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도, 첨단 기술 협력 강화 이유는
미국이 인도와 반도체 같은 첨단 기술의 협력 체제를 강화키로 했다. 이는 아시아의 ‘젊은 코끼리’ 인도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이 같은 미국의 행보는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여러 가지 전략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도를 글로벌 반도체 제조의 허브로 만들겠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최근 제시한 야심 찬 꿈이다. 모리 총리가 이런 계획을 추진하는 이유는 인도에는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생산하는 업체가 없기 때문이다.

인도는 ‘21세기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산업을 육성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인도 정부가 모디 총리의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에 따라 자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반도체 제조가 필수적이다.

인도는 글로벌 반도체 허브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인도는 반도체 관련 분야에 많은 인재를 보유하고 있다. 인도는 대표적인 인재 수출국으로 전 세계적으로 인도 출신의 엔지니어들이 반도체 산업에서 일하고 있다.

특히 인도의 강점은 소프트웨어 산업이다.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하지만 설계는 많이 하고 있다. 세계 주요 반도체 회사 중 8개가 인도에 디자인 센터를 두고 있다. 인도는 또 미국과 중국의 갈등과 대립이 더욱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미국 주도의 반도체 시장에서 점차 퇴출되는 상황에서 인도가 중국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인도에선 제조업 발전에 따라 반도체 소비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인도 전자반도체협회(IESA)에 따르면 인도의 반도체 소비는 2019년 210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2025년까지 4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인도 정부는 외국 반도체 대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인도 정부는 이를 위해 입주 업체에 제공할 100억 달러 규모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인도 정부의 이런 계획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이 반도체 공장 건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애플의 최대 협력업체인 대만 폭스콘과 인도 에너지·철강 대기업 베단타는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아메다바드에 1조5400억 루피(27조 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 등을 건설하고 있다. 두 업체는 합작 투자사를 통해 반도체 공장과 함께 디스플레이 생산 시설 등을 구축할 계획이다.

아닐 아가르왈 베단타 회장은 “2년 이내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일자리 10만 개 이상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의 IGSS벤처도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에 반도체 공장 설립을 추진하겠다”며 주정부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투자 규모는 2560억 루피(4조5000억 원)다.

특히 미국이 모디 총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월 31일 백악관에서 아지트 도발 인도 국가안보보좌관과 회담을 갖고 첨단 기술 및 방산·우주 개발 협력 강화 방안을 담은 ‘핵심·첨단 기술 구상(The initiative on Critical and Emerging Technology·iCET)’에 합의했다.

양국의 iCET 협력 체제 구축은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모디 총리가 인도태평양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정상회의에서 가진 양자회담에서 약속한 후속 조치에 따른 것이다. iCET는 △국방 기술 협력 및 공동 생산 △인공지능(AI)과 양자 분야 혁신 생태계 구축 △인도에서 반도체 설계와 제조를 지원하는 형태의 공급망 다변화 △상업 우주비행 협력 △5세대(5G)와 6세대(6G) 등 차세대 통신망 구축 등을 담고 있다.

인도, 중저가 반도체 공정 능력 키운다

양국의 iCET 협력 체제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문은 반도체다. 백악관은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와 IESA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인도의 반도체 설계, 제조 및 생태계 개발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과 첨단 반도체를 공동 개발하기로 한 미국이 인도와도 협력을 강화해 한국과 대만에 집중된 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다변화하겠다는 뜻이다.

TF는 기술 인력 공유와 연구·개발(R&D)·반도체 설계와 제조 생태계 간 협력을 모색한다. 설리번 보좌관은 “인도는 반도체 패키징 및 레거시(전통) 반도체 제조 능력을 키우는 데 관심이 있다”며 인도를 적극 돕겠다고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은 “인도 기업들이 28나노미터(㎚) 수준의 중저가 구형 반도체 공정 능력을 키우도록 유도해 중국 반도체 기업들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2월 8일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는 3월 미국 반도체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함께 인도를 방문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레거시 반도체는 비교적 옛날 공정 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구조가 단순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최첨단 반도체는 7㎚ 이하 공정으로 제작되는 반면 레거시 반도체는 주로 28㎚ 공정으로 생산된다. 레거시 반도체는 비록 최첨단 제품은 아니지만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등에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 역시 주요 반도체 개발사들이 높은 마진의 첨단 제품에 집중하느라 마진율이 낮은 레거시 제품 생산을 줄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런 점을 간파해 미국이 제재하는 최첨단 반도체 대신 레거시 반도체 생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중신궈지(SMIC)는 지방정부와 협력해 상하이에 89억 달러를 투자, 28㎚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중국 최대 스마트폰 위탁생산 업체 윙테크 테크놀로지도 자동차부품용 반도체 공장을 세워 연 40만 장의 웨이퍼를 만들 계획이다.

