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트 스트림(Nord Stream)2’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 우스트루가부터 발트해 해저를 거쳐 독일 북부 그라이프스발트까지 1230㎞에 달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말한다.
이 해저 파이프라인은 2018년 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9월 완공됐다. 공사비는 950억 유로인데, 이 중 절반은 러시아 최대 국영 에너지 기업인 가스프롬이, 나머지 절반은 독일 빈터셸과 유니페르, 오스트리아 OMV, 영국과 네덜란드 합작사 로열더치셸, 프랑스 엔지 등 5개 사가 각각 10분의 1인 95억 유로씩 부담했다.
러시아는 이 해저 파이프라인을 통해 연간 550억 ㎥에 달하는 천연가스를 독일에 보낼 계획이었다. 러시아는 이미 2012년 완공돼 가동 중인 1222km 길이의 ‘노르트 스트림1’을 통해 연간 550억 ㎥의 천연가스를 독일에 공급해 왔다. 하지만 이 가스관은 독일 정부와 유럽연합(EU)이 승인하지 않아 가동이 보류된 상태다.
미국과 독일은 그동안 이 가스관을 놓고 심각하게 대립해 왔다. 미국은 이 가스관을 통해 독일을 비롯해 EU 회원국들이 러시아산 가스를 공급받을 경우 러시아에 에너지를 지나치게 의존할 수 있다고 지적해 왔다. 미국은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EU를 견제하기 위해 이 파이프라인을 악용할 속셈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독일은 천연가스 수요의 75%를 노르트 스트림1과 2를 통해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게 된다. EU 회원국들은 지금도 매년 가스 수요의 25%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특히 핀란드, 슬로바키아 등 7개국은 가스 수요 100%를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있다. 반면 독일은 총 17기의 원자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고 2030년까지 전력 소비의 65%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계획인 만큼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수입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미국의 러시아 제재 카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에 대응해 미국이 노르트 스트림2 가동 중단을 ‘제재 카드’로 꺼내들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월 7일 백악관에서 양국 정상회담을 갖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만약 러시아의 탱크나 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는다면 노르트 스트림2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그것을 끝장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숄츠 총리도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군사 침략이 벌어질 경우 우리는 필요한 제재가 준비되도록 모든 일에 철저히 대비해 왔다”면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정부는 그동안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 이유는 독일이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절반 이상이 러시아에서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숄츠 총리는 “우리는 함께 행동하고 있고, 절대적으로 단합하고 있다”며 “우리는 다른 단계를 밟지 않을 것이며, 단일한 조치를 취할 것이고, 이는 러시아에 매우 힘든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독일 정부가 노르트 스트림2 가동 중단에 협력하지 않을 경우 노르트 스트림2를 운영하는 가스프롬을 제재할 것이란 입장을 보여 왔다.
미국 정부가 노르트 스트림2 중단 카드와 함께 러시아에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는 각종 제재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러시아를 달러화 결제망에서 퇴출하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이 조치는 러시아 금융사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한다는 것을 말한다. SWIFT는 1973년 유럽과 북미의 239개 금융사가 회원사 간 결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만든 폐쇄형 금융 결제망이다. 현재는 210개국의 1만1000개에 달하는 금융사(중앙은행 포함)와 기업들이 가입해 있다.
SWIFT의 지분은 3000개 금융사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SWIFT는 각국 금융사들을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각국 금융사들의 자금 거래는 SWIFT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SWIFT에서 퇴출되면 러시아와 각국 금융사들 간의 자금 거래가 불가능하게 된다. 실제로 미국 달러화로 러시아 석유나 천연가스를 구매하는 각국 기업들은 러시아에 돈을 전달할 수 없다. 따라서 SWIFT 퇴출은 러시아에 대한 달러 공급망을 봉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SWIFT는 미국이 통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SWIFT를 통해 언제든 러시아의 수출입 대금 등을 끊을 수 있다. 미국 정부는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을 때도 SWIFT 퇴출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 당시 러시아가 SWIFT 퇴출을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강력하게 반발하자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해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중국의 화웨이에 적용했던 것과 비슷한 수출 규제를 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수출 규제에는 ‘해외 직접 생산품 규칙(Foreign Direct Product Rule)’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의 반도체 기술이나 장비를 이용해 생산한 제품의 수출을 금지하고 나아가 제3국에서 미국 기술을 이용해 생산한 제품의 수출도 금지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반도체 제조 소프트웨어와 장비 및 기술의 글로벌 시장 장악력을 고려하면 러시아가 첨단 제품을 생산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미국 투자사인 레이먼드 제임스의 에드 밀스 애널리스트는 “한 국가의 반도체 접근을 막는 조치는 그 나라의 현대적 경제 작동 능력을 초토화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특정 기업이 아니라 특정 국가를 상대로 이 규칙을 적용하는 것은 새로운 전략”이라면서 “러시아에 광범위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정부의 이런 조치로 화웨이는 지난해 매출이 30% 급감하는 등 치명타를 입었다.
