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섭 박사의 바로 이 작가 - 최지윤

[한경 머니 기고 = 김윤섭 아이프 아트매니지먼트 대표·미술사 박사] 보석은 인간의 욕망을 반사한다. 그 보석에서 자신의 욕망 어린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최지윤 작가는 보석을 모티브로 인간의 잠든 내면감성을 들춰낸다. 매우 직관적인 화법이다. 간결한 화면 구성과 과감한 색감의 바탕 위에 반짝이는 보석들로 사랑의 욕망을 그린다.
사랑하놋다20-I, 캔버스에 혼합 재료, 91×91cm(50호 변형), 2020년
사랑하놋다20-I, 캔버스에 혼합 재료, 91×91cm(50호 변형), 2020년
최지윤 작가의 ‘보석회화’는 동서양의 감성을 아우르는 감미로운 사랑의 서정시다. 겉으론 서양화의 재료를 사용하지만, 그 이면엔 동양적 조형미가 근간을 이룬다.

우선 화면 구성의 절제미와 과감한 여백미를 들 수 있겠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상이 산만해 보이지 않는 것은 화면의 면 분할 덕분이다. 기본 바탕은 아크릴 물감의 선명한 색조를 활용해 서너 개의 크고 작은 면으로 나눈다. 배경화면의 전면엔 높은 언덕 혹은 우뚝 솟은 바위를 배치하고, 그 위에 보석으로 치장한 주인공을 최대한 멋진 포즈로 배치한다.

최 작가의 그림이 ‘보석회화’라고 불리는 이유는 제각각의 주인공들을 장식한 방식 때문이다. 마치 온몸을 여러 보석으로 두른 듯, 화려한 반짝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런 실재감 넘치는 시각효과는 쉽게 얻을 수 없다. 원하는 바탕색이 나올 때까지 캔버스에 최소 대여섯 번의 밑칠 작업을 거친다. 각종 보석으로 치장한 주인공은 두껍고 질긴 장지(壯紙)에 그려 완성한 후 오려 붙인다. 다시 주변에 어울리는 꽃이나 바위 등을 그린 후, 화면 전체에 코팅재(UV 바니시)를 도포한다. 마지막으로 보석 부분에만 하이라이트로 크리스털 레진을 얹어 24시간을 굳히면 끝난다. 보석회화 한 점의 구상부터 완성하기까진 보통 한 달 이상의 공력을 들여야 된다.
(왼쪽) 사랑하놋다19-V, 캔버스에 혼합 재료, 160×60cm(50호 변형), 2019년
(오른쪽) 사랑하놋다19-VI, 캔버스에 혼합 재료, 160×60cm(50호 변형), 2019년
(왼쪽) 사랑하놋다19-V, 캔버스에 혼합 재료, 160×60cm(50호 변형), 2019년 (오른쪽) 사랑하놋다19-VI, 캔버스에 혼합 재료, 160×60cm(50호 변형), 2019년
그림의 첫인상은 매우 친밀하면서도 이색적이다. 서로 다른 양면성을 지닌 셈이다. 먼저 친밀하다는 것은 화면의 소재들 덕분이다. 단정하고 깔끔한 색조, 아름답고 우아한 꽃들의 향연, 고귀한 자태의 보석화 주인공 모습들은 누구나 평소 한 번쯤은 가슴에 품었던 정경일 것이다.

나만의 보석창고를 열어본 것처럼 기분 좋은 흥분감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이토록 정서적인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그림은 흔치 않다. 그런데 뭔가 모르게 낯선 느낌도 받게 된다. 대개 수직으로 높게 세워진 기이한 바위가 원인일 듯싶다.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이 바위의 역할은 무엇일까.

흔히 동양의 전통회화에선 특이한 모양을 한 큰 돌이나 바위를 주인공으로 삼은 그림이 그려졌다. 괴석도(怪石圖)라고 부른다. 주로 바위는 ‘대자연의 축소’로 여겨져 장수(長壽)를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천지의 정밀한 기운을 부여받은 대상물’로도 여겨졌다. 이처럼 괴석은 불변성의 대명사로서 문인화의 단골 소재로 이용됐다. 한국화를 전공한 최 작가의 그림에서도 그 쓰임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정한 주인공 한 쌍의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사랑하놋다20-X, 캔버스와 장지에 혼합 재료, 117×91cm(50호), 2020년
사랑하놋다20-X, 캔버스와 장지에 혼합 재료, 117×91cm(50호), 2020년
사랑하놋다18-IX, 캔버스와 장지에 혼합 재료, 130×130cm(100호 정방형), 2018년
사랑하놋다18-IX, 캔버스와 장지에 혼합 재료, 130×130cm(100호 정방형), 2018년
“나는 자연을, 세상을, 마음을 그린다. 사물과 꽃으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속에서 추억하고 위안을 얻으며, 소망하고, 사유한다. 나의 ‘달콤한 꽃’이 내 깊은 마음속에 닿아 기쁨의 행위와 묘사를 통해 행복한 울림을 주는 것처럼, 나의 작업을 보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달콤한 삶의 희망을 깊게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연의 세계는 고요하며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이 없는 것처럼, 나의 시선과 직관과 감각과 사유가 행복을 바라는 세상 사람들에게 서글프도록 아름답고 고요한 울림이 돼주고 싶은 것이다.”

