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부터 발끝까지 남성미가 짙게 배어나오는 뮤지컬 배우 민우혁. 명실공히 대한민국 톱클래스 배우 중 한 사람인 그가 터프함의 대명사, 드라마 <모래시계>의 태수 역할로 뮤지컬 무대에 선다. 민우혁의, 민우혁에 의한, 그리고 관객을 위한 그만의 태수를 만나봤다.
[Interview] 민우혁의 담대한 도전...<모래시계> 태수를 만나다
네이비 재킷과 화이트 티셔츠 모두 꼬르넬리아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들의 특징은 대개 한결같다. 자신만의 단단하고 매력적인 무기를 지녔고, 그 무기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 뮤지컬 배우 민우혁도 마찬가지다. 187cm의 큰 키와 체구에서 뻗어나오는 성량과 섬세한 음색, 20년간 다져온 연기력은 대형 라이선스 작품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물론, 그의 지난 시간들이 처음부터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배우로서 좋은 무기를 지녔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수차례 캐스팅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했고, 성공보다 생존에 사활을 걸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톱클래스 배우로 우뚝 선 지금도 늘 작품을 준비하면서 매순간 긴장하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고 했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2015년 그는 우연한 기회에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 앙졸라 역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고, 이후 그의 시간은 탄탄대로였다. <레 미제라블>, <아이다>, <벤허>, <프랑켄슈타인>, <지킬 앤 하이드>, <안나 카레니나> 등 뮤지컬 배우들 사이 꿈의 무대로 불리는 작품에 줄줄이 캐스팅돼 자신만의 무기를 선보였다.
이런 그가 최근 또 한 번의 담대한 도전에 나선다. 바로 뮤지컬 <모래시계>의 타이틀롤 ‘태수’로 분하게 된 것. 뮤지컬 <모래시계>는 한국 근현대사의 대서사시를 당시 방황하던 청춘의 이야기로 그려낸 작품으로, 2017년 초연에 이어 5년 만에 새롭게 돌아온다. 특히 이번 프로덕션은 3년간의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거쳐 변화와 진화를 거듭했다.
무엇보다 역대 한국 드라마 남성 캐릭터 중 가장 강렬한 인물로 손꼽히는 ‘태수’를 뮤지컬 무대에서 어떻게 표현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과연 민우혁이 그려낼 태수는 어떤 모습일까.
[Interview] 민우혁의 담대한 도전...<모래시계> 태수를 만나다
- 우선, 대작 <모래시계>에 참여하게 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정말 영광이죠. 절 믿어주시기에 선택하신 거잖아요. 설렘과 기대감이 큽니다. 동시에 적잖이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고요.”

- 타이틀롤 태수 역할을 맡게 됐는데, 연기하는 데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원작 드라마와는 연기하는 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대개 드라마는 컷별로 이미지나 상황 등을 인물로 표현하는 것들이 많잖아요. 그러다 보니 극 중 서사들이 (인물을 통해) 차근차근 쌓이는 데 비해, 뮤지컬은 그 방대한 스토리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드라마에 비해) 섬세한 연기보다는 조금 더 과감한 표현이 필요해요. 어떻게 무대에서 태수란 인물을 효과적으로 표현할지 고민이 크죠.”

- 캐릭터 연구는 어떻게 하세요.
“일단 저는 원작 드라마를 다시 찾아보진 않았어요.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고, 자칫 원작을 너무 참고하면 제가 그걸 따라가려다가 극의 분위기를 되레 깰 것 같더라고요. 최대한 요즘 정서에 맞는 태수를 표현하고자 대본을 정말 많이 읽고, 분석했던 것 같아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본을 보거나 노래 연습을 하면서 작품에 집중하고 있죠.”

