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토리

빅스토리/ 투자고수가 말하는 쩐의 전쟁

암호화폐VS


2017년과 2021년의 비트코인의 투자 펀더멘털은 다르다. 2017년 상승장과의 핵심적인 차이점은 기본적인 금융 인프라와 게임의 룰의 존재 여부다. 투자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비트코인이 투기냐 아니냐를 논쟁하기보다는 비트코인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자산의 펀더멘털을 공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17~2018년도의 암호화폐 광풍과 폭락은 한국 사회에 꽤나 큰 충격을 남긴 듯하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가능성에 꽂혀 2015년부터 한국에서 블록체인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필자에게는 2017~2018년 이후 3년간은 사업 초창기보다 훨씬 혹독한 시간이었다.
지난 3년간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는 ‘사기’ 취급을 받았다. 정식적인 입법 등을 통한 규제가 없었기에 사실상 소비자들은 규제 사각지대에 방치돼 자전거래와 다단계를 일삼는 사업자들에 의한 수많은 피해자들이 속출됐다.
암호화폐거래소업 자체가 사행성 업종으로 규정돼 투명하고 책임있게 운영하는 업체, 기술과 보안에 투자와 다양한 시도를 하는 업체들도 국내 벤처캐피털(VC)의 투자를 받기가 어려워져 과점적인 구조는 고착화됐다. 지난해 이맘 때를 돌이켜보면,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만 ‘사기’가 아니라 ‘탈블(혼탁한 블록체인 업계에서 탈출한다는 뜻을 의미)’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블록체인 산업 전반의 대중적 이미지 또한 최악으로 치닫았다.
그런데 최근 몇 개월 전부터 월가 유명 금융기관들이 비트코인에 투자한다는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기 시작했다. 헤지펀드나 일반 상장법인뿐만 아니라 100년 이상의 전통을 갖고 있는 보수적인 은행과 보험사들도 비트코인 투자했음을 발표하고 있다. 심상치 않은 미국발 뉴스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분위기는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느낌인 듯하다.
지난 3년간의 풍파가 워낙 거셌기 때문일까. 대중은 어리둥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대다수, 혹자는 당혹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50% 이상 치솟았던 '김치 프리미엄'(한국의 과도한 개인 수요로 인해 국내의 비트코인 가격이 해외 대비 비싸게 형성되는 현상)도 찾아보기 힘들다. 필자가 여기서 따지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2017년과 2021년의 비트코인의 투자 펀더멘털은 너무도 다르다는 점이다.
2017~2018년 광풍의 여파로 국내에서는 암호화폐 산업과 관련된 생산적인 토론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동안, 비트코인의 자산적 가치를 알아차린 실리콘밸리와 월가, 그리고 워싱턴의 엘리트들은 블록체인 업계와 소통하며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산업의 펀더멘털을 키우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접하는 뉴스들은 지난 3년간의 이러한 노력이 변화된 거시경제 환경과 만나게 되면서 나오는 결과물이며, 결국 2017년과는 확연하게 다른 저변과 자본의 구성을 갖춘 ‘디지털 금’ 혹은 ‘21세기의 가치저장 수단’이 우리가 2021년 갑작스럽게 재발견하게 된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 2017년 이후 어떤 변화 겪었나
2017년과 2021년의 비트코인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는 2017년의 비트코인의 자산적 속성과 투자자 구성, 그리고 대외적 환경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선 2017년의 비트코인은 주로 묻지마 투자에 참여하기 위한 티켓이라는 것이 그 핵심적인 자산 속성이었다. 암호화폐공개(ICO) 발행 주체들은 비트코인을 받고 신규 발행 코인을 양도해주었고, 수십 배의 차익 실현을 노리는 전 세계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이 ICO 청약에 참여하기 위해서 비트코인을 구매해 ICO 업체에 송금했다. 조금 더 진지한 투자자들의 경우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콜 옵션과 같은 개념으로 비트코인에 투자했지만 ICO에 회의적이었던 이들은 2017년 시장의 주류가 아니었다. 또한 비트코인 내부적으로는 기술적인 로드맵에 대한 의견 차이로 하드포크(참여자들의 견해 차이로 코인과 블록체인이 분기하는 현상)를 경험했다. 즉, 2017년 당시의 비트코인은 그 펀더멘털을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자산군으로서 기술적인 불확실성이 높은 가운데, 수십 배의 차익 실현을 노리는 리테일 투자자들이 랠리를 이끌었다.
2017년에는 외부적인 여건 또한 비트코인 투자에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2017~2018년은 연준이 테이퍼링을 시도하던 시기다. 실제로 2년간 0.5~0.75%에서 2.25~2.5%까지 기준금리 인상이 단행됐다. 금리 인상 국면에서는 비트코인과 같은 변동성이 크고 시총이 낮은 자산보다는 채권 투자가 선호되는 시기다.
더욱이 보다 장기적인 보유가 가능한 기관들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어려운 환경이었다. 예치를 위한 인프라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가치평가 방법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제도 또한 미비했다. 묻지마 ICO 투자심리에 발맞추어 ‘묻지마 상장’으로 투기 심리를 자극하는 거래소들이 속출했고, 규제 공백을 이용한 특정 역외거래소들의 경우는 레버리지 100배 상품을 내놓았다.
사실 2017~2018년 환경에서의 비트코인 광풍은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과 닮아 있었다. 2017~2018년 한국 정부의 고강도 대책은 과열된 투기와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한 타당한 긴급 조치였다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광풍이 잠잠해진 이후 지난 3년간 미국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있었다. 2017년 이전부터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 혹은 ‘개방형 금융의 기축 통화’로 보고 산업을 개척했던 선구자들과 블록체인의 기술적·자산적 가능성을 본 월가와 실리콘밸리의 자본은 2018년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가상자산 금융 인프라를 만들어냈다.
예치 서비스, 가치평가, 기관용 트레이딩 툴, 대차 서비스 등이 생겨서 기관들의 매매가 가능하게 됐다. 당국과 업계가 활발히 소통하며 보다 진화된 규제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2020년 발표된 크라켄거래소의 은행 라이선스 취득과 가상자산 은행인 아반티, 이더리움과 같은 개방형 블록체인을 공식 청산 방식으로 규정한 미국 통화감독청(OCC) 등 모두 2018년부터 시작된 민관 협력의 산물이다.
제조업이 쇠퇴하며 황폐화된 주의 주지사들은 업계와 협의하며 비트코인 마이닝 팜(Mining farm)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불법적인 ICO 규제를 강화하고 있고, 검찰은 규제 사각지대에서이득을 보던 역외거래소들을 기소하기 시작했다. 즉, 2017년의 상승장과의 핵심적인 차이점은 기본적인 금융 인프라와 게임의 룰의 존재 여부다.
[빅스토리]2021년의 비트코인, 2017년과는 다르다


