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낙농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유가공 업체를 방문했는데, 이들이 식물성 대체유를 만들더라고요. 당시 ‘경쟁 제품을 왜 만드느냐’고 물었더니, ‘우유 소비가 감소하는 것은 이제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 답하더군요.”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가 내다보는 우유 산업의 미래는 탈출구를 찾기 힘든 막다른 골목이자 레드오션이다. 저출생과 인구절벽으로 인해 과거 ‘마시는 우유’를 주로 소비했던 주고객층이 크게 줄어든 것이 가장 큰 배경이다. 여기에 ‘지속가능성’이라는 전 세계적인 화두까지 겹치며, 젖소로부터 얻어내는 동물성 우유를 지양하려는 움직임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우유 산업이 위축되는 가운데, 국내 우유 시장 상황은 더 부정적이다. 마시는 우유를 소비할 아이들이 줄어든 만큼 성인 소비자를 타깃으로 다양한 가공 유제품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한데, 국내 제품은 이미 수입 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문 교수가 진단하는 우유 시장의 현재와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문 교수와의 일문일답을 통해 알아본다. 국내 우유 수요가 줄어드는 추세인데. 그 배경은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저출생이다. 인구절벽 문제가 제일 심각한 원인이라고 본다. 많은 유업체가 아이들의 우유 섭취가 늘어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아이들의 숫자 자체가 많이 줄어들다 보니 소비가 감소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 같다. 우유가 아니더라도 먹을 것이 너무 많은 환경이라, 부모들 또한 과거처럼 아이에게 반드시 우유를 먹여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우유를 꼭 먹어야 할 이유를 못 찾는다는 이야기다. 우유가 다른 식음료에 비해 특별히 맛이 좋다거나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소비자의 관여도(제품에 대해 가지는 관심이나 중요성 정도)가 낮아졌다.”
해외 우유 시장의 상황은 어떤가.
“해외 또한 우유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해외의 경우 특히 ‘지속가능성’ 문제로 인해 우유 소비를 줄이는 측면이 크다. 젖소가 내뿜는 메탄가스가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지 않나. 미국, 유럽과 같은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우유 소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우유를 소비하지 않는 것이 지속 가능한 미래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대체유를 먹는 게 낫다는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 생겨난 것이다.”
사례를 들어줄 수 있나.
“프랑스나 이탈리아만 하더라도 그들의 식문화에서 유제품을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우유와 버터, 치즈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들 나라에서도 동물성 우유가 아닌 식물성 대체유로 옮겨 가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19년쯤 이탈리아에서 상당히 유명한 낙농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유가공 업체를 방문했다. 이들이 식물성 대체유를 만들고 있었다. 당시 ‘경쟁 제품을 왜 만드느냐’고 물었더니, ‘우유 소비가 감소하는 것은 이제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 답하더라. 낙농가의 수익이 감소하는 것을 어떤 형태로든 메워야 하는데, 타 업체에 (대체유 산업 파이를) 뺏기느니 그 시장을 가지고 오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수익을 낙농가에게 환원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유제품은 그토록 많이 먹는 이탈리아의 유가공 업체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니, 우유 시장의 변화가 굉장히 크다고 본다.”
말씀처럼 최근 몇 년 사이 대체유를 선호하는 흐름이 두드러지는 분위기인데.
“현재 전 세계적으로 대체육보다도 훨씬 더 큰 시장이 대체유 시장이다.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 대체유 시장에 대해 크게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식문화와 관련이 큰 것 같은데, 한국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두유를 먹으며 자라 왔기 때문에 두유 시장과 우유 시장을 분리한 채로 인식해 왔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두유를 먹는 문화 자체가 없었다. 오히려 최근 몇 년 사이 제로 베이스 상태에서 대체유 시장이 아주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해외에서는 명확히 ‘우유’를 대체하기 위한 형태로 식물성 우유를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두유는 우유와 식감이 구분되는 방향으로 개발됐지만, 수입 대체유는 우유와 굉장히 비슷한 텍스처를 갖고 있다. 특히 서구권에서는 두유 특유의 냄새인 ‘콩취’에 대한 거부감이 더 심한데, 이 때문에 귀리, 코코넛밀크, 쌀과 같은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대체유가 만들어지고 있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마시는 우유뿐만 아니라 요거트 시장 또한 식물성으로 대체되고 있더라. 팬데믹 이전에 이미 프랑스 요거트 시장의 20~30% 정도가 식물성 요거트로 바뀐 상태였다.”
그럼 기존 우유 시장보다 대체유 시장이 더 커질 수도 있을까.
“물론 두 제품군의 시장 규모가 완전히 뒤집힐 정도는 아닐 것이다. 다만 앞으로 시장에 끼칠 임팩트는 클 것이라고 본다. 특히 커피 프랜차이즈 업계의 변화가 눈에 띈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 식물성 우유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었다. 지금은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 대부분이 수입산 대체유를 쓰고 있지만, 우리나라 우유 업체들도 최근 트렌드를 반영해 바리스타용 식물성 우유를 출시하는 추세다.” 우리나라 우유 산업의 앞날을 전망한다면.
“조만간 유럽 등 해외에서 수입해 들여오는 유제품에 관세가 붙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선하게 먹어야 되는 흰우유 정도가 아니라면, 시장에서 국산 제품이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질 것이라고 본다. 더군다나 흰우유를 먹을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상황이 앞으로도 이어질 테니, 우유 산업의 미래는 더욱 레드오션이 될 것 같다.”
우유 산업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한 타개책은 없을까.
“결국은 원유가 다양하게 가공돼야 한다. 맛 좋은 발효 버터나 고급 치즈를 만들어 프리미엄 제품으로 상품화하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경쟁력 있는 버터나 치즈가 생산되지 못하고 있다. 성인들이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유제품, 퀄리티 높은 상품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다.”
왜 그런 건가.
“여러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 원유 가격이 너무 비싼 탓이다. 가격 면에서 수입 제품과 경쟁이 안 되니, 고급 유제품을 만들 만한 가공 기술에 투자하기 어려운 거다. 우리나라 낙농가에서 농가당 보유한 젖소의 숫자를 보면, 가격 경쟁력이 확보되기 힘든 상황일 수밖에 없다. 소위 말하는 ‘규모의 경제’가 어느 정도는 이뤄져야 원가를 떨어뜨릴 수 있는데, 지금은 생산비를 낮출 수 있을 만한 산업 구조가 아니다. 결국 산업 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원유 가격이 조정되지 않는다면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고 본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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