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름 작가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클레이하우스, 2022년 1월. 사진=클레이하우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클레이하우스, 2022년 1월. 사진=클레이하우스
[한경 머니 기고 = 윤서윤 독서활동가] “이도 저도 싫으면 커피숍을 해.” 지난해에 신점을 보러 갔다가 들은 말이다. 이 말을 들은 후 내가 만약 커피숍을 차리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자주 상상했다. 커피 종류는 두 가지로. 아메리카노와 라테. 내려마시는 커피를 좋아하니까 간간이 핸드드립도 내놓으면 좋겠다. 또 11시 즈음 문을 열어서 8시 즈음 문을 닫아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더 좋겠다.

다른 커피숍과 차별점을 꼽으라면, 내가 책을 좋아하니 한쪽 벽면에는 책장을 두고 주인장이 추천하는 책을 한 달 간격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문학과 비문학을 적절히 섞어 가면서 틈틈이 읽은 책들도 소개하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을 초청해 강연도 열면 좋겠다.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이게 서점인지 커피숍인지 헷갈린다.

시장조사를 해보니 이런 커피숍이 한둘이 아니었다.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커피숍은 회전이 생명인데, 책이랑 같이하면 회전이 되지 않는다”면서 만류한다. 상상 속 커피숍은 상상에서 그쳤다. 무언가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누군가를 고용해서 최저임금을 맞춰줄 자신도 없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에 커피숍은 이미 포화상태 아닌가. 내 상상에 딱 맞는 서점이 소설에 등장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휴남동 가정집들 사이에 들어선 ‘휴남동 서점’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영주는 누구보다 일이 1순위인 사람이었다. 애인과 약속보다 일이 우선이었기에 ‘일 때문에’라는 말에도 상처받지 않은 워커홀릭이었다. 자신과 똑같은 창인을 만나 결혼까지 한 그녀에게 갑자기 찾아온 번아웃 증후군은 일상을 바꿔놓았다. 그녀도 처음엔 그저 잠깐의 스트레스뿐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태는 심각해졌다. 일에 집중도 안 되고, 숨도 쉬어지지 않는 것. 남편이 옆에 있어줄 것을 요구했지만, 일을 좋아하는 남편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다. 결국 영주에 의해 헤어지게 됐다.

휴남동의 ‘휴’가 쉴 휴(休)라는 것을 알게 된 영주는 일사천리로 서점을 차렸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가정집 사이에 아무것도 들어서지 않은 건물을 사서 제2의 직업을 마련했다. 처음엔 죽을 얼굴을 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전부였다. 영주에게도 시간이 필요했음을, 그래도 무언가 붙잡고 싶었음을 보여준다.

영주에게 아픔이 있어서일까. 서점에는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행복을 미래에 저당 잡아놓고 앞만 보고 달렸던 바리스타 민준. 고등학생임에도 인생이 시시하다는 민철과 그의 엄마. 서점에서 수세미를 엮어 가며 명상을 즐기는 정서. 이들은 휴남동 서점에서 책도 읽고, 서로를 봐주며 위로를 받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속마음을 적당히 꺼내며 일상을 버틸 힘을 얻고 있었다.

그렇게 휴남동 서점에 모여든 사람들은 각자의 발걸음에 맞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영주는 “내가 이렇게 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그러니 받아들이기, 자책하지 말기, 슬퍼하지 말기, 당당해지기. 나는 몇 년째 이 말들을 중얼거리며 정신승리 중이랍니다”(134쪽)라며 하나의 정답이 아닌 여러 개의 해답을 찾아 걸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소설은 좋은 책의 기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나’에게 좋은 책이 그저 좋은 책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래서 영주가 소개한 책들은 한 번씩 더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영주는 고민 끝에 “삶을 이해한 작가가 쓴 책, 삶을 이해한 작가가 엄마와 딸에 관해 쓴 책, 엄마와 아들에 관해 쓴 책, 자기 자신에 관해 쓴 책, 세상에 관해 쓴 책, 인간에 관해 쓴 책. 작가의 깊은 이해가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면, 그 건드림이 독자가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그게 좋은 책 아닐까”(41쪽)라고 좋은 책의 기준을 정리한다.

책과 24시간 함께하는 사람의 삶이 궁금했다. 변곡점이 없어 밋밋할 것 같았지만 그 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삶을 영위한다는 것 자체로 빛이 났다. 어떻게 하면 서점으로 ‘자리 잡을까’를 3년째 고민하는 영주를 보면서 ‘삶이라는 게 비슷하구나’라는 안도감도 느낀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제 걸음에 맞는 속도가 있고, 그 속도에 맞춘 꾸준함이 동반돼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책에 둘러싸여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고 책에 관한 글을 쓸 것이다. 그러는 틈틈이 먹고, 생각하고, 수다도 떨고, 우울했다가 기뻐할 것이며, 책방을 닫을 즈음 오늘 하루도 이 정도면 괜찮았다며 대체로 기쁜 마음으로 서점 문을 나갈 것이다.”(359쪽)

2년 동안만 운영하려고 했던 서점은 5년, 10년이 지난 후에도 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속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의 이야기가 더해진다는 게 얼마나 매력적인가.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전자책 구독 서비스인 밀리의 서재에 공개된 독서활동가후 종이책으로 소장하고 싶다는 요청으로 인해 출간됐다. 대형 출판사의 소설이 아니라는 점과 입소문으로만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이렇게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가 되는 것을 독자들은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황보름 작가가 만들어 놓은 ‘휴남동 서점’이라는 공간을 어느 동네에서나 만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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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서윤 독서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