실제로 미국의 수출 규제가 현실이 될 경우 러시아는 각종 첨단 군사 무기와 장비들은 물론이고 스마트폰, 전자제품, 자동차, 여객기, 게임용 콘솔, 태블릿 PC, TV 등을 만드는 부품을 조달할 수 없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상무부는 스마트폰부터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소비재 수출을 통제할 수 있다”며 “미국 제품뿐 아니라 미국산 반도체와 소프트웨어가 들어간 한국과 유럽 각국 등 외국산 제품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도 미국의 수출 통제에 따라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러시아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바이오, 우주항공 등 미래 산업을 위한 연구와 개발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현재 미국 정부가 이처럼 수출을 통제하고 있는 국가들은 쿠바, 이란, 북한, 시리아 등이다.
미국이 러시아를 옥죌 수 있는 또 다른 무기는 채권이다. 미국이 금융기관들을 압박해 러시아 국채를 사지 못하도록 하면 러시아는 심각한 재정난을 겪을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에도 러시아 국채의 매입을 제한한 바 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자국 금융기관들의 러시아 국채 경매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내렸지만 이미 발행된 국채가 시장에서 유통되는 것까지 막지는 않았다. 미국 정부가 유통 시장까지 봉쇄할 경우 러시아는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 제재 무력화 전략 적극 추진
러시아 정부는 미국의 제재 공세에 맞서 제재를 무력화하는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전략은 ‘경제 요새화(economic fortification)’를 통해 미국의 제재를 견딜 수 있는 자력갱생형 경제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외환보유액를 늘려 왔다.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은 현재 6310억 달러(757조 원)로 중국, 일본, 스위스에 이어 세계 4위 규모다. 러시아 경제 규모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구소련 붕괴 직후 45억 달러까지 줄어들었던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은 2013년 5000억 달러까지 늘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은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강제병합에 따른 미국 등 서방의 제재 조치로 3700억 달러로 축소됐다. 이후 러시아는 주요 수출품인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힘입어 현재 사상 최고치인 외환보유액을 기록했다. 게다가 러시아 국부펀드(NWF)도 186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다.
특히 러시아 정부는 미국 달러화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른바 ‘탈달러화(de-dollarization)’ 정책이다. 러시아의 외환보유액 내용을 보면 미국 달러화의 비중이 지난 8년간 47.1%에서 16.4%까지 줄어들었다. 대신 유로화(35%)와 위안화(13%)의 비중이 늘어났고, 안전자산인 금(22%)의 보유량도 증가했다.
러시아 정부는 또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의존도도 크게 낮추었다. 미국이 지난해 러시아 국채 투자를 금지한 후 러시아 국채에 대한 외국인 지분이 20%까지 떨어졌다. 러시아 기업의 해외 금융기관 대출 규모도 2014년 1500억 달러에서 현재 800억 달러로 축소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주요 정치인과 올리가르히(재벌과 같은 특권계층) 등의 런던 아파트나 뉴욕 주식 투자 등이 막힌 데 따른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러시아 내 이권 사업을 몰아줬다. 이들이 유사시 자신을 배신하고 해외로 도피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 정부는 SWIFT 퇴출에 대비해 자체 개발한 금융결제 정보전달 시스템(SPFS)에 동유럽 국가들을 끌어들였다. 중국 국제결제시스템(CIPS), 러시아 국영결제카드(Mir), 이란·터키 등과 거래를 고려한 러시아의 가상화폐인 ‘디지털 루블’ 등을 마련해 놓고 있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부 장관은 “지난 수년간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가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에 대응하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면서 “미국의 위협과 제재가 현실화하더라도 러시아 금융기관들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러시아는 또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중국과 ‘가스 동맹’까지 맺었다. 푸틴 대통령은 2월 4일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국 정상회담을 갖고 중국과 새로운 가스 공급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국영가스 기업인 가스프롬이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와 연간 100억 ㎥의 러시아산 가스를 극동지역 가스관을 통해 중국으로 30년간 공급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가스프롬은 “이 사업이 실현되면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가스 공급은 연간 480억 ㎥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스프롬과 CNPC는 2014년 연간 380억 ㎥의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30년간 중국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당시 계약을 체결한 시점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불과 2개월 만이었다. 따라서 러시아는 중국과의 초대형 계약을 통해 ‘활로’를 찾았다. 이번에도 러시아가 중국과의 가스 계약 체결로 미국 등 서방이 예고한 고강도 제재의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중국의 세 번째 가스 공급국이다. 양국의 지난해 교역액은 사상 최대인 1460억 달러를 기록했고, 위안화와 루블화의 상호 결제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아무튼 미국의 초강력 제재 조치에 대비한 러시아의 전략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글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사진 한국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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