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작가 <달까지 가자>

비트코인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면. 누군가 한번쯤 꿈꿨을 상상이다. 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는 비트코인으로 해피엔딩을 맞이한 세 주인공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달달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준다.
[Book Talk] 코인 세대, 달콤한 일상을 꿈꾸다
20대 초반에 지인으로부터 근로소득 외 소득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한다고 들었다. 인생선배의 조언이라 진지하게 받아들여 투잡(2JOB) 인생을 걸었다. 주중에는 회사,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먼 미래의 풍요로운 삶을 그리며 버텼다.
시간이 흘러 3년 전, 모 대학 근처의 커피숍에서는 이상한 풍경이 펼쳐졌다. 대학생이 노트북을 들고 과제를 하는 조용한 프랜차이즈 카페인데, 당시엔 조금 들뜬 분위기였다. 커피를 마시며 그들이 주시하는 것을 관찰했다. 젊은이들은 숫자가 빠르게 바뀌는 애플리케이션을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며 그것만 바라봤다. 나는 그때 처음 코인(가상화폐) 거래소를 알게 됐다. 인생선배의 조언이 임대소득이나 주식소득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2주 정도 커피숍에 가며 그들을 관찰했다. 삼삼오오 모여 인사 대신 “얼마 잃었어”, “얼마 올랐어”라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 후로 공공장소에서 비슷한 화면을 보는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그렇게 내 폰에도 ‘빗썸’을 다운로드 받아 바라보게 됐다. 실시간으로 바뀌는 숫자에 현기증이 났다. 수학을 못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만 춤을 추듯 바뀌는 숫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걸 왜 할까’라는 의문만 남긴 채 빗썸은 내 폰에서 삭제됐다.
다시 코인 거래소를 다운로드 받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라져도 괜찮을 아주 소액을 넣어 아침, 점심, 잠들기 전 한 번씩 관찰한다. 주식과 다른 점이 있다면 24시간 쉬지 않고 거래가 지속됐고, 투자의 기준을 잡기가 모호했다. 내가 코인에 투자할 때는 모든 코인 가치가 최고점을 찍고 있는 상태였다. 눈여겨본 코인에 ‘매도’ 버튼을 누른 후 한동안 파란색의 ‘마이너스(-)’를 보며 흐릿해지는 정신줄을 잡아야 했다.
몰랐지만, 나 빼고 주변의 2040세대는 모두 코인 거래소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카카오톡 단체 톡방 대화도 점점 주식과 코인 이야기로 점철돼 가고 있다. 20대에 콜센터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 친구는 주식할 돈을 모으기 위해 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말 노동만으로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돼버린 것일까.
'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창비, 2020년 4월
'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창비, 2020년 4월
<달까지 가자>는 흙냄새 폴폴 나는 다해, 지송, 은상의 코인 성공기다.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못한 세 사람이 1.5계단 오르기까지 마음을 졸이며, 엑시트(exit) 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돈이 없는 현실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다.
세 사람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마론제과’에서 일을 한 지 햇수로 3~4년이다. ‘올해의 야근왕’ 타이틀을 받고도, ‘요구 충족’으로 동결된 임금에 만족해야 했다. 공채를 통해서 입사한 정규직과는 다르지만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았다. 소속된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맞춰 살아간다. 이들에겐 돈이 필요했다. 대출금, 자취, 연애 등등. 살면서 지불해야 할 돈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 통장의 숫자가 0이나 마이너스가 찍히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돈이 없으면 안 되는 세상이 돼버렸다.
“너도 빨리 들어와. 솔직히 우리한텐 이제… 이것밖에 없어.”(100쪽)
소설 속 ‘이더리움’은 완벽한 제이(J) 곡선을 띠고 있었다. 투자를 하면 그 이상의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근거다. 절박함으로 시작한 ‘이더리움’ 덕분에 제주여행을 갈 수 있었고, 최고급 호텔에서 투숙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느냐고 되묻는 주인공들을 보며, 잠깐의 경제적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이 몇 가지 있지만, 경제적 여건은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다. 이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각종 스펙을 쌓아도 근근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나한테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 너한테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 난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309쪽)
다른 건 몰라도 ‘돈’은 언제나 부족하다. 재건축으로 부득이하게 이사를 해야 하는 친구는 “일주일 사이에 5000만 원이 올랐다”며 불안함을 호소한다. 매일 내 월급과 통장은 그대로지만, 물가는 치솟는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기엔 나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그렇기에 ‘충분’보다 ‘부족’을 외치며 ‘달까지 가자’고 자기 위안을 하는 건 아닐까.
2017년 1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세 사람의 코인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소설에 나오는 그래프는 모두 실제라며, 여기에 맞춰 글을 쓰느라 힘들었다는 작가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만큼 생생하게 쓰려는 마음이 느껴지기도 하고, 정말 어디선가 돈이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그래서 ‘달달한 일들만 가득하기 바랍니다’라고 적힌 작가의 친필이 마음에 닿았다. 돈이 있다고 해서 달콤한 일들만 가득한 건 아니다. ‘어디선가 3억이 뚝 떨어진다면’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입안 가득 초콜릿 맛이 메워지는 것처럼 소설을 읽으며, 달콤한 일상들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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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서윤 독서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