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어드바이저 성장세…대중화 과제는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성장세가 가파르다. 비대면 서비스 중심의 디지털 혁신과 함께 주식투자 열풍이 더해진 효과다. 다만 ‘자산관리의 대중화’라는 본연의 역할까지는 적지 않은 과제도 안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성장세…대중화 과제는

“우리는 컴퓨팅의 새로운 전환기를 목격하고 있다. 바로 모바일 퍼스트 세계에서 인공지능(AI) 퍼스트 세계로의 전환이다.” - 선다 피차이(Sundar Pichai) 구글 CEO

AI 기술은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 생활 전반의 다양한 변화와 함께 글로벌 산업 지형에 커다란 변혁을 불러오고 있다. 금융 산업도 예외일 수 없다. 그동안 금융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자산관리 분야 역시 AI 기술과 융합하면서 획기적인 진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시스템화가 가능한 투자 자문과 금융 분석 등 기존 부유층의 대상으로 한정됐던 서비스가 로보어드바이저의 등장을 계기로 보편적 서비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비대면 기반의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는 디지털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거부감 없이 수용되고 있다.

여기에 저렴한 수수료의 상장지수펀드(ETF)는 로보어드바이저 확산에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자산 운용의 패시브 전략에 주로 활용되는 ETF의 경우 펀드매니저가 직접 동원되는 액티브 운용 전략 수수료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미국, 유럽 등의 주요 글로벌 금융사들은 일찍부터 로보어드바이저의 성장 가능성을 간파하고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왔다.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다양한 ETF에 분산투자를 하도록 도와주는 퓨처어드바이저(future advisor)는 지난 2010년 설립 5년 만에 7억 달러의 운용자금을 끌어모았는데, 세계적인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지난 2017년 이 회사를 인수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또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은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을 통해 수백 명의 투자 자문 인력 감축을 단행했고, 골드만삭스는 로보어드바이저 개발 업체 켄쇼 인수를 통해 대규모의 인건비를 절감했다. 켄쇼가 개발한 워런(Warren)은 전문 애널리스트들이 40여 시간에 걸쳐 하던 작업을 단 몇 분 만에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로보어드바이저 성장세…대중화 과제는
공급자 주도에서 고객 중심 서비스로
국내 금융서비스도 비대면 중심의 디지털 혁신을 계기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존 공급자 중심의 금융서비스도 다양한 핀테크 업체의 등장으로 소비자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금융소비자들이 과거에는 접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전문 지식과 금융 정보를 검색포털 및 소셜네트워크 등을 통해 손쉽게 습득할 수 있게 된 ‘간편함’이 기폭제로 작용했다. 이를테면 예금이자와 대출이자, 송금 수수료, 펀드 수익률 등을 확인하려면 소비자가 직접 해당 금융사를 찾아야 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간편하게 비교해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상품과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 이전의 금융 비즈니스의 모델이 ‘고객→금융사→서비스’ 형태였다면 지금은 ‘고객→서비스→금융사’로 플랫폼 중심의 진화가 이뤄진 셈이다.

KB국민은행을 비롯해 주요 시중은행들이 내외부 혁신을 통해 ‘플랫폼 기업’으로의 변모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또 최근 편의성과 간편함을 무기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토스, 뱅크샐러드 등 핀테크 업체들 역시 이런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한 결과다.
다만 디지털 자산관리 시장의 경우 성장세가 기대에 못미친다는 평가가 많다. 현재 미국 금융시장의 경우 베터먼트(Betterment), 퍼스널캐피털(Personal Capital) 등을 중심으로 200여 개의 핀테크 업체들이 운용형, 자문형, 하이브리드형 등 세 가지 모델로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투자자의 의사결정에 따라 자산을 운용하는 자문형과 로보어드바이저가 직접 자산을 운용하는 일임형으로 양분돼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말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사는 은행 9곳, 증권사 19곳, 자산운용사 2곳, 투자자문사 5곳 등이며, 이 밖에 7개사가 로보어드바이저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은행과 증권사 중에서는 자체 기술 개발에 나선 곳도 있지만, 핀테크 등과의 기술 협력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곳이 더 많다.

