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호 BTS서울 대표 인터뷰

최근 한국 경제가 뒷걸음질을 하면서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은 경기 침체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더 큰 부를 축척하기도 한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big story]경기 둔화 위기를 기회로...기업의 생존 화두는
한국 경제성장률에 잇따라 적색경고가 울리고 있다. 정부도 현재 경기 상황과 관련해 처음으로 경기 둔화 진단을 내렸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월 17일 ‘최근 경제 동향(그린북)’ 2월호에서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이어 가는 가운데, 내수 회복 속도가 완만해지고 수출 부진 및 기업 심리 위축이 지속되는 등 경기 흐름이 둔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경제지표는 전반적으로 마이너스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양상이다. 특히 한국 경제의 버팀목으로 불리는 수출이 1년 가까이 뒷걸음질을 하며 좀처럼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주요 지표를 보면 1월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6% 줄어든 462억8000만 달러였다. 지난해 12월(9.5%) 대비 감소 폭을 키웠다. 지난해 10월 이후 4개월째 역성장이다.

다만, 2월 1일부터 10일까지 수출지표를 보면 수출이 11.9% 늘었지만, 일평균 기준으로 환산하면 -14.5%로 여전히 수출이 두 자릿수 감소세가 지속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2월 16일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글로벌 경기 둔화 여파로 반도체 수출 감소세가 심화하고 있고, 중국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효과도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기업의 체감 경기를 보여주는 전 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의 지난 1월 실적치(69)와 전망치(68) 모두 전월보다 각각 5포인트, 2포인트 떨어졌다. BSI는 현재 경영 상황에 대한 기업가의 판단과 전망을 토대로 산출된 통계로, 부정적 응답이 긍정적 응답보다 많으면 지수가 100을 밑돈다. 여기에 고금리로 인해 투자 주체와 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까지 더해져 기업들의 생존 전략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과연, 이 시기 살아남는 기업의 생존 전략은 무엇이고, 미래 투자 가치가 있는 기업들의 옥석 가리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해법을 찾기 위해 늘 치열하게 공부하는 이 사람, 정윤호 BTS서울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BTS서울은 기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 교육을 하는 컨설팅 회사다. 경영 상태를 점검하고 사업 타당성을 분석해주는 매킨지 같은 기존 컨설팅 회사와는 달리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요구하는 추세에 맞춰 세부적인 실행 전략과 임직원 교육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스웨덴에 본사를 둔 BTS는 22개국에 36개 사무소를 두고 있다. 2021년 세계에서 약 236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지난해 매출 추정치도 2600억 원에 달한다. 마이크로소프트, AT&T, 코카콜라 등 미국 경제지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100대 기업 중 40개 이상이 BTS 고객이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LG, 현대자동차, SK, KT 등이 BTS 한국지사인 BTS서울의 고객사다. 정 대표가 말하는 저성장 시대, 성공하는 기업들의 투자 전략을 들어봤다.

곳곳에서 장기적인 경기 불황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은 현재 가장 큰 위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경기 불황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는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가장 큰 위험은 역시 ‘불확실성’ 그 자체인 것 같아요. 정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죠. 실례로 지난해 우리나라 대기업들 중에서도 예상치 못한 극단적인 결과들이 많이 나왔어요. HMM만 봐도 그렇죠. 누구도 예상못했던 코로나19 사태와 미국 항만 적체현상으로 높은 운임과 대형선 투입 효과에 힘입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했어요. 급변하는 시장에서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아지면 아무래도 움직이지 않으려 하죠. 아마 그게 위험의 본질 같아요.”