- 이번 작품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다면요.
“원작에서도 굉장히 유명했던 장면인데 극 말미에 ‘지나간 과거는 어쩔 수 없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어요. 저는 이 대사가 참 마음에 와닿아요. 사람들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사실 몇 년 새 우리 모두 굉장히 힘든 시간들을 보냈잖아요. 무척 아픈 시간들이었지만 참 잘 견뎌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도 지나간 과거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더 집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의 주요 메시지가 바로 이거더라고요. 태수 개인사는 비극이었지만 작품은 결국 희망을 이야기하죠. 그래서 너무 비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해요.”
[Interview] 민우혁의 담대한 도전...<모래시계> 태수를 만나다
- 벌써 데뷔 20년 차인데, 가장 힘들었던 적이 있다면요.
“음, 사실 20년 동안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 정말요? 늘 무대 위 에너지가 넘치시잖아요.
“사실 그렇게 보이는 건 일종의 제 체면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운동(야구)을 했었고,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던 꿈을 가장 중요한 시기인 스무 살에 그만두게 됐죠. 그때부터 새로운 꿈을 쫓아가기 위해 지금보다 정말 몇 배는 더 열심히 노력을 해야 했어요. 잠도 잘 못 잤어요. 휴대전화랑 지갑도 다 뺏긴 상태로 숙소 생활을 하면서 하루 종일 노래 연습, 안무 연습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죠. 그때는 다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주변 환경적 요인들에 의해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았어요. 그때는 정말 다신 노래 안 해야지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어찌보면 노래를 안 하려고 연기를 배우다 갑자기 뮤지컬 배우가 된 셈인데 그때는 뭔가 결과를 빨리 내야 된다는 생각에 늘 초조했어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저를 너무 많이 괴롭혔어요.”

- 지금은 어떠세요.
“솔직히 지금도 정말 하고 싶은 역할에 캐스팅 됐을 때는 딱 그 합격 소식을
들은 날 하루만 행복해요. 그다음부터는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리죠. ‘내가 이걸 왜 한다고 그랬지’ 하면서 말이에요. 그럼에도 제가 이 일을 사랑하고, 지속할 수 있는 건 매번 무대를 마치고 마주하는 커튼콜 때문일지도 몰라요. 지금도 커튼콜만 생각하면 설레요. 무대를 마치고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순간 저를 보는 그분들의 눈빛이나 숨소리, 박수 등을 마주할 때면 정말 행복하거든요. 보태어 말하자면 예전에는 그저 좋은 배우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어요. 관객들은 물론, 주변 동료가 인정하는 좋은 배우가 진짜 배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야 같이 무대에서 제대로 호흡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어요. 아이들이 커 가고, 특히 올해 여덟 살 된 첫째가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은근 주변에 아빠 자랑을 하나봐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좋은 배우 이상으로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늘 다짐해요. 그런 신념들이 배우로서 좋은 에너지가 되는 것 같아요. 한결같이 응원해주시는 팬들의 사랑은 더 말할 것도 없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도 궁금해요.
“정말로 제가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라 이번 작품에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다 모여 있어요. 이전에 작품을 함께했던 분들이 많아서 합도 좋고요. 아무래도 이번 시즌은 초연과 달리 음악은 물론, 대본, 무대까지 싹 다 바뀌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작품을 준비하면서 배우들끼리 더 똘똘 뭉치게 된 부분도 있고요.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다들 그때보다 더 성장하고, 잘돼서 너무 좋아요. 저희 배우들끼리는 좋아하는 배우에게 늘 우스갯소리로 ‘야, 내가 열심히 해서 너랑 다시 또 작품을 할 수 있게 더 노력할게’ 하거든요. 얼마나 고마운 말이에요. 또 그렇게 해야 하고요. <모래시계>엔 그만큼 제가 쭉 함께 하고 싶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서 더 기쁩니다.”

- 그중 유독 눈길이 가는 배우가 있다면요.
“음, 한 사람을 꼽자면 지금 생각나는 건 유리아 배우요. 제가 뮤지컬 데뷔를 하고 얼마 안 돼서 뮤지컬 <김종욱 찾기>로 유리아 씨랑 처음 연기를 해봤는데 여러 면에서 놀랐어요. 캐릭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명확하시더라고요. 모든 발성, 동선 등에 다 이유가 있었죠. 그런 모습에 참 많이 배우기도 했고요. 이번 작품에서도 다시 만났는데 여전히 참 잘하는 배우 같아요.”

- 마지막으로,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제가 이 일을 20년 가까이 하다 보니 주변에 정말 재능 있는 분들을 보면서 직간접적으로 여러 일들을 경험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매 순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하는 거더라고요. 그래야 또 다음 작품으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지금 가장 큰 바람은 당연히 뮤지컬 <모래시계>를 관객들이 만족하실 수 있도록 열심히 하는 것이고, 나아가 이 작품이 한국을 대표하는 창작 뮤지컬로 더욱 성장하길 바랍니다.”
[Interview] 민우혁의 담대한 도전...<모래시계> 태수를 만나다
베이지 재킷과 팬츠 모두 브로이어,하늘색 칼라 니트 에스.티. 듀퐁 파리






김수정 기자 진행 이승률 기자 사진 김린용 헤어&메이크업 제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