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시작과 함께 가장 먼저 화면에 잡히는 장면은 참가자 100인의 몸을 직접 본떠 만든 석고 토르소다. 참가자들의 탄탄한 근육을 고스란히 드러낸 제각각의 토르소는 ‘피지컬’에 열광하는 지금 이 시대를 담고 있다. 물론 ‘완벽한 외형’이 곧 ‘완벽한 건강’을 뜻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지난 몇 년간 건강 트렌드의 선봉장에 ‘근육’에 대한 선망이 자리 잡았다는 흐름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피지컬 시대, 함께 뜨는 단백질 제품
피지컬에 대한 선망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맞물리며 크게 성장한 시장이 있다. 바로 단백질 식품 시장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단백질 시장 규모는 2019년 1206억 원에서 2020년 2579억 원, 2021년 3364억 원, 2022년 4000억 원(추정치)으로 성장했다. 2018년만 해도 813억 원이었던 시장 규모가 불과 5년 만에 5배 가까운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과거 운동을 직업으로 삼는 스포츠 선수나 대회를 준비하는 보디빌더, 피트니스 애호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단백질 보충 제품에 대한 관심이 대중적으로 커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물론 아직 단백질 원료가 홍삼이나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와 같은 기존 건강기능식품의 아성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다. 다만 업계는 단백질 제품의 성장 속도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 건강기능식품 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국내 단백질 보충제는 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서 2%를 밑도는 규모지만, 신장률은 30%로 다른 식품 원료에 비해 성장 잠재력이 큰 편인 것으로 평가됐다.
단백질에 대한 소비자의 높은 관심은 대형 포털사이트의 쇼핑 검색량 순위로도 확인할 수 있다. 네이버 데이터랩 쇼핑인사이트 ‘다이어트 식품’ 부문 인기검색어 통계를 보면, 2020년까지만 해도 4위에 머물렀던 ‘단백질 보충제’ 검색 순위가 2021년에는 2위로 올라섰다. 특히 2021년 한 해 동안 같은 분야 인기검색어 10위권 안에 단백질 보충제, 헬스 단백질 보충제, 단백질 셰이크, 산양유 단백질 분말, 산양유 단백질 등 ‘단백질’을 원료로 하는 검색어가 다수를 차지하며 시장 확장을 암시했다. 이후 2022년에는 산양유 단백질이 인기검색어 1위를, 올해 1월부터 2월 17일까지 통계에서는 단백질 보충제가 1위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단백질 전성시대다. 왜 지금 단백질일까…
20대부터 60대까지 열광하는 이유
다이어트나 건강에 대한 관심은 꾸준했지만, 특히 코로나19 이후 근본적인 체력 관리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단백질 식품 수요가 높아진 것이 시장 확장에 큰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단백질은 신체 면역을 결정짓는 백혈구와 항체의 구성 성분이다. 또 단백질에 들어 있는 필수아미노산은 면역력 증가에 영향을 준다. 단백질을 통해 섭취하는 필수아미노산이 부족하면 면역체계가 무너져 질병에 걸려도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는 게 의학계의 시각이다. 각종 바이러스와 피로에 대응하려면 단백질 섭취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팬데믹을 계기로 커진 셈이다.
글로벌리서치 설문조사(복수 응답 가능)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관심을 갖게 된 영양소 중 비타민이 71.6%로 가장 높았고, 단백질은 61%로 2순위를 차지했다. 또 단백질 영양소를 섭취하는 방법으로는 음식을 통한 섭취가 1순위(79%)로 꼽혔지만, 일반적인 식사를 통해 단백질 섭취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건강기능식품(22.7%)이나 일반가공식품(19.9%)을 통해서라도 단백질을 보충해야 한다는 인식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장년기 소비자는 근육량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는 기대 효능, 단백질 함량에 더 무게를 두고 단백질 제품을 구입하는 경향이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 노년으로 갈수록 대사 질환을 비롯해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을 효율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의 약 65%는단백질 섭취가 부족하다. 흔히 나이대가 높아질수록 치아 상태와 소화 능력이 좋지 못해 일반 식품을 통한 단백질 섭취가 해마다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버 세대를 위한 단백질 제품이 최근 몇 년 사이 잇따라 출시된 배경이다.
