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인 다올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
허정인 다올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
긴축 기조하에서 중앙은행의 정책 딜레마가 심화되고 있다. 경기 과열 혹은 물가 상승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게 되는데, 시장에서 형성되는 채권금리는 동일하게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나 홀로 정책금리’만 올라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준금리를 1%에서 4%로 인상했다고 가정할 때, 통화정책 파급효과가 효율적으로 거시경제에 영향을 주려면, 전 만기 구간의 금리가 비슷한 폭으로 상승해야 한다.(여기서 시장금리는 국채 금리를 기준으로 한다)

3~5년 중기 구간 금리는 주로 회사채 시장에 영향을 주고, 10년 이상 장기 금리는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금리에 영향을 미친다. 수요 과열을 진정시키려면 이러한 가계와 기업 같은 민간의 소비를 둔화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 선제적으로 신용 시장(대출 시장)을 긴축시키는 것이다. 대출 금리가 오르면 소비와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통화 긴축 정책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긴축에도 장기 금리 하락…중앙은행 딜레마

주요국 중에서도 미국처럼 국내총생산(GDP)의 대부분이 가계소비에 의해 결정되는 국가는 장기 금리의 탄력성이 더욱 중요하다. 정책 당국이 의도하는 대로 장기 금리가 영향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정책에 역행한 ‘장기 금리 하락’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긴축 시기 & 장기 금리 딜레마’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때는 20 04~2006년이다. 당시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긴축을 시행했으나 장기 금리가 변동하지 않아 그린스펀의 수수께끼(Greenspan’s Conundrum)로 명명되기도 했다.

당시 시장과 학계가 내린 결론은 비(非)미국 국가의 ‘미 국채 매입 확대’였다. 본격적으로 세계화가 진행되며 중국 등 수출 신흥국들의 달러 비축 금액이 늘어났다. 이들 국가들이 달러 가치 저장 수단으로 미 국채를 선택, 국채 매입량이 증가함으로써 장기물 금리가 제자리걸음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장기 금리를 ‘미래 단기 금리 기대치’와 ‘장기물 보유에 따른 위험 보상 프리미엄(기간 프리미엄)’으로 분해할 수 있다. 이 중에서 ‘미래 단기 금리 기대치’는 상승했으나, ‘기간 프리미엄’을 구성하는 항목 중 ‘유동성 프리미엄’이 줄어들면서 금리의 움직임이 제한됐다고 분석하는 것이다.

수출 신흥국의 적극 매수로 거래 성사 리스크가 감소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는 현재 더 심화해 반복되고 있다. 당시에는 장기 금리가 변동하지 않아 수수께끼로 명명했지만, 지금은 정책금리를 인상함에도 불구하고 장기 금리가 선제적으로 하락해 오히려 정책금리보다 한참 낮은 수준에서 등락하고 있다.

다만 돌이켜보면, 특별한 이벤트는 아니다. 다시 말하면, 금리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1960년 이후로 긴축 사이클 말기에서 장기 금리 하락은 매번 반복돼 왔다. 통화 긴축 후반부에, 중앙은행의 과잉 긴축으로 시장이 경기 둔화를 예측, 금리의 기간 구조 중 ‘미래 단기 금리 기대치’와 ‘기간 프리미엄’이 동시에 하락해 장기 금리가 하락했었다.

엄밀히 구분해보자면, 그린스펀 수수께끼는 긴축 사이클 한가운데에서 장기 금리가 반응을 하지 않았던 것이고, 보편적으로 긴축 사이클 말기에서는 장기 금리가 하락하는 일이 반복됐던 것이다. 이러한 마켓의 프라이싱 기능을 토대로, 장단기 금리차를 경기 침체의 선행 시그널로 인식하기도 한다.

구조적 문제에 방점…긴축 지속에 집중해야

지금 시장이 헷갈려 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미국 고용지표, 소매판매, GDP 성장률, 물가 등 매크로 데이터를 봤을 때는 통화 긴축 사이클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판단되는데, 장기 금리는 선제적으로 하락해 결과론적으로 긴축 사이클의 종료 임박 혹은 경기 침체를 시사하는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긴축 지속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시장이 매크로 환경을 오독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반대편에서는 긴축 종료와 리세션, 장기 금리 하락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 의견 가운데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곳도 있다.

과거 장기 금리 하락은 리세션 예측력이 높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양적완화·QE) 이후로 이러한 예측력이 줄어들었다는 견해다. QE 이후 통화량이 절대적으로 증가해 국채 금리의 낙폭 범위가 확대됐으며, 동시에 경제위기 시에 중앙은행의 채권 시장 개입이 필수로 뒤따를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 형성이 장기 금리의 지나친 하락을 도모한다는 분석에서다.

새로 생긴 노이즈 요인이 장기 금리의 리세션 예측력을 희석시킨다는 의미다. 다올투자증권은 구조적 문제에 방점을 두면서 현재는 긴축 지속에 집중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질적으로 불안하기는 하지만 서비스 업종을 중심으로 견조한 고용 여건이 지속되고 있고, 하반기부터는 물가의 기저효과가 소멸해 인플레이션 안정 속도가 점차 둔화할 것이라고 분석하기 때문이다.

