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 새장은 흔히 구속, 속박, 감금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반면에 새장 밖으로 날아가는 새는 자유를 상징한다. 새가 날지 않고 새장 안에 순순히 갇혀 있으면 천적이나 먹이 걱정 없이 편안히 지낼 수 있다. 안락한 구속과 위험한 자유,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1879년)은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이자 여성 해방의 원전으로 여겨진다. 행복한 주부로 살던 노라가 그 삶이 인형처럼 조정된 허구였다는 것을 깨닫고, 한 인간으로서 자유를 찾아 집을 떠난다는 이야기다. 평소에 남편은 노라를 ‘종달새’라고 부른다. 아내를 귀엽게 부르는 애칭이지만, 집 안의 새란 자유를 뺏기고 주인의 즐거움을 위해 사육되는 애완동물이 아닌가. 노라에게 집은 안락한 보금자리를 주지만 그 대신 자의식을 억압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살도록 길들여 가둔 새장과 같은 것이었다. 이처럼 새장은 여성의 특징이나 삶을 비유하는 상징으로 여겨지며 예술작품의 소재로 통용됐다.

새장의 다양한 상징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는 새와 새장이 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 시기에 네덜란드는 해양 사업과 무역이 활기를 띠며 유럽에서 가장 풍족한 국가로 발돋움했다. 바다 건너 진기한 물건들이 새로 들어왔는데 그중에는 앵무새 같은 조류도 있었다.

앵무새는 이국적인 외모와 화려한 색감의 깃털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신대륙에서 긴 여행을 견디고 살아 온 강인함과 사람의 음성을 따라 하는 영특함도 있어서 큰 사랑을 받았다. 앵무새가 있는 새장은 호사스러움, 부유함, 고귀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새 기르기가 유행처럼 퍼져 나가 일반 가정에서도 새장 한두 개쯤은 집 안에 두고 있었다. 앵무새 종류만이 아니라 애완용 참새나 방울새도 많이 길렀다. 당시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그림 속에서 천장이나 창가에 새장이 매달려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포획된 새는 훈육 또는 교육에 대한 비유로 여겨지곤 했다. 새를 새장 속에 길들이는 것을 사람이 고귀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연마해야 할 교육 과정과 같다고 보았다. 새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이 그림에 흔히 나오는데, 그런 행동은 배움에 대한 열망을 의미하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새장은 보존해야 할 명예를 가리키기도 했다.

그런데 네덜란드어로 새는 'vogel'이며, 'vogelen'은 '새를 잡는다' 또는 '사랑을 나눈다'는 뜻이 있다. 단어의 중의적 의미로 인해 새장은 사랑이나 섹슈얼리티의 상징으로 빈번히 사용됐다. 새장이 남녀와 같이 있거나 젊은 여자와 함께 있으면 십중팔구 에로틱한 성격을 띠는 것이다. 여성이 음식으로 새를 꾀어내거나 새장에서 풀려난 새와 함께 있다면 그것은 순결을 잃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피터르 데 호흐(Pieter de Hooch, 1629~1684년)의 그림에서 새장의 다중적 의미를 엿볼 수 있다. 호흐는 젊은 여자가 앵무새에게 먹이를 주는 실내 장면을 그렸다.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왼손으로 열린 새장 속 앵무새의 머리를 만지면서 오른손으로는 하녀가 대주는 술잔에 빵 껍질을 담그고 있다. 하녀는 한편으로 의자에 올라간 어린아이를 받쳐 새에게 먹이 주는 모습을 잘 보도록 도와주고 있다. 아이에게 약한 동물을 보살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면서, 새를 돌보듯 아이들도 잘 훈육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달한다.

그런데 왜 새에게 줄 먹이를 술에 적시는 걸까. 그 답은 오른쪽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남자와 연결해 찾을 수 있다. 남자는 여자의 일이 끝나고 하녀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빗장 풀린 새장 속의 새가 술에 젖은 빵을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새는 여인과 동일시되며 곧 남녀가 애정을 나눌 것을 예상케 한다. 그런 확신을 주는 또 다른 요소가 있는데, 배경의 벽난로 위에 놓인 그림이다. 거기에는 여성 누드가 그려져 있어 장면의 에로틱한 의미를 뒷받침한다.
빅토리아 시대 새장과 여성
새장과 여성의 관계는 그림 속에 면면히 이어져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절정에 달했다. 혁신적 화가 집단 라파엘 전파의 창시자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년)는 뚜렷한 색감과 풍부한 세부 묘사로 현실 장면 속에 상징적 의미를 교묘히 녹여냈다. <깨어남>이라는 그림은 소녀와 새장의 다양한 상징성을 구사한 작품이다. 그림에는 앳된 소녀가 침대의 이불 속에 앉아 위에 매달린 새장을 바라보고 있다. 소녀는 이른 아침 새의 노랫소리에 방금 잠에서 깬 모양이다. 뭔가를 깨달았는지 표정에 호기심과 불안감이 뒤섞여 있다. 소녀가 갑자기 알게 된 것은 무엇일까.

그림 속 사물들로 장면의 의미를 유추해 보자. 소녀 옆의 인형, 바닥의 작은 꽃다발, 알파벳 글자는 아동의 놀이와 학습 도구이며, 하얀 시트와 잠옷은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함을 가리킨다. 또한 맵시 있는 침대, 깨끗하고 포근한 침구, 공들여 직조한 이불 덮개, 작은 새가 있는 예쁜 새장은 빅토리아 시대의 이상인 따뜻한 가정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런데 소녀의 불안한 눈빛이 잘 가꾼 평화를 깨뜨린다. 오른쪽 상단 구석에서 과도하게 잘려 아랫부분만 보이는 새장과 그 속 맨 끝에 앉아 있는 작은 새도 불편한 느낌을 조장한다.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와 연결해 보면 새장은 갇힌 사랑을 뜻하고, 처녀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밀레이의 그림에서 소녀는 자신에게 임박한 성적 변화를 깨닫고 있다. 평온한 유아기가 지나고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다가오는 것이다. 새장과 새는 소녀의 성적 상태를 암시하며 변화를 맞아 여성이 지켜야 할 정숙함을 상기시키는 듯하다. 여성은 새장 속 애완동물처럼 가정에 격리돼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조신하게 가사에 충실해야 한다. 이것이 빅토리아 시대에 만연한 사회적 통념이었다.

하지만 새장이라고 언제까지나 안전하기만 할까. 어느 날 비바람이 창가에 놓인 새장을 마구 흔든다면, 또 누군가 슬쩍 새장을 건드려 빗장이 풀리기라도 한다면. <인형의 집>의 노라처럼 새는 위험을 무릅쓰고 미지의 세계로 훨훨 날아가지 않을까.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9호(2021년 0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