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다. 기업들도 최근 ESG 경영을 표방하며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열공모드에 돌입했다. 이런 가운데 전통 가치주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착한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사모자산운용사가 시장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국내 최초로 ESG 기반의 사모펀드 운용사를 설립한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을 한경 머니가 만났다.
이채원 라이프운용 의장 “ESG, 전통 가치주 한계 보완”
‘돌아온 가치투자의 대가.’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가치투자의 대가로 이름을 날리며 32년간 한 우물만 파던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이 다시 여의도로 복귀했다. 지난해 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대표이사에서 사임한 지 6개월 만이다. 이 의장은 1988년 한국투자금융그룹에 공채로 채용된 후 지난해까지 32년간 한 직장에서 근무한 외길 증권맨이다. 동원증권에서 역외펀드 운용을 시작으로 펀드매니저로서 실력을 갈고 닦았다. 입사 10년 만인 1998년에 국내 최초의 가치투자 펀드인 ‘밸류이채원펀드’를 개발 운용했고, 1999년 기술주 열풍 속에서도 끝까지 투자 원칙을 고수하며 가치투자가로서의 진면목을 발휘했다. 한국투자증권의 고유 계정을 맡은 2000년 4월부터 6년간 종합주가지수가 56%의 상승세를 기록하는 동안 이채원 펀드의 수익률은 무려 435%를 달성했다. 이 의장은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창립 멤버로 10여 년 동안 CIO 및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한국투자증권의 자회사인 한국밸류운용을 ‘가치투자’의 명가로 키워냈다. 지난해 12월 한국밸류운용 대표이사를 사임하고 그가 새롭게 둥지를 튼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착한 행동주의를 표방한 ESG 기반의 사모자산운용사인 라이프자산운용이다. 다음은 이채원 의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라이프자산운용에 대해 소개해달라.
“라이프자산운용은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행동주의, 착한 행동주의를 표방한다. 동시에 스타트업과 같은 초기 기업과 ESG를 적용하는 성숙 기업을 전부 아우른다. 라이프라는 의미 그대로 가치를 추구하고 모두를 위한 장기 투자, 인생을 걸고 운용한다는 의지도 담고 있다. 라이프자산운용의 펀드 전략은 ESG 행동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가치투자 펀드를 운용하는 것이다. ESG 부문에서 저평가된 기업을 찾아 개선 가능성과 경영진의 개선 의지를 보인 기업에 대해서만 투자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이른바 ESG를 이미 잘하는 기업보다 잘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발굴한다. 기존의 행동주의와는 차별화된 기업에 우호적인 착한 행동주의다. 그리고 가치투자를 접목시켰다.”

-ESG 기반의 사모자산운용사를 출범하게 된 계기는.
“지난 5년간 성장주가 강세를 보인 상황에서 직접 운용했던 전통 가치주 펀드들의 성과가 좋지 못했다. 수익률이 회복되면 물러나려고 했지만 기회가 없었고, 전통 가치주의 한계를 느끼던 시점이었다. 전통 가치주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ESG와 행동주의 전략을 결합한다면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고 성과도 빨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전통 가치주들의 성과가 좋지 않았던 이유도 ESG가 접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이 같은 생각이 맞아 라이프자산운용의 전신인 다름자산운용 남두우 대표, 강대권 라이프운용 공동대표(전 유경PSG자산운용 CIO)와 함께 ESG 사모자산운용사를 설립하게 됐다.”

-출범 이후 고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ESG 기반 행동주의에 대해 꽤 관심이 높다. 전통 가치주에 행동주의가 가미되면서 성과를 내는 시점이 빨라지게 됐다. 사모펀드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아지긴 했지만 수요는 많아진 것이다. 그 결과 설립한 지 2개월 만인 지난 8월 수탁고 2000억 원을 돌파했고, ESG 1·2호 펀드 시리즈에 900억 원 이상 모집됐다.”

-전통 가치주들과 ESG를 접목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철강·화학·시멘트·제지 업종들이 전통 가치주인데 ESG와 거리가 먼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도 많고, 기업설명회(IR)를 하는 데 소극적이다. ESG의 사회(S) 측면에서 주주와의 소통도 매우 부족하다. 주주정책은 커녕 지배구조도 투명하지 않은 기업들이 많아서 항상 저평가돼 있는 기업이 많았다. 이들 기업들이 개선 의지를 보이면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전통 가치주들이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가치투자와 ESG, 행동주의를 결합해서 성과 속도를 앞당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장기 투자가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가 있나.
“한국 시장을 둘러싼 환경이 장기 가치투자를 고수하기에 우호적이지 않다. 사실상 투자 보호장치가 미흡하다. 상법 제382조의 3 이사회 선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 규정은 우리나라 기업의 이사는 회사를 위해 일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글로벌 트렌드는 주주를 위해서 일하고 소비자와 환경을 위해 일한다. 우리나라 상법이 글로벌 트렌드와 역행하는 셈이다. 따라서 기업자본주의가 아닌 주주자본주의가 확립돼야 한다. 이사가 회사만을 위해 일하지 말고 모든 주주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원리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호가 돼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와도 관련이 있나.
“ESG가 취약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한 것이다. 기업의 구조는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바뀌는 것이 어렵지만 인위적으로 착해질 수는 있다. 착한 척 하려면 주주들에게 배당도 주고 윤리적이지 못하는 일과는 멀어지게 된다. 착한 기업들의 가치가 결국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기존 행동주의 펀드와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기업마다 경영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나름 사정이 있고 말 못할 이유가 있다. 예컨대 오너기업에서 상속 이슈가 있는데 주가가 오르면 머리가 아프다. 현금은 많지만 투자를 하거나 인수·합병(M&A)을 위한 플랜 등 말 못할 사정이 있는데 일방적으로 배당을 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업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개선만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ESG에 관심이 있는데 역량이 안 되거나 향상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주 대상이 된다. 전통적 ‘딥 밸류’ 중심의 종목 가운데 ESG 개선 의지가 있는 기업들을 선정해, 3% 이상 5% 미만의 지분을 확보하고 공개나 비공개 컨설팅을 통해 주주 제안을 하는 방식을 취한다.”

-가치투자가 1세대로서 가치투자 철학에 대해 말해달라.
“가치투자의 핵심은 시황과 무관하게 기업의 내재가치를 기준 삼아 매매한다. 내재가치보다 낮으면 사고 높으면 파는, 가격과 가치의 괴리를 취하는 전략이다. 그것 때문에 가치주는 구(舊) 경제, 사양산업, 복지부동이라는 꼬리표가 있다. 하지만 가치주의 3대 요소는 안정성, 수익성, 성장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가치주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정보기술(IT)·배터리·바이오·게임 업체도 가치주가 될 수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저평가된 종목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종목들을 찾는 것이 가치투자의 철학이다.”
이채원 라이프운용 의장 “ESG, 전통 가치주 한계 보완”
이채원 의장은…
중앙대 경영학과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
1988년 동원증권 국제부 역외펀드 운용
1996년 동원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 부장
국내 최초 가치투자 펀드(밸류이채원 1호) 설정 및 운용(1998.12)
2000년 동원증권 주식운용팀장
2005년 한국투자증권 자산운용본부장
2006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 및 최고운용책임자(CIO)
2018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이사 및 최고운용책임자(CIO)
2020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이사
2021년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



글 이미경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