최 작가의 그림에서 꽃은 언어이자 음악이다. 화면의 주인공들이 나누는 밀어(蜜語)이거나 내면에 숨긴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의 표상이며, 광대한 자연과의 교감을 잇는 음률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주인공과 꽃이 늘 눈길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크고 작은 꽃송이들은 하나하나의 리듬감을 지닌 음표 역할을 하고 있다. 작품 <사랑하놋다18-VI>처럼 간혹 공중에 흩어진 꽃잎들은 화면의 공명(共鳴)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신(神)이 자연을 창조했다면, 그 자연 중에 가장 으뜸은 무엇일까. 최 작가는 망설임 없이 “꽃은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최상의 선물이다”라고 말한다. 그에 빗대어 “보석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사물이다”라고도 한다. 그는 꽃과 보석의 조우를 한 화면에서 이뤄냈다. 적어도 그녀에겐 둘이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은 보석을 욕망의 상징으로 비유하지만, 최 작가는 꽃과 보석의 만남을 통해 ‘사랑의 힘’을 최대한 아름답게 승화시키고자 노력한다.
사랑하놋다19-IV, 천과 장지에 혼합 재료, 지름90cm(40호 변형), 2019년
사랑하놋다19-IV, 천과 장지에 혼합 재료, 지름90cm(40호 변형), 2019년
사랑하놋다18-VI, 캔버스와 장지에 혼합 재료, 지름50cm, 2018년
사랑하놋다18-VI, 캔버스와 장지에 혼합 재료, 지름50cm, 2018년
“우리는 늘 사랑한다. 아니 사랑에 목말라 있다. 이처럼 무섭게 감정의 영역까지 파고드는 인공지능(AI)이라 할지라도, 결코 사랑의 신비를 담아낼 수 없다. 사랑은 오롯이 신의 영역이다. 그런데 그 사랑의 영역을 다루는 신탁자들이 있다. 예술가다. 화가가 됐건, 소설가가 됐건, 시인이 됐건 그들은 지고의 원리 사랑을 푸는 위대한 신탁자들이다. 누군가의 자만은 매력적이다. 또 누군가의 순종은 굴종처럼 보인다. 자만과 매력, 순종과 굴종의 뒤섞인 감정은 우리 안에서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사랑의 에너지로 결집되고, 그 결집된 성분이 쌓여 ‘나’라는 특별한 사랑의 메신저가 된다.”

실제로 최 작가의 작품 제목엔 ‘사랑하놋다’라는 말이 공통적으로 들어간다. 이는 ‘사랑하는구나’의 순우리말이다. ‘사랑하는구나’라는 어휘에는 다소 관조적 시각이 담겨 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들뜬 단계는 지났다. 어느덧 평온의 안정된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연인을 바라보는 감성이다. 어쩌면 바라보는 이의 부러운 내심이 반영됐을 수도 있다. 아마도 사랑이란 감정을 상상하거나 그 장면을 목격할 때만큼 마음이 설레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사랑은 삶을 생동하게 하는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만유인력은 사랑에 빠진 사람을 책임지지 않는다”고 했다. 최 작가는 자연의 섭리마저 거스르는 사랑의 힘을 온전히 표현할 비법을 찾아냈다. 보석회화가 그 해법이었다. 그의 보석회화엔 사랑을 다루는 신탁자의 전능(全能)이 담겼다. 더 중요한 것은 진정한 주인공이 그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이다. 우리들이 평소 꿈꿨던 현실 속 이상향을 보여주고 있다. 최 작가 작품의 전시 가격은 대략 10호(53×45cm) 330만 원, 50호(116.8×91cm) 1500만 원, 100호(130.3×162.2cm) 2500만 원 정도다.

최지윤 작가는…
1962년생. 경희대 미술학과 및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그동안 예술의전당, 아트사이드갤러리, 노화랑, 인사아트센터 등에서 개인전 26회를 가졌다. 또한 KIAF, 아트부산, 취리히아트페어, 제네바아트페어, 몬트리올아트페어 등 국내외 아트페어에 40회와 주요 단체 기획전에 400여 회를 참여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외교통상부, 주브루나이대사관, 국회의사당 로비 작품 설치(임차), (주)크라운해태, (주)윈스로드, (주)태성씨앤티, (주)오엘텍, 명지성모병원 등 많은 기관과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다. 더불어 tvN <그녀의 사생활>·<블랙독>, 채널A <터치>, KBS2 <엄마가 뿔났다>, SBS <식객> 등 여러 드라마 속에 작품이 선보여 대중적인 인기도 얻고 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경기미술대전 운영위원, 경희대 미술대학 겸임교수, 성균관대 겸임교수, 경기대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미술협회, 회토회, 춘추회, 한국화여성작가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글·그림 김윤섭 아이프 아트매니지먼트 대표(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