대형 은행의 경우 NH농협은행이 ‘NH로보-프로’를 통해 연령 및 투자 성향별로 맞춤형 펀드와 퇴직연금 포트폴리오를 추천해주고 있으며, 우리은행(우리로보-알파)과 하나은행(HAI-로보)도 로보어드바이저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하이브리드형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시장과 달리 국내 시장에서 로보어드바이저가 활성화되지 못했던 이유로 기대에 못미치는 수익률과 함께 까다로운 규제를 들고 있다. 초기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에 진출한 대다수 기업들이 자산관리보다 종목 추천에 중점을 둔 탓에 고객들의 기대가 훼손됐다는 지적이다. 다만 규제 측면에서는 지난 2019년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한 일임형 비대면 계좌 개설이 허용되면서 로보어드바이저의 활용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로보어드바이저 성장세…대중화 과제는
현재 국내 시장의 경우 파운트, 에임, 디셈버앤컴퍼니 등 핀테크 업체를 중심으로 로보어드바이저 대중화의 초입에 들어선 모습이다. 특히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비대면 금융서비스의 활용도가 높아진 가운데 ‘동학·서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의 주식투자 열풍까지 가세하면서 로보어드바이저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실제 이들 로보어드바이저 3사의 자문 계약 금액은 지난해 말 기준 총 1조2500억 원가량으로 1년 전(2475억 원)과 비교해 무려 400% 이상(9989억 원) 급증했다. 한 해 동안 무려 1조 원에 달하는 투자금이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로 몰린 셈이다.

업체별로는 ‘핀트(디셈버앤컴퍼니)’의 누적 투자일임 계좌 수가 지난해 말 기준 71만 건이 넘어서며 1년여 만에 1630%의 고속 성장세를 보였다. 운용자산(AUM) 역시 같은 기간 700% 이상 증가했다. ‘에임’ 역시 지난 한 해 동안 누적 회원 수가 약 33만 명 증가했으며, 누적 계약 자산도 같은 기간 4000억 원 가까이 늘었다.
이와 관련, 금융권에서는 라임, 옵티머스 등 대규모 펀드 부실 사태가 기존 금융사에들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며 로보어드바이저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중화 한계 분명…관리감독 필요
전문가들은 낮은 비용과 편리성 등을 이유로 로보어드바이저가 투자일임, 자문 등의 영역에서 전문 인력들을 대체할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프라이빗뱅커(PB) 등 금융 전문가들의 ‘보완재’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부동산이나 은퇴, 세무 등 종합자산관리 측면에서는 여전히 전문 인력들의 숙련된 노하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로보어드바이저의 한계도 분명하다. 현재 제공되는 포트폴리오 서비스의 경우 비교적 단순한 데다 자문의 범위 역시 ETF 등 금융상품 간 포트폴리오 배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로보어드바이저로 진정한 자산관리 서비스의 대중화를 도모하려면 투자자문형이나 투자일임형 로보어드바이저가 지금보다 더 활성화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투자자문형이나 투자일임형 로보어드바이저의 서비스 비용과 최소 투자금액 요건이 더 낮아져야 한다. 또한 미국처럼 투자일임형 로보어드바이저가 고객의 개인연금이나 퇴직연금을 직접 운용할 수 있는 길도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로보어드바이저 성장세…대중화 과제는
여기에 지난해와 같은 이례적 유동성 장세에서는 과거 데이터 기반의 AI 분석이 오히려 수익률 측면에서 불리할 수 있다. 또 로보어드바이저의 경우 AI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해킹으로 인한 투자 손실은 물론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알고리즘의 오류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함께 자산 배분 모델, 주문 및 체결 등의 과정에서 오작동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관리감독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불어 AI 기반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시스템에 대한 정기적인 보안성 테스트는 물론 AI 운영과 관련된 내부자의 보안 사고 개연성을 차단하기 위한 교육과 사고 발생 시에 대한 처벌도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인호 기자 ba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