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섭 박사의 바로 이 작가 - 데이비드 레만

캔버스에서 춤추듯 역동적이고 즉흥적인 붓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솜털의 섬세한 결로 빚은 듯, 세심한 붓질이 자아내는 화면의 깊이는 의외의 신선함을 선사한다. 구아슈, 유화물감, 구리산화제, 스프레이 페인트 등의 다양한 재료를 동시에 하나의 감성으로 조화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몸의 운율에 따라 자신만의 독창적인 조형어법을 완성해낸 화면은 회화 본연의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Casanova, 캔버스에 혼합 재료, 200×130cm, 2021년
Casanova, 캔버스에 혼합 재료, 200×130cm, 2021년
데이비드 레만(David Lehmann)은 독일을 대표하는 차세대 주요 작가로 손꼽힌다. 젊은 나이에 이미 독일의 주요 미술관 기획전에 초대돼 강렬한 색감과 인상적인 터치로 수많은 관객에게 찬사를 받고 있다. 특히 레만은 “동년배 작가들이 지켜야 할 기준을 세운 새로운 예술가”로 평가받을 정도로 강렬한 작품 세계로 주목받고 있다.

레만의 작품은 인간 본연의 기본적인 욕구로부터 출발해 주변 환경의 다양한 요소를 포함한다. 개인의 욕망, 사회적 이념, 정치와 종교의 이면에 이르기까지 여러 주제를 문학적 코드 혹은 철학적 기반을 매개로 작품화하고 있다. 1987년 독일의 구동독 소도시인 루카우(Luckau)에서 태어나 코트부스(Cottbus)에서 자라고 생활하는 것도 한 영향일 것이다. 통일독일 이후 긴 시간이 흘렀지만, 동독 특유의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깊이는 자연스럽게 우러나고 있다.

그는 정식으로 미술을 전공하기 전에 2년간 철학을 개인수업 받았고,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베를린 국립예술대에서 발레리 파브르(Valerie Favre) 교수 지도하에 회화를 전공했다. 작가의 감성적 기호에 따라 시각화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레만의 경우 회화 공부 이전에 철학 수업을 스스로 선택했고, 지금도 여전히 철학과 문학 공부를 꾸준히 병행하는 것이 그의 작품을 좀 더 특별하게 하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

회화적 근원에 큰 관심을 갖는 레만은 “중학교 때 드레스덴의 미술관에서 접한 올드마스터 페인팅들에서 너무 큰 감명을 받았고, 이미 그때부터 화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가 추구하는 작품의 특징은 어떤 형식이나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드로잉 방식이다. 회화와 드로잉을 넘나드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학창 시절부터 수많은 예술가상과 장학금을 독차지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Half Time, 캔버스에 혼합 재료, 220×540cm, 2019년
Half Time, 캔버스에 혼합 재료, 220×540cm, 2019년
Jealousy, 캔버스에 혼합 재료, 70×60cm, 2021년
Jealousy, 캔버스에 혼합 재료, 70×60cm, 2021년
그중에 2016년 독일 브란덴부르크 연방주에서 수여하는 ‘젊은 예술가상 최우수 수상’은 대표적인 예다. 또한 2019년 독일의 주요 4개 도시에서 ‘독일 이머징 회화 작가 특별 순회전’의 53인 젊은 회화작가 중 한 명으로 초대됐다. 이때의 심사위원단은 전 독일 미술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인 50인으로 구성돼 큰 화제를 모았다. 또한 1차로 뽑힌 200명 작가의 작업실을 모든 심사위원들이 무려 2년간 일일이 방문해 최종 53명 본선 초대작가를 선정했는데, 그 작가들 중에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냈다.

독일의 유명 미술비평가인 라우라 클림트는 레만의 작품에 대해 “단순한 희망을 불어넣기보다는 탈이데올로기적 미로 속으로 우리들을 밀어넣는다. 문화적 위계질서 따위는 무시한 채 니체와 커트 코베인, 심지어 헤로도토스와 마돈나가 같은 무대에 서게 한다”고 평가했다. 그만큼 레만의 작품에는 ‘기존의 조형적 형식을 넘어서는 과감한 조형적 실험정신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레만의 회화는 정치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주제들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며, 에로틱한 이미지를 적나라하고 도발적으로 캔버스에 가감 없이 옮긴다. 끊임없이 여러 이념들을 한 화폭에서 조율하며 자유분방하게 동시대적 감성을 직관적으로 재해석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그 역시 “예술가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에 자신의 입장을 취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현재 유럽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 특히 포퓰리즘(populism)이나 극우사상에 대항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가령, 가로 5m가 넘는 대형 작품 <하프 타임(Half Time)>을 자세히 살펴보면, 왼편에 히틀러 모습을 한 극우파 인물이 탐욕스럽게 구운 소시지를 먹고 있다. 오른편에는 체 게바라의 배지(badge)를 가슴에 단 페이크 혁명가의 모습, 귀족의 옷을 입고 나치의 손동작을 한 남성의 모습도 보인다. 여러 이념들이 끊임없이 이용되고 선동되는 현 정치의 모습을 강렬하게 풍자적으로 꼬집고 있다.
My Unfair Lady, 캔버스에 혼합 재료, 200×200cm, 2021년
My Unfair Lady, 캔버스에 혼합 재료, 200×200cm, 2021년
또 다른 작품 <마이 언페어 레이디(My Unfair Lady)>는 1964년 제작된 미국의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라는 제목에서 영감을 받았다. 한 지식인 교수가 상류층의 친구에게 ‘하층 계급의 여인을 한 명 데려와 정해진 기간 안에 그녀를 교육시켜 우아하고 세련된 귀부인으로 만들어 놓겠다’는 내기를 한다. 결국은 이 계획이 성공해 아름답고 교양을 갖추게 된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영화인데, 한 편의 영화를 한 장면의 회화로 재해석한 것이다. 야수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그림 정면의 형상과 캔버스 전체의 역동적이면서도 충동적인 붓 터치가 매력적이다.