Fed가 현재 물가 안정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하고 있고, 물가가 안정되려면 경제 데이터 중에서도 가장 후행하는 고용지표가 둔화돼야 하기 때문에, Fed가 정책금리 인하를 결심하는 시점이 생각보다 뒤로 늦춰질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여전히 긴축 말기라고 보기 어렵고, 선제적으로 하락한 시장금리가 제한적 레벨에서 재반등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다.

시장금리, 3분기 중후반부터 하락할 듯…분할 매수 대응 필요

3분기 중후반부터는 가계의 잉여소득 재원 고갈, 재융자 비용 상승에 따른 조달 실패 사례가 누적되며 거시경제 여건 악화가 표면적으로 드러날 것이라 본다. 시장금리가 3분기 중후반부터 추세적 하락을 형성할 수 있다고 판단하며, 이러한 관점하에서는 금리가 재반등할 때마다 분할 매수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다올투자증권이 긴축 기조 지속을 주장하는 이유도 그린스펀의 수수께끼 문제와 연관돼 있다. 긴축에도 불구하고 장기 금리가 선제적으로 하락해, 경기 과열의 안정 속도가 더디어지고 파급효과 시차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Fed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리스크가 적고 결과가 확실한 선택지를 택할 수밖에 없다. 오랜 기간 높은 단기 금리를 유지해 장기 금리의 하락 효과를 상쇄시키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장기 금리 컨트롤 방법과 관련해 아예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QE의 반대인 양적긴축(QT) 정책을 시행하면 된다.

QE가 국채를 매입하는 정책이라면, QT는 매입하지 않거나 시장에 매물을 판매하는 정책이다. 쉽게 설명하면 채권은 만기가 도래하는 상품인데, 만기 도래로 현금이 상환될 때 새로운 물건에 재투자를 하지 않으면 된다.

중앙은행은 재투자를 하지 않지만, 대체로 채권 발행자는 재발행을 하기 때문에(현금 상환이 어렵기 때문) 시장에는 중앙은행이 사주지 않는 물건이 늘어난다. 이를 소극적 QT라고 지칭한다. 적극적 QT는 보유하고 있는 채권을 아예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장기 금리를 직접 상승시킬 수 있다. 다만 상당히 리스크가 따른다.

장기 금리 거래 시장의 경기 예측력 상향돼야

금융위기 이후 미국 국채 시장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은 절대적으로 커졌다. QE를 통해 전체 국채 발행 잔액의 4분의 1가량을 Fed가 보유하게 된 것이다.

사실상 패시브 펀드 성격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관의 매도 정책은 채권 시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대표적인 예가 테이퍼 탠트럼(taper tantrum)이다. 2013년 당시 벤 버냉키 Fed 의장이 QT 계획을 언급만 했을 뿐인데, 전 만기 구간에서 금리가 100bp가량 급등했다. 이번에는 이 문제가 더 심각하게 부각됐다.

생각보다 견고한 고물가로 Fed의 적극적인 긴축이 예상되던 2022년 말, 공포가 반영된 채권 시장의 투매와 함께 매수자 실종, 거래량이 줄어들며 미 국채의 유동성이 급격히 축소된 바 있다.

안전자산 중에서도 미국 국채의 유동성이 줄어든다는 것은 전 세계 투자자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리스크였다. 미 국채에 대한 자산 가치 재평가가 시작되면, 미국 국가 신용등급부터 시작해 미국 내 모든 자산에 대한 재평가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금리는 자산 밸류에이션에 영향을 주는 핵심 변수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외 국가에 더 큰 악영향이 미칠 것이다. 세계에서 담보력이 가장 우수한 국가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긴축 시기에 시장의 여건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은 채, 장기 금리 상승에만 초점을 두고 QT를 시행하게 되면 차후 수습하기 힘든 리스크가 따를 수 있다.

현재는 안정을 찾은 채권 시장 수급 여건을 바탕으로, Fed가 소극적 QT를 시행하고 있다. 당장은 견고한 펀더멘털이 바탕이 되고 있지만 차후 경기가 둔화될 것이라는 믿음과 시장의 매수 주도로 장기 금리가 하락하고 있는 탓에, 역설적으로 소극적 QT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여기서 더욱 적극성을 드러낼 경우, 의도치 않게 지나치게 금리가 급등해 시장 쇼크를 유발할 수 있다. Fed를 포함한 통화 당국은 ‘긴축 시기 & 장기 금리 딜레마’에 대해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 장단기 금리차 축소 혹은 역전이 시그널링 효과를 준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러한 역전 그 자체가 경기 침체를 유발한다는 의견도 있다.

은행의 경우 장단기 금리차에 의해 순이자마진(NIM) 수익이 결정되는데, 금리차가 축소될 경우 수익이 줄어들고 은행의 신용 창출 기능이 긴축적으로 변화해 경기 둔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수 논문들이 이를 검증하고 있다.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 금리를 거래하는 시장의 경기 예측력이 상향돼야 하고, 더 근원적으로는 시장을 헷갈리게 하는 노이즈 요인이 해소될 필요가 있다. 중앙은행에 대한 지나친 기대, 실제 지나친 개입 등이 최소화되며 시장의 가격 결정 기능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에 따라 경기 침체 시그널링을 미리 받아들여 자기실현적 예언을 통해 경기 침체를 유발하거나, 은행의 신용 창출 능력을 저해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부침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지속 가능한 경제와 시장 환경을 위해 다수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글 허정인 다올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