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부채 5500조 원. 시중에 넘쳐났던 유동성이 부채의 역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빚으로 자산을 사들이던 경제주체들이 다시 빚 폭탄이라는 부메랑을 맞으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기에 봉착해있다. 부채 공화국으로 전락한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Special]가계부채의 덫…부실폭탄 뇌관 되나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훌쩍 넘어섰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전 세계 61개국 중에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비율은 102.2%로 스위스(127.4%), 호주(111.1%)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가계부채 비율로만 따져보면 세계 최상위권 수준인 셈이다. 비금융 기업부채 비율은 1년 전보다 3.1%포인트 높아진 118.4%에 달한다. 이처럼 부채 비율 상승세가 가계와 기업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금리 하락세…부채 규모 다시 껑충

최근 대출금리가 하락세를 보이면서 가계대출 규모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물가를 고려해 긴축 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금리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대출 규모가 다시 늘어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은행 대출금리는 지난 2021년 8월 직후 수준까지 낮아졌고, 대출금리가 낮아지자 가계대출 수요가 다시 늘고 있다. 하지만 이미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대출이 다시 늘어나게 되면 경기 침체로 인한 직격탄을 입을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금리 인상이 지속된 이후 2조4000억 원이나 급증하며 올해 들어 첫 증가세로 전환했다. 4월 기준으로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세는 은행권 가계대출이 견인했다.

특히 정책모기지 대출이 4조7000억 원 증가하면서 가계대출 규모 상승으로 이어졌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월별 신규 가계대출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 3월에만 모두 18조4028억 원의 새로운 가계대출이 발생했다. 이는 지난해 3월(9조9172억 원)보다 86%가 늘어난 규모다.

4월 신규 가계대출 취급액도 15조3717억 원으로 지난해 대비 69%가 증가했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이 지난 3월 이후 급격하게 증가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포함)이 3월과 4월 각 93%(8조6878억 원→16조7628억 원), 76%(7조8536억 원→13조7888억 원)가 급등했다, 지난 3월과 4월의 신규 신용대출도 각 33%(1조2294억 원→1조6400억 원), 30%(1조2178억 원→1조5830억 원) 불어나며 전체 대출 규모 증가세를 견인했다.

최근 국내 자본시장을 뒤흔든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주가 조작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안 돼 다시 빚투(빚내서 투자)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신용공여 한도가 소진되면서 서비스가 제한됐던 신용거래융자를 다시 재개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20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규모는 올해(1월 31일~4월 28일)부터 4월 말까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전체 규모로 보면 1월 말(16조944억 원)에서 2월 말(17조7612억 원), 3월 말(18조6940억 원), 4월 말(19조4578억 원)까지 매월 1조가량 규모가 늘고 있다.
[Special]가계부채의 덫…부실폭탄 뇌관 되나
가계대출 연체율 증가…빚 부실화 우려

고물가와 고금리 환경이 지속되면서 부채의 질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경기 침체 신호등이 곳곳에서 켜지면서 가계부채 연체율이 급증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가능성, 전세 사기가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 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예금은행의 신규 대출금리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기존 대출자들에게 해당하는 잔액 기준금리 오름세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월 기준 신용대출 금리는 6.38%로 2013년 11월(6.39%)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담대 금리도 4.12%였는데 2013년 9월(4.13%) 이후 제일 높았다.

상황이 이렇자 기존 대출자들의 연체율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신용대출 연체율은 0.64%, 주담대 연체율은 0.20%였는데 이는 지난해 대비 각각 0.27%포인트, 0.09%포인트씩 상승한 수치다.

또한 대출 연체로 고객들이 금융 회사에 낸 지연배상금도 크게 증가했다. 지난 2년간 시중은행과 3대 인터넷전문은행에서 신용대출 및 주택담보대출의 연체로 고객이 낸 지연배상금은 지난 2년간(2021~2023년) 670만 건에 달하며 총 460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연배상금은 차주가 매월 납부해야 할 이자를 내지 못해 연체할 경우 연체 상황에 따라 은행이 부과하는 배상금으로 대출 적용 이자율에 3%를 더한 이자율이나 15% 중 낮은 금리를 적용해 부과한다. 지연배상 금리는 대출 당시 금리나 신용 상황에 따라 최대 15%에 달하는 금리를 적용해 결정된다.
[Special]가계부채의 덫…부실폭탄 뇌관 되나
비은행권 대출 부실화, 연체율에 비상등

부동산 경기 침체로 PF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비은행 연체율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업권별 부동산 PF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증권사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10.4%에 달했다. 2021년 말 연체율이 3.7%였던 점을 감안하면 1년 새 3배 가까이 증가한 규모다.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2020년 5조2107억 원에서 2021년 4조5544억 원으로 감소한 뒤 2022년 9월 말 4조4601억 원, 2022년 12월 말 4조4866억 원 등으로 변화는 미미했다.

하지만 연체 잔액은 2020년 1757억 원, 2021년 1690억 원에서 지난해 9월 말 3638억 원, 12월 말 4657억 원으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증권사의 부동산 PF에서 고정이하여신(연체 기간이 3개월 이상의 부실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9월 말 10.9%(4842억 원)로 두 자릿수를 넘어선 데 이어 12월 말에는 14.8%(6638억 원)까지 증가한 상황이다. 이는 2020년과 2021년 각각 5.5%(2877억 원), 5.7%(2591억 원)보다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연체율도 심각한 상황이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저축은행 업계의 연체율도 5.1%로 지난해 말(4.04%)보다 불과 3개월 사이 1.1%포인트가 올랐다. 연체율이 5%가 넘은 것은 약 6년여 만에 처음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비은행 금융기관들의 기업 대출은 2019년 4분기 357조2000억 원에서 지난해 4분기 652조4000억 원으로 82.6%나 불어났다. 비은행 금융기관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4분기 기준 2.24%로, 직전 분기(1.81%)보다 0.43%포인트 올라 2016년 1분기(2.44%) 이후 6년 9개월 만에 최고 기록을 세웠다.
[Special]가계부채의 덫…부실폭탄 뇌관 되나
韓 경제성장률 전망치 줄줄이↓…‘가계부채’가 발목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 전망치가 줄줄이 내려가면서 과도한 부채가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1.4%로 낮췄다. 지난 2월 전망과 비교해보면 상반기 성장률을 1.1%에서 0.8%로 0.3%포인트나 하향조정한 것이다.

앞서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두 달 만에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1.5%로 내렸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5월 성장률 전망을 기존 1.4%에서 1.1%로 수정 전망했다.

지난 3월 피치도 올해 성장률을 기존 1.9%에서 1.2%로 0.7%포인트 낮췄다. 지난 4월엔 국제통화기금(IMF)이 성장률 전망을 기존 1.7%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6%, 아시아개발은행(ADB)은 1.5%를 제시했다.

국제금융센터는 4월 말 기준 골드만삭스나 JP모건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의 성장률 전망치 평균을 1.1%로 집계했다.

킴엥 탄(Kim Eng Tan)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아태지역 국가신용평가팀 상무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이 가계부채 3위로 높은 편”이라며 “한국에 대외 충격이 발생한다면 가계부채와 맞물려 전반적인 경기 둔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