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이 작가, <알로하, 나의 엄마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금이 지음, 창비, 2020년 3월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금이 지음, 창비, 2020년 3월
[한경 머니 기고 = 윤서윤 독서활동가]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현충일과 한국전쟁 기념일에 맞춰 한 달 동안 다양한 역사 현장을 찾게 되기도 하고, 역사 관련 책을 많이 읽는 달이기도 하다. 6월에는 지방선거까지 있어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그려볼 수 있기도 하다. 가장 큰 변화가 있었다면 인플레이션을 체감하며 가계부를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고,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이 해제되면서 여행을 꿈꾸게 됐다.

비행기를 타고 낯선 곳에서 하루를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새로운 문화를 즐겼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읽은 게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다. 이 작품은 이금이 작가의 역사 소설이자 성장 소설로, 천국을 꿈꾸는 세 여성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어떻게 마음을 붙이고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내가 어릴 때 등단한 이 작가는 현재까지 쉬지 않고 출간을 반복하며 독자와 함께 성장했다. 그의 블로그에 방문하면 독자와 함께 소통해 온 따뜻함이 느껴진다.

이 작가는 청소년, 그중에서도 여성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장녀에 맏며느리, 지방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그는 딸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아이에게 적용되는 차별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지역 여성 민우회에 가입해 여성학을 배우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차별과 딸을 키우며 느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해졌단다. 그렇게 이 작가는 <너도 하늘말나리야>를 쓰면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현재에 이르렀다.

“버들 애기씨, 내년이면 열여덟이지예? 포와로 시집가지 않을랍니꺼?”(7쪽)

소설은 조선에서는 시집가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세 여성. 버들, 홍주, 송화가 ‘사진 신부’가 돼 포와(하와이)로 떠난 뒤 파도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현장을 보여준다. 10대 중후반인 이들은 포와로 시집 가면 공부를 할 수 있고 지상낙원에서 살게 된다는 중매쟁이 부산 아지매 말을 믿고 떠난 이주 여성들이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지상낙원도 사진 속 남자도 아닌, 새로움에 끊임없이 적응해야 했던 높고 끊임없이 부서지는 파도 같은 현실이었다.

이 작가는 한인 미주 이민 100년사를 다룬 책을 보던 중 흰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성이 각기 양산과 꽃, 부채를 든 채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사진을 보며 ‘장에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에 그들은 어떻게 머나먼 곳으로 떠날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이 소설의 시작이었다. 이 작가는 한 페이지에 정리되는 참고자료를 통해 100년도 더 된 하와이를 그려내고 버들과 홍주, 송화가 돼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야기는 이들이 포와로 떠나기 전까지의 설레고도 불안한 마음, 도착한 이후의 절망감, 척박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과 안정된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중매쟁이가 거짓을 말했더라도 그들에게 포와는 정착해서 살아내야 하는 새로운 삶의 공간이었다. 얼마나 척박했으면 이들은 조선으로 돌아간다면 중매쟁이부터 요절을 내겠다고 서로에게 다짐을 할까.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면서 아내를 때리기까지 하는 남편을 두고 “앞으로 한 번만 더 아한테 손대면 고마 딱 이혼시키겠다”(199쪽)며 으름장을 놓는 이들이다. 몸은 포와에 있지만 조선어를 사용하고, 좌절을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한다. 이주민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멸시와 차별에 적응하면서도 그들은 교회에 나가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교회에서 만든 신문을 읽으며, 누구보다 조선의 독립을 꿈꾸고, 독립을 위한 자금을 마련한다. 어머니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여성이 할 수 있었던 세탁업, 카네이션 재배를 하며 여성의 자립성을 보여준다. 조선이 아닌 공간에서도 정파가 나뉘어 누군가를 따돌리기도 하지만, 같은 이민자이자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으로 인해 서로를 안아준다. 그렇게 이민자로서 선구자이며 개척자가 됐다.

포와에 처음 도착한 이들은 ‘레이(카네이션으로 된 꽃목걸이)’를 받는다. 원주민의 정신이 담겨 있는 ‘알로하’라는 인사말은 배려, 조화, 기쁨, 겸손, 인내 등을 뜻하는 하와이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그 인사말 속에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하와이 원주민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한다. 레이 또한 단순한 꽃목걸이가 아니다. 누군가를 두 팔로 안는 것과 같은 의미의 레이는 사랑을 뜻했다. 원주민들의 풍습이었던 레이는 레이데이가 있을 정도로 널리 퍼진 문화다.

이 땅의 수많은 엄마들을 떠올린다. 엄마라는 이름 역시 선구자, 개척자의 단어를 붙여도 좋을 만큼 매일 매일이 새롭다.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고열에 시달리거나 아프다고 하고,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할 때도 많다. 그럼에도 가족을 위해, 내 아이가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오늘도 세상과 적당히 타협한다. 결혼 이주민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이주 노동자의 안타까운 소식들은 버들과 홍주, 송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에게 오늘 레이를 선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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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서윤 독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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