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다. 그 순간 내게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일상에서 벗어난 느긋한 휴식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뉴질랜드다. 바쁜 도시 생활에 지친 심신을 맡길 수 있는 평화로운 안식처, 원초적인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100% 순수 청정 지대인 그곳. 주저 없이 짐을 싸서 뉴질랜드로 떠났다.뉴질랜드는 지금 봄에서 여름으로 가고 있다. 우리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고 있듯 한국과는 정반대의 기후를 가지고 있는 뉴질랜드는 여름이 되면서 날씨가 더워지고 있는 것이다. 대자연의 광활함과 순수 청정 자연을 만난다는 설렘을 안고 뉴질랜드로 향했다. ‘남반구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뉴질랜드는 남섬과 북섬, 스튜어트 섬이 저마다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면서 세계 각지의 여행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북섬의 대표적인 곳으로 오클랜드가 있다.비행기로 꼬박 12시간이 걸려 도착한 오클랜드 공항에서 빠져나올 때 여행자를 맞이하는 것은 티 없이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였다. 그 청정함에 마치 온몸이 정화되는 듯 상쾌한 기분을 만끽했다. 오클랜드는 마오리어로 ‘타미키-마카우-라우(Tamaki-Makau-Rau)’로 불리며 이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뜻이다. 많은 부족들이 이곳을 서로 탐내면서 침략했던 곳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오클랜드는 자연 친화적인 도시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도시다. 이곳에서는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불과 12시간 만에 일상생활에 벗어났다는 설렘과 기대 속에서 뉴질랜드에서의 첫날이 저물어 갔다.둘째 날,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이 상쾌한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뉴질랜드에 와서 번지점프를 빼놓고 갈 수는 없는 일. 곧바로 뉴질랜드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호수 중 하나라는 타우포(Taupo) 호수로 향했다. 뉴질랜드는 번지점프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이 죽은 애인의 영혼이 깃든 남학생과 함께 번지점프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촬영 장소가 바로 타우포 호수다. 타우포 호수의 번지점프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깊고 푸른 호수의 광활한 절경 때문에 보기만 해도 아찔하고 심장이 떨린다. 번지점프를 하기 위해 절벽 위에서 다리에 끈을 묶고 점프대 난간에 섰다. 막상 절벽 아래를 보니, 나름대로 비장한 각오와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다리가 후들거린다. 순간 막심한 후회를 하며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주변에서 “뛰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옆에 있던 스태프가 “Don’t worry!(걱정하지마!)”라고 말하면서 엄지손을 치켜세운다. 심장은 쿵쿵 뛰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 눈을 감고 긴 숨을 들이마셨다. 양팔을 벌리고 불어오는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두 눈을 떴다. ‘5, 4, 3, 2, 1’ 번지(Bunggy)!!!내 몸은 어느 순간 허공을 향해 곤두박칠치고 있었다. 중력의 가속도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마치 괴물처럼 보이는 시퍼런 물속을 향해 날고 있다. 여전히 요동치는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머리로는 침착하려고 애쓰면서 허공에 대고 외쳤다.“I’m Flying!”대자연의 아름다운 경관이 뉴질랜드를 찾는 첫 번째 이유라면, 뉴질랜드의 역사와 문화는 그 두 번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뉴질랜드는 마오리인을 비롯해 영국인, 스코틀랜드인, 중앙 유럽인, 폴리네시아인, 아시아인 등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 중 마오리인은 뉴질랜드의 원주민으로서 지금도 그들만의 원초적인 문화를 유지하면서 뉴질랜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되고 있다.마오리인들은 약 1000년 전에 그들의 고향인 하와이키를 떠나 카누를 타고 항해하다 뉴질랜드에 처음 도착했다. 오늘날 마오리인은 뉴질랜드 전체 인구의 약 14%를 차지하며 그들의 문화는 뉴질랜드 곳곳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필자는 뉴질랜드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인 마오리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 중, 마오리인들이 기다란 나무막대와 창을 이용해 자유롭게 추는 춤들은 전쟁 당시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하고 아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행해졌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람하고 다부진 몸매를 가진 여러 명의 마오리 남자들이 나와 자신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치며 혓바닥을 길게 늘어뜨리고서는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관객들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대목이었다. 전쟁 시,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하기 위해 하는 동작이라고 하지만 이를 보는 관객에게는 무척 우스꽝스럽고 재미있는 모습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오리 공연에 푹 빠졌고, 어느새 공연이 끝나서 나오니 공연했던 마오리인들과 사진을 찍는 시간이 있었다. 필자도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뉴질랜드에서의 즐거운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게 됐다.‘베이 오브 아일랜드’는 뉴질랜드 북섬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다. 총 144개의 섬과 수많은 해변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해상공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낯선 곳이다. ‘자연 속의 자연’이라고 불릴 만큼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그야말로 원초적인 대자연과 뉴질랜드만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오클랜드에서 250km 떨어져 있으며 차로 5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에 있다. 배낭에 카메라 하나 달랑 챙겨 들고 가뿐하게 길을 나섰다.끝도 없이 펼쳐진 푸른 해안을 바라보면서 ‘이 해안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생각을 하던 중 북섬의 최북단인 ‘케이프레잉가 등대’가 보였다. 북섬의 북서쪽 상단에 위치한 케이프레잉가는 마오리인들에게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신성한 곳이다. 마오리의 전설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가는 곳’이라고 한다. 케이프레잉가 등대는 뉴질랜드에서는 하나의 명물로 알려져 있다. 이곳 등대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보면 한눈에 타스만 해와 태평양이 보인다. 끝없이 펼쳐진 해안 끝자락에 서있는 작은 등대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이곳에 있으면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듯 로맨틱한 느낌을 준다. 그 순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또는 사랑하고픈 사람이 있다면 당당하게 사랑을 외쳐 보면 어떨까.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외치는 느낌은 아마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 것이다. 영화 ‘세상에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처럼 그 순간 필자는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외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뉴질랜드를 가장 낭만적인 곳으로, 또 필자를 세상에서 가장 멋진 로맨티스트로 만들었던 ‘베이 오브 아일랜드’, 그리고 ‘케이프레잉가 등대’.세상의 끝에 서있는 하얀 등대와 파란 바다, 그리고 로맨티스트가 함께했던 그 순간은 일상을 사는 지금도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전광용 이오스여행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