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동희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장
홍동희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장
우리는 늘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 가고,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고 대화한다. 사람들 간 관계는 언어를 통한 소통에서 시작하고, 더 많은 존재와 풍부한 교류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언어를 새롭게 배우기도 한다. 금융 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은 어떤 언어를 통해 시장과 소통해야 할까.

시장은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움직인다는 점에서 투자자들 역시 시장과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러한 대화의 기술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시장에서 확인되는 주요 지표를 기반으로 투자에 임하는 것이다. 금융 시장은 ‘경제 지표’라는 언어를 통해 투자자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최근 금융 시장의 흐름은 매월 나오는 주요 경제 지표의 결과값에 영향을 받으며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지난 1월은 물가 압력 완화, 즉 디스인플레이션 신호가 다양한 지표를 통해 확인된 점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 전환 기대로 연결되며 위험자산의 강세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2월 들어 미국의 고용, 물가 등 주요 지표가 일제히 예상을 상회하자 Fed의 긴축 경계감이 또다시 높아지며 투자 심리에 악영향을 미쳤다.

현재 Fed는 향후 통화정책 결정에 있어 지표 결과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겠다는 입장(data dependent)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어, 경제 지표들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시장의 방향성을 좌우할 주요 지표들이 갖는 의미와 향후 전망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비·물가·고용’ 경제 지표 연결 이해 필요

우선 각각의 경제 지표를 독립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이를 연결 지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요 경제 지표들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있고, 이들의 조합이 결국 중장기 경기 사이클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실제 현실에 맞춰 응용할 수 있는 시각을 갖춰야 한다. 다양한 경제 지표들 중에서도 경기의 주요 변곡점을 만들 수 있는 지표로는 미국의 소비, 물가, 고용을 들 수 있다.

먼저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지표로는 늘 ‘소비’가 첫 번째로 꼽힌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중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2에 달하며, 소비는 곧 경제의 수요를 의미한다.

현재 미국의 소매판매를 비롯한 주요 소비 관련 지표들은 연초 이후 양호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우호적인 고용 시장 및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통해 축적된 가계저축 등이 소비를 견인하는 모습이다.

올해 1분기까지는 견조한 소비 활동이 지속될 수 있다고 보지만, 재난지원금에 의한 가계의 초과 저축이 소진되고 고용 시장 역시 점차 약화되면서 소비가 시차를 두고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또한 양호한 소비지출이 유지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는 인플레이션 관련 불확실성을 재차 자극해 Fed의 긴축 장기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긴축 장기화 가능성은 필연적으로 소비의 위축을 야기할 것으로 판단한다. 최근 들어 경기 확장과 함께 물가 역시 둔화될 수 있다는 골디락스(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인 경제 상황) 기대가 부각되기도 했으나, 인플레 압력이 살아 있는 현 국면에 이러한 2가지 기대는 공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따라서 소비 지표를 볼 때 물가의 상방 위험을 함께 모니터링해야 한다.
[WM Report] 투자, '경제 지표'의 연관성에 답 있다
‘물가’ 지표…금리 결정의 바로미터 역할

금리 결정의 잣대가 되는 ‘물가’ 지표가 중요한 이유는 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물가의 급격한 상승은 가계의 구매력 하락을 야기하고, 기업들은 비용 부담에 의한 수익성 악화를 겪게 된다. 이와 더불어 기대인플레이션이 통제 범위를 벗어나 상승하기 시작하면 향후 물가 상승을 예상한 가수요를 유발하며 이는 실제 인플레 속도를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

이로 인해 Fed를 포함한 각국 중앙은행들은 인플레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소비자물가 흐름을 살펴보면 내구재 등 상품 부문의 물가 둔화세가 꾸준히 확인되고 있지만 서비스 부문의 물가 압력은 여전히 높게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정점을 통과해 올해는 디스인플레이션 과정이 전개될 수 있다고 보지만 인플레의 둔화 속도는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향후 몇 달간 물가 지표에 대한 시장의 추가 검증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서비스물가 관련 불확실성이 주로 양호한 고용 및 이에 따른 임금 상승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고용 지표에 대한 시장의 관심 역시 높게 유지될 것이다.

‘고용’ 지표는 금융 시장의 움직임에 후행하는 경향이 있으나, 경기 침체의 강도를 좌우하는 종합 지표로서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중요도가 높다. 과거 침체 국면의 데이터에 따르면 고용 시장이 상대적으로 덜 훼손될 때 온건한 경기 침체(mild recession), 고용 시장의 피해가 클수록 극심한 경기 침체(hard recession)에 빠지는 경향이 확인된다. 지난 1월 미국의 실업률이 54년래 최저치인 3.4%를 기록했으나, 이러한 호조가 장기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단기적으로 레저, 접객 등 서비스업에서의 충원이 유지될 수 있지만 빅테크 중심의 대규모 감원 지속과 누적된 긴축 여파에 따라 2분기로 가면서 고용의 서프라이즈 양상은 약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실업률의 점진적 상승은 소비 둔화 및 서비스 물가 하락의 연결고리에서 핵심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올해 내내 주의 깊은 관찰이 요구된다.

투자자, 경제 지표 해석 통해 의사결정 나서야

결론적으로 투자자들은 떠돌아다니는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기보다 주요 경제 지표에 대한 해석과 전망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에 나설 필요가 있다. 최근 시장의 흐름은 ‘방향성의 부재’로 요약할 수 있다.

매크로(거시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지표에 대한 관망세가 심화됨에 따라 시장을 이끌 만한 모멘텀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금처럼 경제 환경이 시시각각 급변하는 시기일수록 단편적인 소음에서 벗어나 매크로 지표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각각의 지표가 기록하는 단순한 수치만으로는 통찰을 얻을 수 없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연결해 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한발 앞선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결국 언어의 본질은 소통이다. 시장이 ‘지표’라는 언어를 통해 이야기하는 내용들을 경청하고 이를 심사 숙고해 투자 판단을 내린다면, 시장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면서 결국 양호한 결실을 거둘 것이다.


글 홍동희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