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제재 나선 中, 한국에도 불똥 튀나
[한경 머니 기고=길재식 전자신문 기자]중국은 간편결제 등 핀테크 서비스가 빠른 속도로 생활 속에 침투해 있다. 오히려 은행 등 전통적인 금융서비스의 이용률이 떨어지며, 빅테크 기업의 독과점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 이에 중국 당국이 규제의 칼날을 꺼내든 가운데 그 영향이 한국 등 해외 기업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 역할을 하는 중국의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이 인터넷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 시행을 본격화했다. 자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 한국 등 해외 기업을 대상으로도 규제의 고삐를 조일 것으로 보여 자칫 정보기술(IT) 무역 갈등으로까지 번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 삼성과 LG는 중국 ‘반독점법’의 뼈 아픈 제재를 받은 바 있다.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인터넷 기반 플랫폼 경제 분야 반독점 감독 강화 등을 목적으로 ‘인터넷 플랫폼 기업에 관한 국무원 반독점위원회 지침’을 발표했다.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이번 규제안으로 경쟁 업체를 압박하기 위한 서비스 보조금 지급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억제할 것을 예고했다. 이에 다양한 핀테크 기업에 악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계좌를 보유하지 않은 취약계층이 많은 국가다. QR코드 등 전통 금융서비스보다는 간편결제 등 핀테크 서비스가 빠른 속도로 생활 속으로 침투했다. 하지만 핀테크 서비스 침투와 사용이 급격히 늘면서 국가 산업망으로 불리는 전통 금융서비스 이용률이 떨어지고, 오히려 빅테크 기업이 국가 전반에 대한 입김이 세지는 독과점 우려를 야기했다. 이로 인해 중국 정부가 최근 데이터 독점에 따른 소비자 선택권 침해 금지와 금융업 영위 시 인가를 통한 원칙을 다시 정립하고 여러 규제안을 내놓는 등 칼을 꺼내든 것이다.

中 강력 규제안, 핀테크 산업에 악재
지난해 11월, 중국 정부는 알리바바 등 거대 인터넷 플랫폼 기업을 대상으로 반독점 규제 강화를 위해 ‘반부정경쟁 부처 연석회의’를 설치했다. 연석회의는 반독점 감독당국인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과 인터넷판공실, 공업정보화부, 공안부, 민정부, 교육부, 인민은행,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 증권감독관리위원회, 광전총국(언론 담당) 등 17개 부처가 참여했다.

대형 핀테크 기업의 데이터 독점을 막고, 이들 기업의 관리감독을 정부가 주도하기 위한 포석이다. 그간 중국 핀테크 기업은 현지 금융기관과 연합해 온라인 소액대출을 선보인 바 있다. 이용자는 급증했고 이때 신용 위험은 모두 금융기관이 부담하는 구조로 돼 있다. 이 같은 공동 사업은 빅테크 기업이 보유한 신용평가 알고리즘에 의존, 전통 금융보다는 알리바바, 텐센트 등 플랫폼 기업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규제안을 통해 온라인 소액대출기관이 제3자 금융기관과 공동 대출 시 대출금액의 최소 30%를 조달하도록 규정했다. 지난해 상반기 엔트그룹 신용대출 잔액은 1조8000억 위안(약 300조 원)에 달한다. 제3자 금융기관과 공동 대출을 통해 자체 조달금액이 360억 위안(약 6조 원)에 불과했지만 50배가 넘는 대출을 실행했다.

대출 규모도 제한한다. 개인대출은 30만 위안(약 5000만 원) 또는 3년 평균연봉의 3분의 1을 초과할 수 없게 규제를 강화했다. 중소기업 대출도 100만 위안(약 1억7000만 원)을 초과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는 인터넷 플랫폼 영향력 확대에 따른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을 차단하기 위해 플랫폼 경제 반독점 지침을 발표했다. 플랫폼 기업이 지위를 악용해 과도한 이익을 추구하는 폐해를 차단하고 합법적인 경영을 유도하자는 취지다.

중국 ‘반독점법’은 2008년 제정된 이래로 의약품, 자동차, 화공제품, 특허기술, 통신 산업 분야에 적용된 바 있다. 최근에는 소비자에 대한 인터넷과 모바일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며 관리·감독 필요성이 대두됐다.