<카사노바(Casanova)> 작품은 세기의 바람둥이로 잘 알려진 카사노바의 이야기를 가장 독창적이고 예술적으로 해석한 이탈리아 영화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카사노바>를 표현한 작품이다. 영화 속의 과장된 향락적인 장면과 의상, 색채, 광적인 향연, 육체의 쾌락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진 광경이다. 그 이면에 흐르는 허무함이나 우울함 등의 어두운 분위기를 색다른 표현 어법으로 구현한 대표작이다.

“레만의 그림은 결코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그의 그림은 회화와 회화의 역사 및 주제, 그리고 회화가 가지는 다양한 기술적 가능성에 대한 담론을 던져주고 있다.” 브란덴부르크 현대미술관 울리케 크레마이어 관장의 말이다.

레만 작품의 주제가 얼핏 사회정치적인 주제나 선정성에 치우쳤다고 보이지만, 내면엔 오히려 인간사의 매우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 있다. 특히 현재 일어나는 사건이나 현상을 과거 역사 및 고대 신화와 혼합해 자극적이지만 유머러스하게, 또는 비판적인 시각을 담아 풍자적으로 다룬다.
Listen to your heart!, 캔버스에 혼합 재료, 180×150cm, 2021년
Listen to your heart!, 캔버스에 혼합 재료, 180×150cm, 2021년
레만의 작품은 문학, 영화, 음악 등 다른 예술 장르에서 받는 풍부한 영감을 즉흥적으로 표현해 독특한 감성적 실루엣을 연출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렇듯 레만은 다양한 소재와 테크닉을 사용해 아름다움과 추함을 표현한다. 고대 신화나 고전문학을 현대식으로 풀어 새로운 내러티브를 창조하기도 하며,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심리 상태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결국 레만은 ‘색과 붓놀림이라는 회화 자체의 본질에 충실하면서 인간이 처한 현상이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확장된 의미로서의 회화를 실현해 가는 작가’라고 하겠다.

마침 레만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 ‘이념 밖의 미로(Puzzling Astonishment)’라는 부제로 서울의 강북과 강남 전시장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종로구 삼청동의 초이앤라거갤러리와 강남구 청담동의 호리아트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회화작품 45점과 드로잉 30점 등 모두 75점을 선보이고 있다. 레만 작품의 전시 가격은 대략 ‘40×30cm’ 크기는 250만 원, ‘70×60cm’는 550만 원, ‘180×130cm’는 1500만 원 정도다.
데이비드 레만전 전경-호리아트스페이스
데이비드 레만전 전경-호리아트스페이스

데이비드 레만 작가
데이비드 레만 작가
데이비드 레만 작가는…
독일의 구동독 소도시인 루카우에서 태어나 코트부스에서 자랐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베를린 국립예술대 발레리 파브르 교수에게서 회화를 배웠다. 어린 시절부터 드로잉과 회화 전반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으며, 수많은 예술가상과 장학금을 수여했다. 2016년 독일 브란덴부르크 연방주에서 수여하는 젊은예술가상 최우수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2019년 독일의 4개 도시에서 진행된 ‘독일 이머징 회화 작가 대규모 순회전시’에도 선정됐다. 이후 본, 비스바덴, 함부르크, 켐니츠의 시립미술관에서 순회 그룹전을 거치면서 차세대 주요 회화작가로 독일 전역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또한 2020년 쾰른의 초이앤라거갤러리에서 개최된 구동독 출신 작가 3인전을 기점으로 독일의 비중 있는 미술애호가들과 컬렉터들에게도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는 코트부스에서 거주하며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김윤섭 미술평론가는…
미술평론가 김윤섭은 명지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2019 안양국제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현재 숙명여대 겸임교수, 국립현대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정부미술은행 운영위원, 인천국제공항 문화예술자문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2021년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 전시감독, 아이프(AIF) 아트매니지먼트 대표,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서울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글 김윤섭 아이프 아트매니지먼트 대표(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