젊은 세대의 경우 식단 관리에 대한 관심은 과거부터 꾸준했다. 수년 전부터는 MZ(밀레니얼+Z) 세대를 중심으로 보디 프로필(body profile) 촬영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웨이트 운동과 근육 증량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덩달아 늘었다. 이런 트렌드에 따라 단백질 식품 수요가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보디 프로필은 몸무게 감소를 통해 신체 부피를 줄이는 것을 넘어, 자신의 몸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최상의 외형’을 사진으로 남긴다는 취지를 띤다. 철저한 식단 관리와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체지방은 걷어내고 근육을 단련하는 게 특징이다. 검색데이터 분석 플랫폼 블랙키위 통계를 보면 지난 한 해 동안 보디 프로필을 검색한 숫자는 43만2100건에 달한다.
결국 코로나19 기간 동안 전 세대에 걸쳐 불어닥친 덤벨 이코노미(건강과 체력 관리를 위한 지출이 늘어나는 현상) 열풍이 단백질 시장 확대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피트니스 센터에 출근 도장을 찍는 2030세대부터 근감소에 민감한 5060세대까지 단백질에 열광하고 있는 셈이다. 식품 업계, 단백질 열풍에 앞다퉈 시장 진출
헬스 마니아를 넘어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삼은 단백질 식품의 시장성이 주목받으면서, 식품 업계도 이 시장을 새로운 미래 먹을거리로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모습이다.
단백질 시장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매일유업의 ‘셀렉스’가 대표적이다. 셀렉스의 매출은 2018년 250억 원을 기록한 이후 누적 매출 2500억 원을 올렸다. 저출산 시대에 우유, 분유로는 성장 동력을 찾기 힘들었던 유업체 입장에서 단백질 제품으로 눈길을 돌린 것이 곧 회사의 활로를 터준 셈이 됐다. 후발주자인 일동후디스도 ‘하이뮨’ 브랜드를 통해 단백질 시장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2020년 선보인 단백질 보충제 ‘하이뮨 프로틴 밸런스’는 누적 매출액이 3000억 원을 넘어섰다. 이 밖에도 빙그레는 ‘더:단백’, 오리온은 ‘닥터유’, 대상은 ‘마이밀’, hy는 ‘프로틴코드’라는 이름으로 단백질 제품을 선보이는 중이다.
제품 라인업도 다양화되는 추세다. 흔히 ‘프로틴’이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파우더 제품뿐만 아니라 손쉽게 즐길 수 있는 RTD(Ready To Drink)를 비롯해 단백질 바, 스낵, 시리얼, 초코볼 등의 형태로 출시되고 있다. 무조건 많이 먹으면 부작용 위험
단백질 과다 섭취 주의해야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섭취할 수 있는 단백질 식품이 많아지는 만큼, 단백질 과다 섭취에 대한 우려도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최근에는 근손실에 대한 강박으로 단백질 섭취를 무조건 많이 하는 게 좋다는 오해가 생긴 탓에 오히려 건강상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단백질은 다른 영양소와 마찬가지로 권장량까지만 섭취하는 게 가장 좋다. 보건복지부의 한국인 영양소 섭취 기준을 보면 19~49세 남성의 단백질 권장 섭취량은 65g, 50세 이상 남성의 권장 섭취량은 60g이다. 또 19~29세 여성은 55g, 30세 이상 여성은 50g의 단백질 섭취가 권고된다.
단백질을 권장량 이상으로 과도하게 먹을 경우 신장에 무리를 줄 수 있다. 단백질이 체내에서 대사되는 과정에는 노폐물이 많이 발생하는데, 신장에서 질소산화물을 처리하는 양이 많아질수록 기능에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 신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단백질 섭취를 제한하라고 권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의 신장 상태를 잘 모르고 단백질을 평균 이상 섭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대한신장학회에 따르면 신장 기능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성인 7명 중 1명인데, 이들 중 자신의 신장 기능을 인지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과도한 단백질 섭취가 신체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는 또 있다. 핀란드 동부대학의 이르키 비르타넨 영양역학 교수 연구팀에서 남성 2441명을 대상으로 22년에 동안 분석한 결과, 단백질 섭취가 가장 많은 그룹은 가장 적은 그룹보다 심부전 발생률이 33%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식물성 단백질보다는 동물성 단백질과의 연관성이 훨씬 컸다. 연구팀은 “많은 이들이 고단백질 식사를 하면 건강에 무조건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이제 과도한 단백질 섭취의 위험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