지금 기업들이 직면한 생존 화두는 무엇인가요.
“기업의 비즈니스라는 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고객에게 서비스와 물건을 파는 거잖아요. 결국, 누가 가장 고객을 잘 보고 있느냐가 그 기업의 성패를 가른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삼성전자, LG,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들도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커요. 사실 유통사와 제조사 사이 힘의 균형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해 왔죠. 과거에는 제조사가 유통사보다 유리한 입장이었어요. 제조사들은 대리점과 특판점 등의 전국 공급망을 구축하고 슈퍼마켓부터 중소형 마트에 이르는 채널에 상품을 공급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아마존이나 쿠팡이 그 힘의 축이 됐죠. 성공한 스타트업들의 대부분도 고객과의 접점을 장악한 경우가 많아요. 이들은 ‘무엇을’ 사는지만큼 ‘어디서’ 사는지를 따지기 시작한 소비자에게 그야말로 딱 붙어 있어요. 나이키는 그 점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고요.”

나이키의 성공 사례라고 한다면.
“나이키는 디지털 시대로 잘 전환한 기업 모델이에요. 전통적으로 나이키는 디자인과 브랜딩, 제품 개발 외에는 대개 다 아웃소싱으로 운영해 왔어요. 특히, 유통의 경우 리셀러들의 힘이 막강했죠. 그들에게 주어지는 금액도 컸고요. 이에 나이키 경영진은 온라인 시장이 오프라인 시장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디지털 시장이 주도적 형태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업 경영의 모든 단계와 영역에 걸쳐 전면적인 디지털 전환을 신속하게 단행했어요.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이용자와 기업을 직접 연결하는 소비자직접판매(Direct to Consumer·D2C)가 될 거라 봤고, 그걸 디지털이 견인할 것이라고 확신했죠. 기존의 주 판매망이던 가맹 대리점이나 아마존과 같은 외부 유통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과감하게 줄이고 자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직접 판매와 고객들과의 직접 연결을 확대한 셈이에요. 결과는 성공적이었죠. 5~10년 전만 해도 나이키 옆에는 늘 아디다스와 리복이 경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키가 독보적이죠. 아디다스와 리복 제품의 질이 떨어져서가 아닙니다. 나이키가 고객과의 접점을 더욱 촘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big story]경기 둔화 위기를 기회로...기업의 생존 화두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면요.
“저희가 접했던 사례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기업이 필립모리스예요. 아시다시피 시대가 변하면서 흡연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어요. 과거에 비해 흡연률도 떨어지고, 인구가 줄면서 향후 소비자 수 역시 줄 수밖에 없는 구조죠. 담배광고도 할 수 없고요. 그래서 필립모리스는 기업의 비즈니스 투자 모델에 변화를 줬어요. 키워드는 건강이었죠. 시대가 흘러도 헬스케어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단, 한번에는 못 가요.

담배 회사가 갑자기 건강을 얘기하는데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헬스케어 회사로 가기 전 필립모리스는 ‘스모크 프리’라는 메시지를 내세웠어요. 필립모리스는 몸에 덜 해로운, 연기 나지 않는 담배를 개발해 대성공을 거뒀죠. 포지셔닝도 마냥 ‘담배를 끊으세요’가 아니라 ‘끊을 수 없다면 줄이세요’라고 말하죠. 이렇게 얻은 막대한 자본금으로 필립모리스는 건강식품 등 헬스케어 관련 회사들을 엄청나게 사고 있어요. 위기를 미래에 대한 투자로 탈바꿈한 사례죠. 앞서 말했듯 성공하는 기업은 경기 불황이나 비즈니스 모델에 한계가 왔을 때일수록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려요.”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미래 유망 먹거리 산업은요.
“저는 D2C 구조의 유통 섹터가 디지털 세상에서 나날이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이 분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따라 굉장히 많은 것들이 변할 거라고 봐요. 동시에 저는 자동차 시장의 변화도 주목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과거 100년간 지속했던 자동차에 대한 인식과 패러다임이 확 바뀔 거예요. 소니가 자동차 시장에 뛰어든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전기자동차는 물론이고, 다양한 모빌리티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형태의 자동차 관련 산업들이 등장할 거라 생각합니다.”

