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상속은 피상속인이 아무런 조치를 취해 놓지 않고 사망할 경우 특정인에게 원하는 재산을 귀속시킬 수 없다. 재산을 넘기면서 증여처럼 특정인에게 상속을 하기 위해서는 생전에 미리 대비해 놓아야 한다.
유언대용신탁의 활용
그중 하나의 방법이 유언대용신탁이다. 유언대용신탁이란 본인(위탁자)이 수탁자와 신탁 계약을 통해 사후에 재산을 받을 자(수익자)를 지정한 후, 위탁자 사망 시에 수익자가 될 자로 지정된 자에게 수탁자가 재산을 이전해주는 신탁 계약을 말한다. 유언대용신탁은 사후에 수탁자가 재산을 이전시켜주기 때문에 유증이나 사인증여보다 간소한 절차로 재산을 이전시킬 수 있고, 위탁자의 의견을 신탁 계약에 유연하게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유언대용신탁 업무를 하다 보면 관련 세금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재산을 가진 자), 수탁자(믿을 만한 자), 수익자(자신 또는 자신이 지정한 자)의 세 당사자를 통해서 구성된다. 이 세 당사자가 구성하는 신탁 계약을 편의상 계약을 체결하는 ‘설정 단계’, 신탁 계약을 유지하는 ‘유지 단계’, 위탁자의 사망으로 신탁이 종료되면서 신탁재산이 사후수익자에게 귀속되는 ‘종료 단계’로 구분해 생전에는 위탁자가 신탁재산을 실질적으로 신탁재산을 지배·통제하고 있는 보편적인 유언대용신탁의 각 단계별 과세 문제를 알아보자.
신탁의 ‘설정 단계’에서는 위탁자에서 수탁자로 재산이 이전된다. 부동산의 경우 신탁등기까지 수반되는 과정이다. 재산은 이전되지만 취득세, 양도소득세, 부가가치세의 과세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신탁의 ‘유지 단계’에서는 보유세와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소득에 대한 과세문제가 있을 수 있다. 대표적인 보유세인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신탁재산을 수탁자에게 이전하더라도 여전히 위탁자가 세금을 내야 한다. 주택의 경우 신탁을 하더라도 위탁자의 주택 수에 포함돼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가 계산된다.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소득(주택의 경우 임대료, 금전의 경우 이자 등)에 대해서도 위탁자가 납세의무자이다. 부가가치세의 경우에도 ‘부가가치세법’ 3조에 따라 해당 용역을 위탁자 명의로 공급하는 경우에는 위탁자가 부가가치세의 납세의무자가 된다. 유언대용신탁으로 재산을 수탁자에게 이전했어도 임차인과 임대차 계약을 위탁자 명의로 맺고 임대 용역을 공급할 경우 위탁자가 부가가치세의 납세의무자가 돼, 신탁 전과 같이 위탁자가 부가가치세를 신고 납부한다. ‘유지 단계’의 세금은 신탁 전과 후가 달라지는 것 없이 여전히 위탁자가 보유세, 소득세, 부가세의 납세의무를 진다.
신탁의 [종료단계]에서는 상속세와 취득세가 발생한다. 2021년 1월1일 이후 상속이 개시되는 분부터 유언대용신탁을 통한 집행도 유증·사인증여와 유사한 성격으로 보아 증여세를 과세하지 않고 상속세를 과세한다. 또한 신탁재산의 귀속을 통해 사후수익자가 재산을 이전 받게 되면 취득세도 발생한다. 이 경우 위탁자와 사후수익자의 관계에 따라 취득세율이 달리 적용되는데 상속인에게 신탁재산이 이전되는 경우는 상속취득세율이, 상속인 이외의 자에게 신탁재산이 이전되는 경우는 상속 이외의 무상취득세율이 적용된다. 상속취득세율이 적용되는지 상속 이외의 무상취득세율이 적용되는지에 따라 과세표준, 세율 등이 달리 적용되므로 유언대용신탁 설정 시 감안할 필요가 있다.
간혹 유언대용신탁을 설정 시 세금의 절세효과를 묻는 분들이 있는데, 이렇듯 개인이 보유하던 재산을 상속하는 경우와 동일하게 과세하기 때문에 신탁 계약으로 인한 특별한 절세 효과는 발생하지 않는다.