거기다 더해 ‘디지털 금’이라는 내러티브가 각광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거시경제 환경이 도래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테이퍼링을 하던 2017년과는 달리 2021년 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쇼크로 인한 제로금리 시대를 살고 있다. Fed가 공개한 점도표를 보면 0.0~0.25%의 기준금리는 2021년 내내 유지될 것으로 보이며, 제롬 파월 Fed 의장은 고용 진작을 위해서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겠다고 시사한 바 있다. 2021년 3월 18일 연준은 계속 통화 공급을 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강력하게 확인해주었다.
이러한 환경에서의 기대값은 자산 인플레 아니면 런어웨이 인플레다. 물가 상승이 없는 통화 확장기에는 비트코인을 포함한 수많은 위험자산들의 가격이 올라간다. 런어웨이 인플레 상황에서는 금과 같은 인플레 헤지가 각광을 받게 돼 있다. '디지털 금'의 내러티브를 갖고 있는 비트코인의 경우 금보다 비대칭적인 수익을 얻고자 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해볼 만한 베팅이다. 즉, 2017년과는 정반대로 비트코인 투자에 나쁘지 않은 거시경제 환경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변모한 산업 환경과 시장 환경 속에서 비트코인은 엄연히 새로운 금융투자 자산군으로 새롭게 정의됐다. 비트코인은 더 이상 ICO에 참여하기 위한 티켓이 아니다. '묻지마 ICO 투자'가 거의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비트코인 구매 없이도 VC들이 ICO에 투자할 수 있는 사프트(SAFT)와 같은 투자 방식들이 고안됐다.
또한 비트코인이 블록체인에 산업에 대한 '옵션'이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커져버렸다. 1조 달러 규모의 자산과 10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에는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 '가치 저장'을 목적으로 하는 자산의 펀더멘털은 대중의 믿음이다. 금도, 국채도, 비트코인도 모두 일종의 종교와 같은 믿음 체계가 투자 내러티브의 본질이다.