경제 불황에서 필요한 기업 리더들의 자질은 무엇일까요.
“성공한 기업들 사이에는 일종의 견고한 패턴이있어요. 가령, 저는 우리나라가 2022년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데에는 파울루 벤투 감독의 공도 컸다고 생각해요. 벤투 감독이 한 일은 가령 이런 거예요. 한국 선수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경기 중 선수들이 맞닥뜨릴 수 있는 패턴을 끊임없이 연마시킨 거죠. 그게 실전에서 빛을 발한 거예요. 리더는 이 성공의 패턴을 구성원들에게 교육시키고,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죠. 사실 이게 가능하려면 단기간에는 쉽지 않아요. 특히 과거 우리나라처럼 ‘빨리빨리’ 식의 성과주의로는 힘들죠.”

그 밖에 성공하는 기업 리더들의 특징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좋은 질문이십니다. 저희 BTS의 경우 기업 컨설턴트를 할 때 대개 시뮬레이션 교육을 진행해요. 어떤 미션을 주면 각개 임원들이 팀원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 가죠. 그런데 이 과정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분들이 반드시 컨설턴트나 전략기획 담당자들은 아니란 거예요. 대개 1등은 다른 부서에서 나오죠. 왜일까요. 우선, 사업이란 게 논리적으로만 진행되는 건 아니에요. 10개의 의사결정이 있으면 7~8개 정도는 논리적인 판단이 적중하지만 그 외에 것들은 예상 외의 상황을 마주하기도 하거든요. 이런 때를 가정해 때론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순간이 있어요. 그런데 이런 부분이 잘 훈련되지 않은 분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그 때문에 기업 투자의 중요한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발생하고요. 동시에 제가 요즘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언러닝’이에요.

‘학습’을 의미하는 러닝(learning)에 부정을 뜻하는 접두사(un-)가 더해진 말인데, 새롭고 더 나은 방법을 도입하기 위해 기존에 알던 사고방식 등을 고의적으로 잊거나 폐기하는 것을 의미하죠. 요즘 1030세대를 이해하려면 기성세대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 버리고,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해요. 그래야 고객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들을 수 있는 역량이 생겨요. 하지만 한번 성공을 맛본 최고경영자(CEO)일수록 그걸 어려워하시더라고요.”

스타트업의 성공 조건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스타트업 대표가 그 사업을 왜 하는지를 본인이 정확히 알고, 그것이 고객에게 전달될 수 있으면 저는 성공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러려면 남과는 달라야 하죠. 가령, 아마존이 성공했을 때 여기저기서 아마존을 따라가려고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았죠. 저는 그런 케이스들을 보면 참 아쉬운 게, 그건 정말 아마존의 프로세스 중 빙산의 일각만 본 거거든요. 아마존의 경쟁력은 ‘당신은 정말 고객 중심에 있습니까’에서 시작해요. 새벽 3시에도 클라이언트가 문제를 제기하면 바로 튀어나가는 게 아마존 기업 문화예요. 그걸 간과해선 결코 성공할 수 없죠.

동시에 스타트업이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리더만큼 좋은 인력들이 반드시 필요하죠. 저희는 그걸 얼라인먼트(경영)라고 해요. 저희는 구성원들에게 이걸 심어주는 데 굉장히 공을 들여요. 얼라인먼트는 조직 내 구성원들은 회사의 미션과 전략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 자발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자기결정권과 책임감을 동시에 지니고 성과를 내는 시스템이죠. 우리가 왜 존재하고,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게 결국 기업 영속성과도 맞닿아 있고요.”
[big story]경기 둔화 위기를 기회로...기업의 생존 화두는
정윤호 대표는…

2011년 5월 ~ 현재 BTS서울 대표
2006년 2월 ~ 2011년 5월 비욘드파트너스 창업주(대표)·대표이사
2004년 6월 ~ 2006년 1월 IGM 세계경영연구원 연구실장
2002년 8월 ~ 2004년 4월 현대카드 변화관리실 과장
2000년 9월 ~ 2002년 8월 앤더슨 컨설팅 경영 컨설턴트

글 김수정 기자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