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사랑하는 두 남자에게 오리스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당신의 오리스 이야기가 궁금해요’라는 단순한 질문에 대한 그들의 답은 지극히 길었고, 애정은 더없이 깊었다.

최순(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지난 6월 출시된 오리스 아퀴스 데이트 41.5mm.
지난 6월 출시된 오리스 아퀴스 데이트 41.5mm.

기계식 시계를 좋아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정확한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 전자시계의 그러한 면을 존중해왔다. 어쩌면 전자시계 이외의 대안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시계는 시간을 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전자시계를 차면 될 일이며, 하물며 내겐 스마트폰까지 있지 않은가.

그랬던 내가 우연히 접하게 된 기계식 시계의 세계는 일종의 ‘낭만’이었다. 호캉스와 캠핑의 차이라고나 할까? 편리함과 익숙함을 뒤로 한 채 존재의 근원에 다가간 느낌, 불편함을 감수해도 좋을 만큼 감성을 자극하는 그 무엇. 나는 그것을 ‘기계식 시계의 낭만’이라 칭하며 나의 삶 속으로 기꺼이 초대했다.

기계식 시계를 차면 일단 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점이 좋다. 진료를 하거나 연구할 때도 손목을 누르는 그 묵직한 존재감은 늘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 ‘누군가’는 비록 홀로 서랍에 며칠 놔두면 멈춰버리기도 하는 예민한 성정을 지녔지만, 그것마저 생명이 있는 존재인 양 느껴져 좋았다. 특유의 시계 소리도 좋고, 내가 열심히 움직이며 일하는 동안 이 친구도 보다 완벽한 시계로서의 역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긴긴 밤 연구에 몰두할 때마다 위안이 되기도 한다.

기계식 시계의 낭만에 젖어 들며 ‘오리스’라는 브랜드를 알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이 분야에 정통한 한 지인은 나의 첫 기계식 시계를 오리스에서 골라보라 조언했고, 나 역시 기계식 시계만 생산하는 독립 브랜드인 데다 입문용으로 적당한 가격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가 가는 오랜 역사와 스위스 브랜드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낙점한 터였다. 밤낮으로 고민하던 내가 선택한 것은 바로 ‘아뜰리에 컴플리케이션 워치’. 매장에서 이 제품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의료인으로서의 이성이 마비된, 오롯이 감성과 감정으로만 움직이는 존재로 변해버렸다. 기계식 시계임을 온몸으로 표출하는 세 개의 서브 다이얼과 문페이즈 디스플레이는 늘 꿈꿔왔던 그 모습이었고, 무엇보다 기계식 워치의 유려한 움직임을 시스루 백을 통해 감상할 수 있으니 이성(理性)은 뒤로 하고, 이상(理想)을 실현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시작된 기계식 시계와의 인연은 2021년인 지금, ‘오리스 아퀴스 데이트’로 이어졌다. 셔츠 위에 흰 가운을 걸치고, 누구보다 손을 많이 씻는 직업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가죽 혹은 러버 스트랩보다는 스틸 브레이슬릿을 선호하는데, 요즘 출시된 스틸 브레이슬릿 기계식 시계 중 아퀴스 데이트만큼 나를 끌어당긴 제품은 없었다. 그닥 커다란 다이얼을 선호하지 않는 내게 직경 41.5mm 케이스의 아퀴스 데이트는 다소 크게 느껴지기도 하지만(이전 모델보다는 작아진 편이지만), 덕분에 심해처럼 신비로운 다이얼의 푸른빛 광택을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병원과 집만 오가는 생활에 지친 내게 아퀴스 데이트의 푸르름은 일상에 청량함이 돼준다. 더욱이 오리스가 단독 기획한 캘리버 400 무브먼트는 서랍에 며칠 넣어둔다고 해도 삐지지 않을 만큼의 파워 리저브(무려 5일!)를 자랑한다. 일상에서 자기장에 노출되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는 현대인의 생활환경 변화를 감안, 더욱 향상된 항자성 기능은 오리스의 워치메이커가 시계가 노출되는 환경 변화에 얼마나 많은 연구와 고민을 하고 있는지 여실히 느끼게 한다. 또한 오리스는 제품의 보증 기간을 10년으로 정하고, 이를 주기로 점검받을 것을 권한다. 이 말인즉, 아퀴스 데이트에 적용한 캘리버 400이 2031년까지는 서비스센터를 찾을 일이 결코 없을 거라는 오리스식 자신감의 방증이기도 하다. 2021년 아퀴스 데이트를 나의 기계식 시계 컬렉션에 추가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신욱(영화 & CF 미술감독)
오리스 홀스테인 에디션 2021
오리스 홀스테인 에디션 2021