미국 정보기술(IT) 컨설팅 업체 IBS는 28㎚ 공정 반도체 수요가 2030년까지 281억 달러로 10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IBS는 2025년까지 28㎚ 칩의 40%가 중국에서 생산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2021년 기준 세계 28㎚ 반도체 생산량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15%로 집계됐다. 미국이 첨단 공정을 중심으로 제재를 퍼붓는 동안 중국은 우회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 레거시 분야에 집중했고 이를 바탕으로 점차 기술력도 키워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의 레거시 분야를 견제하기 위해 인도에 대한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또 다른 의도는 ‘반도체법’에 따라 해외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자국 내 생산 공장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인력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인도에서 반도체 전문가를 양성하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정부는 인도의 과학·기술 인재 유치를 위해 미국의 비자 요건도 완화할 수 있도록 의회와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몬도 장관은 “1990년 미국의 반도체 산업 종사자는 35만 명이었지만 지금은 16만 명 정도로 줄었다”고 밝혔다. 러몬도 장관은 ‘프렌드쇼어링(우방국 간 공급망 구축)’의 주요 상대국으로 인도를 선택한 데 대해 “인도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인구도 많고 노동력과 영어 구사자도 풍부한 데다가 법치주의를 따르는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인도,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 대안으로 부상

미국과 인도는 또 양자 및 고성능 컴퓨팅, AI, 5G와 6G 통신 분야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대안으로 인도를 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인도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액(2000년 4월~2022년 6월)을 보면 △미국 556억1528만 달러 △네덜란드 423억3928만 달러 △일본 377억9333만 달러 △영국 321억8051만 달러 △아랍에미리트(UAE) 143억7151만 달러 △독일 136억8035만 달러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52억8443만 달러로 13위를 기록했다.

인도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2018∼2019년 620억 달러, 2019∼2020년 743억9000만 달러, 2020∼2021년 819억7000만 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인도산업협회는 자국에 대한 FDI는 2025년까지 연간 1200억~1600억 달러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인도에 대한 FDI를 주도하는 것이 미국 IT 등 첨단 기술 기업들이다. 특히 인도 정부는 특별경제구역을 지정하는 등 외국 기업들에 혜택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생산기지로 인도에 진출하고 있으며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애플을 들 수 있다. 애플은 지난해 9월부터 아이폰14 부품 일부를 인도로 들여와 조립하고 있다. 또 아이패드 제품 중 일부 생산을 중국에서 인도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만 IT 전문 매체인 디지타임스의 연구팀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가 2027년이면 애플 아이폰의 절반을 조립할 것으로 전망됐다. 현재 아이폰 생산에서 인도의 비중은 5% 미만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미국의 JP모건도 인도가 2025년까지 전 세계 아이폰 생산의 25%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도는 각국의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8.7%에 달하는 등 독야청청 잘나가고 있다. 최근 10년간 인도 GDP 성장률은 2021년(-6.6%)을 제외하면 3.7~8.7%로 비교적 높은 성장을 이어 왔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인도의 GDP 비중 역시 지난해 3.5% 수준에서 오는 2027년이면 4%를 웃돌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인도 GDP가 오는 2027년이면 독일, 일본 등을 제치고 세계 3위에 올라설 것으로 내다봤다. 인도는 올해 중국을 추월해 세계 1위 인구대국이 된다. 인도는 앞으로 이런 거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내수 소비를 중심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특히 2020년 기준으로 인도의 전체 인구 중 0~14세까지는 26.16%나 된다. 또 15~64세(생산가능인구)는 67.27%이고, 65세 이상은 6.57%다. 경제 활동의 중심인 25~49세의 비중은 2010년 34.1%에서 2025년 37.3%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는 풍부한 노동력과 저렴한 인건비로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려 왔던 중국을 대체할 것이 분명하다. 인도의 중위연령(전체 인구를 연령순으로 나열할 때 가운데 있는 사람의 연령)은 28.4세로 중국보다 열 살이나 젊다. 영어 구사 능력이 있는 인구가 1억 명에 이르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고도 성장이 지속되면서 중산층 규모도 빠르게 성장해 자체 소비 시장도 커지고 있다.

S&P글로벌은 “2020년대 10년간 인도의 가구당 실질소득 증가율은 연평균 5.3%에 이를 것”이라며 “주요 20개국(G20) 중 가장 큰 소비국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지난해 인도 시장의 신차 판매 규모가 425만 대를 넘어서며 일본(420만 대)을 처음으로 제치고 세계 3위를 차지했다. 인도의 가구당 자동차 보유율은 2021년 기준 8.5%에 불과해 향후 자동차 보급률이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인도 자동차 시장 확대의 배경은 빠른 인구 증가와 높은 경제성장률 및 이에 따른 내수 소비 증가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지역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의 일원인 인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중국 견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이 iCET 협력 체제의 일환으로 인도의 방위산업체들과 군용 제트 엔진, 장거리포, 장갑차 등 군수장비 공동생산 계획을 포함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백악관은 이르면 오는 6~7월 모디 총리에 대한 국빈 방문 초청을 추진하고 있다. 국빈 방문은 외국 정상의 방문 가운데 의전상 가장 높은 서열의 행사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을 국빈 방문한 국가 정상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유일했다. 인도는 오는 9월 뉴델리에서 G20 정상회의도 개최하면서 국력을 과시할 것이 분명하다. 국제사회는 경제 도약을 하고 있는 인도를 ‘젊은 코끼리’라고 부른다. 미국이 젊은 코끼리에 날개까지 달아주고 있는 셈이다.

글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