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짧고, 강렬하게. 광고에나 쓰일 법한 문법이 이제는 콘텐츠 생태계 전반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어쩌다 사람들은 이 짧은 동영상에 매혹됐을까. 아울러 숏폼 문화 콘텐츠 소비가 낳은 빛과 어둠에 대해서도 취재해봤다.
[special]더 짧고 강렬한 숏폼 동영상, 명과 암은
‘Video Killed the Radio Star’.

영국의 뉴 웨이브 밴드 ‘더 버글스(The Buggles)’가 1979년 발표한 이 곡은 1980년대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다. 제목 그대로 ‘영상매체로 인해 라디오 드라마의 스타들이 사장됐다’는 의미인데 ‘TV에 의해 라디오가 구세대의 유물이 됐다’라는 시대상을 담고 있다.

그리고 26년이 지난 2005년부터 우리는 새 시대를 맞이했다. 유튜브의 등장이다. 이후 2022년 현재까지 유튜브는 21세기 주류 미디어로 우리 삶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 초등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미래 직업이 유튜버가 되고, 유튜브가 낳은 스타와 괴물들이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야말로 ‘YouTube Killed the Video Star’ 세상이다. 그런데 2016년 돌연 이 영상 플랫폼 생태계의 변종이 나타났다. 바로, 숏폼 동영상의 마술사 틱톡이다.

틱톡의 글로벌 열풍은 각종 통계 자료만 봐도 알 수 있다. 올해 7월 데이터 분석 플랫폼 데이터에이아이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전 세계 틱톡 이용자가 월평균 23.6시간을 틱톡에서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유튜브 이용자 월평균 사용 시간은 23.2시간, 페이스북은 19.4시간으로 기록되며 틱톡이 1위를 차지했다.

조사 결과 지난 1분기 틱톡의 1인당 월평균 사용 시간은 2020년 1분기보다 140%, 지난해 1분기보다 40% 급증했으며, 동시에 이용자들이 틱톡에서 지출하는 비용도 증가했다. 지난 1분기 소비자들이 틱톡에서 지출한 금액은 총 8억4000만 달러(약 1조1000억 원)로,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포함한 모든 앱 중 가장 높은 금액을 기록했다. 앱 내 누적 소비자 지출은 46억 달러(약 6조 원)를 넘어섰다.
[special]더 짧고 강렬한 숏폼 동영상, 명과 암은
데이터에이아이 측은 “틱톡이 라이브 스트리밍과 콘텐츠 창작을 지원하는 영상 편집, 해시태그 기능을 통해 유행에 민감한 Z세대의 빠르고 쉬운 검색엔진으로 자리 잡으며 긴 체류 시간을 이끌어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최근 몇 년 새 숏폼 동영상이 인기를 얻은 주요 요인에는 ‘효율성’이 있다. 짧게는 10초에서 1분 사이에 원하는 정보나 재미를 소비할 수 있어, 시간의 효용을 중요하게 여기는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문현선 세종대 공연·영상·애니메이션 대학원 초빙교수는 숏폼의 시대적 부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복잡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시스템은 세분화되고 매뉴얼화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바쁘게 살지만 노동 자체는 단순화되고 있죠. 사회가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일상은 빠르게 단순 처리되는 방식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모든 것이 미디어를 통해 매개되고 있죠. 다시 말해 미디어가 일상의 경험을 큐레이팅해주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빠르게 더 많은 경험을 축적하려 하죠. 자본주의 원리에 의해 시간의 단축은 경제적인 이익으로 연결되니까요. 시간 낭비가 죄악시되는 세상에서 숏폼 동영상에 대한 열광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여집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는 한 번에 8~12초가량만 집중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TV에서 PC를 거쳐 ‘모바일 온리(mobile only)’ 시대가 도래하면서, 긴 시간 집중할 필요가 없는 짧은 양식의 콘텐츠 수요 증가는 자연스런 시대적 수순인 셈이다.

이 같은 틱톡의 맹주에 구글 유튜브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도 숏폼 비즈니스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2020년 ‘릴스’를 출시, 현재 이용자들이 인스타그램에서 보내는 시간의 25%를 릴스에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튜브는 지난해 9월 최대 90초 길이의 짧은 동영상이 올라오는 ‘쇼츠’를 선보였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대표는 지난 7월 26일 실적설명회에서 “매일 300억 회 이상의 조회 수와 함께 매달 15억 명이 넘는 로그인 사용자가 쇼츠를 시청한다”고 강조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기업들도 숏폼 콘텐츠 서비스 강화에 나섰다. 네이버는 숏폼 편집기인 ‘블로그 모먼트’를 서비스 중이다. 몇 번의 터치만으로 짧은 동영상을 올릴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카카오는 최근 다음뉴스에 숏폼 콘텐츠 전용 공간을 마련했다. 1분 안팎 영상을 모은 ‘오늘의 숏’, ‘탐사뉴스’, ‘팩트체크 뉴스’ 섹션이다. 뉴스, 경제·재테크, 정보기술(IT), 건강·푸드 등 분야별 파트너사 117곳을 통해 뉴스·정보성 숏폼 영상을 제공한다.

숏폼 열풍, 이대로 괜찮을까
하지만 일각에서는 숏폼 콘텐츠 열풍에 대해 시대적 흐름에는 공감하지만 자칫 ‘가짜 뉴스’의 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은 대개 일반인 제공 뉴스 비중이 높고, 알고리즘이 강해 허위 정보에 취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교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틱톡처럼 참여를 유도하는 앱의 경우)에서는 앱이 규정한 ‘매뉴얼화된 경험’을 사용자는 쉽게 ‘나의 경험’으로 착각하게 된다”며 “이런 착각이 결국 감각을 호도하고 간접 경험에 의한 편향되거나 왜곡된 인식을 강화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경험의 반복은 인식의 고착을 불러오기 때문에 ‘매개된 경험’을 ‘사실 그 자체’라고 오인하는 경우도 발생한다”며 “즉,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매개된 경험’을 할 수 있고, 숏폼 미디어는 이러한 ‘매개된 경험’을 가속화할 수 있으며 양적으로 더 많은 정보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직접 경험의 기회를 제한하고 간접 경험에만 입각한 인식적 오류를 가져오게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SNS 앱의 영향에 취약한 10대들의 경우 숏폼 동영상의 중독성 강한 콘텐츠는 스마트폰 과의존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국내 영유아(만 3~9세) 가운데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비율은 2017년 19.1%에서 지난해 28.4%로 늘었다. 일상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절제하지 못해 정서 불안, 언어 발달 지연 등 신체적·심리적 문제를 겪는 아이들이 증가한 셈이다.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는 “숏폼 동영상에 빠지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본디 중독도 좋아야 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우리 뇌는 우리가 동영상을 더 오래 볼수록 동영상 콘텐츠를 잘 볼 수 있게 뇌의 기능을 활성화시킨 다. 뇌는 그걸 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이어 “이를 테면 ‘동영상을 10분 보고 숙제를 해야지’라고 계획했던 것이 일정 시간 동영상 보는 시간을 넘기면 뇌의 자기 조기 능력이 감퇴된다”며 “이 같은 과몰입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5분간 SNS 브레이크를 즐긴 후 30~40분 일을 하고, 다시 5분 쉬는 패턴을 활용하거나 주어진 각 시간마다 콘텐츠를 바꿔주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글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