미술감독으로 일하며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스타일’에 관한 것이다. 아트적 직업을 갖고 있다는 건 그 사람의 일상이 굉장히 ‘아트적’이고 ‘패셔너블’할 거라는 선입견으로 이어지고, 그만큼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을 거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모양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게 정해진 스타일이란 없다. 작품 따라 작업의 결을 정하고, 감독과 제작자가 원하는 이미지를 구현하는 미술감독에게 국한된 스타일이라니, 오히려 스타일이 없는 편이 좋은 거 아닌가? 내 패션 스타일도 그렇다. 현장에서의 편리함을 위해 캐주얼을 넘어 스트리트와 그런지 스타일을 오가는 게 일상이지만, TPO에 맞춰 입다 보면 특별히 정해진 스타일이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저런 질문을 받을 때면 때론 곤혹스럽기도 하다. “그냥 편하게 입어”라는 대답은 성의 없을 것 같고, 달리 정의해 얘기하기엔 꼭 그런 것도 아닌데 괜히 짜맞춰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칠 않고.

이런 내게 한결같은 스타일이 있다면 딱 하나, 기계식 시계 마니아라는 점이다. 늘 기계식 시계만 고집하는 건 아니지만 즐겨 차고, 특히 중요한 미팅이 있을 때는 반드시 착용하는 편이다. 스타일은 평범해도 그것 하나만으로 스스로 드레스업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그중 나의 ‘최애’ 브랜드는 오리스다. 대표 모델 라인인 다이빙 시리즈와 파일럿 시리즈는 이미 섭렵했고, 요즘엔 클래식 시리즈 중 어떤 것을 고를까 고민하는 중이다. 다이빙이나 파일럿 시리즈를 선택할 때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는데, 클래식 시리즈는 드레스 워치라는 생각이 강해 나름 고민이 된다. 내가 가장 즐기지 않는 룩이 바로 포멀한 슈트인데, 드레스 워치를 자주 착용할까 싶기도 하고, 정장에는 드레스 워치를 착용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촌스러운 생각 같기도 해서 말이다. ‘어차피 다이빙 워치 중에도 드레스 워치가 있는데 굳이?’라며 별별 생각을 다 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은 결국 구입하고 말 거라는 거다.

이러한 와중에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오리스에서 ‘홀스테인 에디션 2021’을 출시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홀스테인 에디션 2021은 내 최애 시리즈인 빅 크라운 파일럿 워치를 기반으로 한, 전 세계적으로 250피스만 한정 생산하는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더욱이 오리스가 개발한 획기적인 캘리버 400 시리즈에서 탄생한 새로운 오토매틱 무브먼트인, 마찬가지로 오리스에서 자체 개발한 오리스 캘리버 403을 탑재한 최초의 모델이다 보니 궁금증이 끓어오를 수밖에. 기능에 대한 호기심 외에도 ‘홀스테인’이라는 명칭을 시계 이름에 붙였다는 것 역시 오리스 덕후에겐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홀스테인은 오리스 본사가 자리하고 있는 브랜드의 근간으로 지금은 시계 관련 사업이 풍부하게 전개되는 지역이지만, 정작 브랜드 설립 당시에는 일반적인 시계 제조업체들이 번성했던 지역과는 동떨어진 곳이었다고. 그럼에도 오리스는 브랜드의 지속적인 성장과 함께 홀스테인을 새로운 시계 산업 지대로 변화시켰고, 로고에 지역명을 넣으며 그 애정을 이어가고 있다. 오리스의 역사 그 자체인 홀스테인을 에디션명으로 지정한 데에는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한몫했을 터. 작년에 출시한 오리스 ‘홀스테인 에디션 2020’이 청동을 적용한 브론즈 컬러였다면, 이번 홀스테인 에디션 2021 버전은 그레이 컬러 일색이다. 흔히 초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뉴욕 같은 도시(오죽하면 ‘콘크리트색’이라 부를까?)를 상징하는 그레이 컬러를 가장 전통적인, 그것도 장인 정신에 충실한 기계식 시계에 적용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온통 시크하고 날렵한 이미지로 채워진 홀스테인 에디션의 또 다른 묘미는 바로 ‘반전미’다. 이 현대적 디자인의 시계 케이스 뒷면에 앙증맞은 오리스베어가 인그레이빙되어 있으니 말이다. 나는 오리스베어와 눈맞춤 하며 미소 짓는 덕후의 즐거운 취미 생활을 떠올리며 홀스테인 에디션을 구입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부디 구할 수 있길. 연락한 김에 클래식 시리즈 소식도 좀 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