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규제 완화했지만…주택 시장 혼란은 여전
한때 끝을 모르고 오를 것 같던 집값 상승 분위기는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고, 지난해부터 시작된 역대급 거래 절벽과 가격 하락의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다. 문제는 하락기의 터널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또 어디가 집값 바닥인지 누구도 명징하게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집을 팔고 싶은 유주택자도, 내 집 마련을 원하는 무주택 실수요자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주요 재건축 단지 미분양…시장 침체 가속화할까
이른바 ‘거래 한파’가 불어닥친 주택 시장 분위기는 분양 시장에 쌓인 미분양 물량만 봐도 알 수 있다. 전국 미분양 주택은 지난해 말 6만1000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서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7000가구 이상이다. 전국 미분양 물량이 6만 가구 이상이 된 것은 2015년(6만1512가구) 이후 7년 만이다. 이런 속도라면 올해 아파트 미분양 물량은 9만~10만 가구 이상을 기록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잇따른다.

정부는 주택 시장의 거래 절벽과 아파트 미분양에 따른 파장을 고려해, 올해 초 △전매 제한 기간 완화 △규제지역 해제 △청약 시 기존 주택 처분 의무 폐지 등 부동산 규제 완화책을 대거 내놨다.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택 매수 심리와 아파트값의 하락 폭은 일부 줄었지만, 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64.8로 전주(64.1) 대비 0.7포인트 상승했으나, 기준선인 100을 한참 밑도는 수준이라 여전히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많은 상태다. 1월 셋째 주 전국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주 대비 0.49% 떨어져, 전주(-0.52%)에 비해 하락 폭이 축소됐다. 부동산원 관계자는 “집값 회복에 대한 기대로 가격 하락 폭이 둔화하고 있지만, 매도가와 매수 희망가 간 괴리가 좁혀지지 않아 관망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서울 및 수도권의 대단지 아파트들이 흥행을 거두지 못한 것도 시장 침체를 가속화시킬 만한 요인이다. 특히 규제 완화 이후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둔촌주공아파트(올림픽파크포레온) 등 주요 재건축 단지가 수혜를 받을 것으로 점쳐졌는데, 결과적으로 둔촌주공아파트의 일반분양 정당계약률은 70%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계약 가구는 1400가구 수준이다. 다만 이는 추정 계약률일 뿐, 정확한 비율은 고지되지 않았다.

둔촌주공아파트 청약 성적표를 바라보는 시각은 ‘규제 완화 덕에 예상보다 선방했다’는 쪽과 ‘사실상 실패’라는 쪽으로 양분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분양 관련 규제를 대부분 풀어준 상황에서도 초기 계약률이 이 정도밖에 안 나왔다는 것은 분양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며 “특히 둔촌주공아파트 일부 소형 평형은 외부에 알려진 추정 계약률보다 크게 낮은 것으로 알고 있다. 예비당첨자 계약 이후 무순위 청약까지 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예전 같았으면 경쟁률이 불티나게 높았을 단지가 미분양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선방했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올해 분양 계획을 확정해야 하는 건설사들은 겉으로 표정관리를 하고 있지만, 사실상 비상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둔촌주공아파트는 올해 주택 시장 분위기를 파악해볼 수 있는 가늠자로 여겨졌던 만큼, 이 단지의 청약 성적표에 대한 갑론을박도 뜨겁다. 국내 최대 규모의 재건축 아파트가 사실상 흥행을 기록하지 못하면서 분양 시장의 불확실성도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올해 둔촌주공아파트에 앞서 분양을 진행한 성북구 장위동 ‘장위자이 레디언트’의 경우 일반분양 1330가구 중 793가구만 계약돼 계약률 59.6%를 기록한 바 있다. 1월 10일 잔여 537가구에 대한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 이후에도 물량을 전량 해소하지는 못했다.

고분양가 딜레마…혼돈 속 주택 시장
부동산 하락기에 매수자들의 심리가 얼어붙은 측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지나치게 높은 분양가와 고금리에 대한 부담이 ‘미분양’이라는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서울과 수도권에서 흥행에 실패한 아파트의 경우 주변 시세보다 비싼 가격으로 수요자들이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다. 지역과 분양가에 따라 시장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연초 분양 시장에서 썩 달갑지 않은 성적표를 확인한 터라, 올해 분양가 책정을 둘러싸고 딜레마를 겪게 됐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원자재값과 시공비가 오른 상황에서 섣불리 낮은 분양가로 공급해 버릴 수는 없다”며 “일단 분양을 시작하면 미분양이 나더라도 끝까지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상황이라, 분양 계획을 확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복잡해진 주택 시장의 셈법 속에서 수요자들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특히 아직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한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청약과 급매물 등 여러 매수 선택지 속에서 어떤 방식을 선택하는 게 유리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시점이다. 여전히 높은 아파트 가격과 고금리 전망으로 인해 아파트 매수 적기를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