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주인공은 스테이크를 굽기 위해 가스레인지 불을 켜지 않는다. 영국의 유명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디자인한 3D 프린터에 이제 멸종해서 찾아볼 수 없는(극중 설정) 검은 코뿔소의 정보를 집어넣고 지방과 단백질 등 카트리지를 장착한 후 스테이크를 만들어낸다.
식사를 하면서 지방 카트리지가 부족해 스테이크 맛이 형편없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고기는 생물이 아닌 음식 재료에 불과하다. 고기로만 알고 있던 닭이 뼈가 있는 생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놀라는 장면을 보며 식품 산업 분야에 신기술이 도입된 미래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상상했다.
환경을 생각한 대체육 시장의 부상최근 <타임지>에서 우리가 사는 삶을 변화시킬 100가지 혁신 아이템 중 하나로 대체육을 꼽았다. 대체육은 쉽게 말해 고기의 식감과 맛을 그대로 구현한 인공 고기다. 식물에서 추출한 단백질에 비타민·아미노산·설탕·헴, 헤모글로빈의 색소 등을 섞어 소고기의 식감과 맛을 그대로 구현한 비건 육류 식품과 미생물을 배양해 만든 균단백질을 재료로 한 비식물성 대체육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인공 고기는 대체육이 시초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즐겨 먹는 게맛살 역시 대체육이다.
1970년대 초 개발된 게맛살의 주재료는 명태다. 냉동 명태 연육을 분쇄하고 반죽을 만들어 얇게 뽑아주고 꼬아주는 공정으로 게살의 형태를 만들고 게 향과 더불어 색소를 추가해 식감과 맛과 향을 구현한 것. 단순한 공정이지만 3D 프린팅의 조상이 될 수 있는 기술이 도입된 대체육 제품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대체육이 이렇게나 사랑받는 이유는 비건 인구가 늘기도 했지만 환경적인 이유를 무시할 수 없다. 유엔 식량농업기구 FAO에 따르면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6.5%를 차지하는 데, 이는 자동차 등 모든 운송 수단을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다. 대체육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의 대체육 기업인 임파서블 푸드와 비욘드미트는 글로벌한 인기에 힘입어 연이은 투자 유치에 성공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여러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대체육 시장이 커지면서 더불어 3D 푸드 프린팅 기술이 뜨고 있다. 3D 푸드 프린터는 소비자가 원하는 재료와 모양, 식감에 따라 음식을 만들어낸다. 잉크가 종이에 인쇄되는 것처럼 원하는 재료로 입체적인 모양의 프린트를 만드는 것. 이는 대량 수공업 생산에 머물던 식품 산업이 맞춤형 자동화 서비스로 변화하는 과정으로 앞으로 소비자의 개별적인 만족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3D 푸드 프린터를 레스토랑에 선보이며 대중화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는 초콜릿을 제조하는 3D 푸드 프린터 스타트업도 다수 나왔다. 이화여자대학교 기술지주 주식회사 슈팹의 경우, 이미 2018년 3D 프린터를 활용해 개인의 취향에 맞는 식감과 체내 흡수를 조절할 수 있는 음식의 미세 구조 생성 플랫폼 개발에 성공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KREI의 ‘식품 산업의 푸드 테크 적용 실태와 과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3D 푸드 프린팅 시장 규모는 2023년까지 연 평균 46.1%씩 약 6,4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현재 세계 3D 푸드 프린팅 시장의 제품 유형별 시장 점유율은 사탕, 초콜릿, 케이크 등 과자류와 피자, 파스타 등 반죽류가 61.4% 로 높은 편이다. 3D 푸드 프린팅 기술의 미래3D 푸드 프린팅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고 일부는 실제로 쓰이고 있다. 미국 육군은 전투식량의 원격 생산 방법을 고민하다 3D 푸드 프린팅 기술에 주목했다. 병사들의 전투복에 생리학적 또는 영양적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한 후 데이터를 베이스캠프로 전송해 이를 기반으로 식품을 출력한다는 것이 주 연구 내용.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10년 안에 전장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3D 푸드 프린터는 우주 공간에서의 식사 제공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주 식품용 3D 프린터에 사용되는 식품은 완전히 분말화된 상태로 공급하고 출력 직전에 물과
기름을 혼합해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 분말 형태의 식재료는 최장 30년까지 보존할 수 있고, 음식물 찌꺼기가 남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3D 푸드 프린터는 고령자를 위한 식품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고령자 5명 중 1명은 씹는 것과 삼키는 것이 어려운 섭식장애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고령자들에게는 분쇄된 형태의 음식물이 제공되는데, 일단 맛이 없고 보기에도 식욕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분쇄형 식품을 3D 푸드 프린터를 이용해 다시 당근, 닭다리, 스테이크 등으로 재구성하면 섭식장애 고령자들도 부담 없이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다. 실제로 독일의 일부 요양원에서 시범 운용한 결과, 지금까지 제공되던 죽이나 퓌레 형태의 식품보다 훨씬 만족도가 높았다고 한다.
아직까지 3D 푸드 프린팅 기술이 안착해 연관 산업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많다. 지금까지 개발된 기술은 대부분 압출을 통해 식품을 증착하는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만들 수 있는 식품은 매우 제한적이다. 또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사용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의 번거로움과 가격 문제 또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사회적·환경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이라는 점만 보더라도 3D 푸드 프린팅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공상과학 영화 속 주방처럼 가스레인지 대신 3D 푸드 프린터가 놓이는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글. 이진규(이화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출처. 미래에셋증권 매거진(바로가기_click)
정혜영 기자 hy541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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