우선 플랫폼 기업의 시장 지배적 지위를 플랫폼 거래액, 거래량, 사용 시간, 이용자 수, 트래픽 등을 고려해 민감한 고객 자료를 공유하거나 담합해 경쟁사 배제, 보조금 원가 이하 지급 행위 등을 차단하기로 했다.끼워팔기나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악용한 가격 차별 등을 전면 금지하고 위반 시 막대한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또 인공지능(AI), 빅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독점 행위로 분류하고 관련 정보 개방을 요구하기로 했다.

페이퍼컴퍼니의 맹점도 규제를 강화했다. 빅테크 기업이 지분과 관계없이 계약만으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던 ‘가변이익실체(VIE)’ 제도를 전면 금지한 것이다. VIE는 빅테크 기업이 유망 스타트업이나 신규 진출 분야 기업, 경쟁사 등을 인수·합병(M&A) 하면서도 독점 심사를 피하고 문어발식 확장을 가능하게 했던 제도다.

그간 중국 정부가 VIE를 공식 인정한 적은 없지만 단속한 적도 없다. 이번 규제는 빅테크 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공식적으로 정부가 관리하겠다는 의지로 표명된다. 이로 인해 중국 경제를 받치고 있던 알리바바(전자상거래), 텐센트(소셜미디어), 메이퇀뎬핑(음식 배달), 징둥닷컴(전자상거래), 샤오미 등 5대 플랫폼 경제 주도 기업의 주가 폭락을 예고했다.

中 규제 ‘쓰나미’, 한국 기업에도 악영향?
중국 정부의 강력한 규제 적용으로 한국 시장에도 일부 악영향이 예상된다. 중국 기업과 제휴 사업을 하거나 지분투자를 받은 기업이 꽤 많다. 카카오페이가 대표적이다.

카카오페이는 지난해 12월 마이데이터 예비허가 심사를 신청했으나, 2대 주주인 알리페이싱가포르홀딩스와 관련한 서류 제출 미비로 보류를 당했다.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1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주주를 대상으로 한다.

알리페이싱가포르홀딩스는 카카오페이가 분사하며 설립된 지난 2017년 이후 총 3452억 원을 투자하면서 43.9%의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다. 알리페이싱가포르홀딩스는중국 알리바바 손자회사다. 알리바바-앤트그룹-알리페이싱가포르홀딩스로 연결되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이번 마이데이터 예비허가 심사에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은 알리페이싱가포르홀딩스지만 사업을 영위하지 않는 특수목적법인(SPC)이라 모회사인 앤트그룹에 대한 적격성 문제를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비대면 사회 진입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로페이도 텐센트 등과 QR 연동을 마쳤다.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 중국 관광객도 한국 가맹점을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지만, 중국 현지의 강력 제재로 인해 사업 확장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부산시와 하나카드도 위챗페이 데이터 중계 사업을 추진 중이다. 중국 관광객 유치와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위챗페이 이용을 부산에서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부산시는 현지 구와 군, 시를 통해 위챗페이 가맹점 가입과 홍보를, 하나카드는 위챗페이 매입사로서 역할을 수행하기로 제휴를 맺었다.

해운대구, 수영구, 중구, 부산진구를 대상으로 위챗페이 가맹점을 대거 늘린다는 목표까지 수립했다. 민간부터 지방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다양한 핀테크 기반 사업을 모색하고 있는 시점에서 중국 정부의 규제안 시행은 유관 시장에 독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핀테크뿐 아니라 플랫폼 사업과 제조 사업에도 또다시 중국 규제가 강화될지 시장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과거 중국 정부는 ‘반독점법’을 글로벌 다국적기업들의 중국 내 시장 지배력 확대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역외적용 조항에 근거해 한국 기업도 제재 대상에 포함된 바 있다. 실제로 중국 경쟁 당국의 해외 기업 첫 제재 대상은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였다. 양사는 가격담합을 이유로 과징금 부과 조치를 당한 바 있다.

한국에서 전통 금융사와 핀테크 기업 간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규제안 시행까지 겹치면서 한국 정부의 대응 방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