비과세 혜택이 있는 ‘장애인 신탁’
신탁 계약 자체로 절세에 활용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장애인이 재산을 증여받고 증여받은 재산을 신탁하는 장애인 신탁을 활용하는 것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52조의2에는 장애인이 재산을 증여받고 그 재산을 본인을 수익자로 해 신탁한 경우 5억 한도까지 증여세가 과세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 수증자의 경우 5억 원의 재산을 받으면서 증여세를 내지 않고, 증여자의 경우 차후 상속이 발생할 때 사전증여재산에 해당 5억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상속재산을 온전히 낮추는 효과가 발생한다. 장애인 신탁은 세 부담 없이 재산이 이전되는 큰 혜택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세법상 정해진 요건에 맞게 신탁 계약을 체결해야 하고 사후관리 요건도 지켜줘야 한다.
증여받은 재산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른 신탁업자에게 신탁됐을 것 △장애인이 신탁의 이익 전부를 받는 수익자일 것 △신탁 기간이 장애인이 사망할 때까지로 돼 있을 것의 요건을 모두 충족해 증여세 신고기한까지 과세가액불산입 신고를 하면 된다.
신탁 계약 후에 △신탁이 해지 또는 만료된 경우(1개월 이내 재신탁한 경우 제외) △신탁 기간 중 수익자를 변경한 경우 △신탁의 이익이 장애인이 아닌 자에게 귀속되는 경우 △신탁원본이 감소된 경우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수증자가 재산가액을 받은 것으로 보아 증여세를 부과되므로 사후관리 요건도 고려해야 한다.
장애인 신탁 관련 설정 시 가장 많은 궁금증이 신탁원본을 인출할 수 있는지 여부와 신탁 기간을 장애인이 사망할 때까지 유지해야 하는지 여부다. 이 중 신탁원본 인출은 예외적으로 중증장애인의 경우 의료비 및 간병인 비용, 특수교육비, 생활비 월 150만 원 이하의 금액은 인출할 수 있다. 신탁 기간은 장애인이 사망할 때까지 반드시 유지를 해줘야 한다. 중간에 해지할 경우 신탁해지일 현재 해당 재산가액을 다시 평가해 증여세를 산정한다. 5억에 재산을 신탁했어도 신탁해지일 당시 10억으로 평가될 경우 10억에 대해서 증여세가 과세되므로 유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중간에 해지하고 신탁재산이었던 부동산을 매도한 후 금전이나 다른 부동산을 매입해 재신탁하면 어떻게 될까.
김휘연씨는 장애인인 아들 A씨에게 2010년 4억 원의 상가를 증여하고, 장애인 아들 A씨는 금융 회사에 해당 상가를 신탁하였다. A씨는 임대료를 수령하다가 10년 후 상가의 시가가 높아지자 신탁을 해지하고 10억 원에 상가를 매도했다. 매도 후 양도세로 2억 원을 납부하고 남은 8억 원으로 다른 상가를 재취득해 신탁을 해지한 지 1개월 이내에 재취득한 상가를 다시 신탁하였다.
A씨는 부동산의 변경으로 월세 120만 원을 수령하다가 240만 원의 월세를 수령하게 됐다. 장애인 A씨는 기존 신탁을 해지했기 때문에 사후관리 위반으로 증여세가 과세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1개월 이내에 재신탁 하였기 때문에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 예외 규정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과거 이 부분에 대해 조세심판원은 1개월 이내 재신탁한다 하더라도 해지하는 경우는 신탁의 연장으로 보지 않는다고 판단해 증여세를 부과했다. 1년 후 동일 사건에 대해 지방법원 판례가 나왔는데 조세심판원 판례와는 해석을 달리했다.
판례에서는 구 시행령 제45조의2 제6항은 “법 제52조의2 제2항 제1호를 적용함에 있어서 신탁해지일로부터 1월 내에 신탁에 다시 가입한 때에는 신탁 기간을 연장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신탁을 해지했더라도 1개월 내에 신탁에 다시 가입한 때에는 신탁 기간이 연장돼 세무서장 등은 증여세를 부과할 수 없다고 판시한 것이다. 해당 판례에서 재신탁하는 경우 동일한 종류의 신탁재산이 아니어도 가능하다는 해석과 부동산을 양도하고 대체부동산 재신탁 시 양도대금에서 양도세, 대체부동산의 취득세를 감안해 재신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해석도 참고할 만하다.
최초 계약한 신탁재산을 처분하고 새로운 재산을 취득해 재가입하는 등 본인의 재산을 의지대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장애인의 수익측면에서 유리한 면이 있고, 생계보장을 지원하는 해당 법 취지 와도 맞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지방법원 판례대로 법을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판단된다.
글 조기환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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