 이 때문에 굳이 시장에서 경매가를 참조한다면 낙찰가가 아닌 추정가가 적정할 것이다. 추정가는 시기적절한 시장의 인지도나 반응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작가의 추정가를 장기간 비교해 봤을 때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면 시장에서의 인지도 역시 안정권으로 판단해도 좋다.미술품의 값은 어떻게 정해질까. 미술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다. 하지만 가격마저 주관적으로 결정된다면 올바른 시장 구조가 조성되기 힘들 것이다. 작가 중심의 가격 결정 관행이 줄어들고 있다지만, 설득력 있는 작품가격의 산정 기준 마련을 위한 노력은 여전히 절실하다. 미술 작품은 ‘미술품의 절대가치(작품성), 구입자의 선호도(taste), 사회적 역학관계, 작품의 컨디션’ 등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특히 작품의 컨디션, 즉 작품 크기나 제작 연도, 재료와 기법을 기본으로 하는 보존 상태, 작고 작가의 경우 진위 여부 등은 반드시 점검해야 할 체크 사항이다. 여기에 다양한 경제 현황과 미술품의 투자수익률 등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주변 상황이다.일반적으로 알려진 작품 가격의 종류는 호당가(號), 호가(呼), 실거래가(實), 경매가(競賣), 중개인 가격 등이며, 경매는 다시 추정가, 낙찰가, 유찰가 등으로 구분된다. 이 중에서 가장 시장과 밀접한 예는 호당가와 중개인 가격일 것이다. 호당가는 작품의 1호 규격(22×16cm)을 기준으로 삼아 가격을 산출한 것. 10호일 경우 ‘호당가×10’ 등으로 계산한다. 하지만 관례적으로 호당가(가격의 크기별 정비례)는 10~30호 정도에 적용한다. 10호 이하일 땐 다소 높아지고, 30호가 넘을 경우엔 점차 낮아진다. 따라서 100호 정도의 크기일 경우엔 ‘호당가×60~70%’ 정도를 적용하게 된다. 국내 작가들의 연령별 평균 호당가는 ‘20대 5만∼8만 원, 30대 10만 원, 40대 15만∼20만 원, 50대 25만∼30만 원, 60대 40만∼50만 원’ 등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인지도가 높을 경우 30대 작가지만 40만 원 이상의 호당가도 있을 수 있다. 이중 가격 역류 현상은 시장에서의 호가가 기존에 알려져 있는 해당 작가의 ‘호당가’를 훨씬 웃도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요즘 ‘잘 팔리는 작가’라고 공인된 블루칩 작가들을 중심으로 ‘유통시장 호가 비교표’를 만들어 봤다. 표를 통해 알 수 있듯 인기 작가라고 해서 그의 모든 작품이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건 아니다. 작가에 따라 고유의 차별적인 화법이나 소재를 갖고 있다. 또한 비교적 일정 수준 이상의 미술 애호가를 상대하는 일반 상업화랑과 사전 정보 수집에 취약한 일반 애호가를 상대하는 중개인 화랑의 호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미술품 컬렉터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경제력이 받쳐준다고 누구나 유능한 컬렉터가 될 수는 없다. 이상적인 안목과 적정한 경제력이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프로에 입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꼭 필요한 것은 ‘발품’을 파는 것이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가격이 과연 시장에서도 통용되고 있는가. 시장에서 얻은 가격 정보가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 등. 귀를 열고 부지런히 돌아다닌 만큼 시기적절하고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이정웅, 붓·장지에 유채, 130.3×194cm, 2007박성민, 아이스캡슐, 캔버스에 유채, 80×3×116.8cm, 2007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