기관 자본이 비트코인 수요 이끈다
수천억 달러의 시총을 지닌 종목은 많지만, 1조 달러 이상의 규모를 지닌 종목은 손에 꼽는다. 사이비 취급받던 종교가 세계 톱10의 신도와 규모를 갖게 되면 더 이상 사이비가 아니다. 거기다 이제는 일론 머스크나 폴 튜더 존스와 같은 아이콘들과 각계 사회 지도층들도 신도가 됐다. 개인 간 거래(P2P) 방식으로 거래가 가능한 디지털 금을 지향하던 소수 비트코인 1세대들의 내러티브가이제는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IB)들이 연구보고서를 낼 정도로 글로벌한 설득력을 갖게 됐다.
정식 자산군으로서 확대된 저변과 더불어 또 다른 핵심적인 질적 변화는 기관 자본이 수요를 이끈다는 점이다. 기관투자가 비중이 60%를 넘는 미국 증시와는 달리, 투자자의 대부분이 개인인 중국 증시는 심한 변동성을 자랑한다. 기관들의 경우 개인보다 과감한 베팅보다는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한 투자를 한다. 즉, 지금 투자를 결정한 기관들이 실제 매입을 집행하는 것은 몇 달 뒤가 될 것이며, 특정 펀드들의 경우 높은 변동성에도 장기 투자를 할 만한 스케일과 타임라인을 갖고 있다. 2017~2018년이 거친 청소년기였다면 2020~2021년은 기관들이 주도하는 보다 성숙한 시장의 형태를 띠고 있다.
[빅스토리]2021년의 비트코인, 2017년과는 다르다

결론적으로 2017년의 상승장과 2021년의 상승장에는 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비트코인 자체는 변한 것이 없지만,금융투자 자산으로서 자리 잡을 수 있는 인프라와 제도가 정비됐고, 또 보다 훨씬 유리한 거시경제 환경이 조성됐다.
월가에서는 ‘묻지마 투자’보다는 정식 인플레 헤지 자산으로서 인식됐으며, 그 저변 또한 글로벌한 규모로 넓어졌다. 개미들이 아닌 기관들이 투자 수요를 이끌며 2017년 보다 탄탄한 기저수요를 갖게 됐다.
물론 더이상 비트코인의 폭락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달이 차오르면 기울듯, 모든 자산은 거품이 생기기 마련이고 또 언젠가는 조정을 받게 돼 있다. 다만, 투자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비트코인이 투기냐 아니냐를 논쟁하기보다는 비트코인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자산의 펀더멘털을 공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또 디지털이 몰고오는 혁신들이 하루가 다르게 기존 사업자들을 도태시키는 글로벌 경쟁 환경에 놓여 있는 한국에 입장에서, 비트코인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를 가지고 논쟁하기보다는 이를 통해서 파생되는 산업에서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한 생산적인 논의와 실천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이준행 대표는...
가상자산거래소 고팍스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다. 전 어소시에이트 디렉터, 헤드랜드 캐피털 파트너스 OPS팀, 매킨지 컨설턴트 출신이며 하버드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현재 한국핀테크산업협회의 부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이준행 스트리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