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언젠가 이 밤도 노래가 되겠지>

사진=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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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밤, 옥상달빛입니다>(MBC FM4U) 라디오 청취자들에게 밤마다 들려준 짧은 에세이가 모여 한 권의 책이 됐다. 싱어송라이터 옥상달빛의 멤버 김윤주와 박세진이 하루씩 번갈아 가며 쓴 에세이는 그들이 라디오를 통해 기록하는 일기나 다름없었다. 때로는 상처받고, 때로는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상 속 이야기가 읽는 이의 마음을 두드린다. 신간 <언젠가 이 밤도 노래가 되겠지>를 낸 옥상달빛과 지난 5월 9일 만나봤다.

얼마 전 신간 <언젠가 이 밤도 노래가 되겠지>를 출간하셨죠. 라디오 <푸른밤, 옥상달빛입니다>에서 시작된 에세이라고 들었는데요.
김윤주(이하 윤주) 라디오를 시작하고 프로그램 코너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프로듀서(PD)님이 짧은 에세이를 써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해주셨어요. 아무래도 저희가 가사를 쓰는 사람들이다 보니 그런 제안을 하신 건데, 에세이는 써본 적이 없었거든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저와 세진이가 하루씩 번갈아 가며 글을 썼죠. 그게 4년 반 동안 이어졌고, 그 글을 모아서 책을 내게 됐어요.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산문을 쓰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점이 어려웠나요.
윤주 매일 일기처럼 쓰는 에세이였거든요. 일기인데, 누군가가 보는 일기인 거죠.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까지 솔직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좀 많았던 것 같아요. 다행인 건 마감을 못 지킨 적은 없었어요. 원고를 못 쓰는 악몽을 꾼다거나, 마감 시간이 다 됐는데도 뭘 써야 할지 모르겠던 순간은 분명히 있었지만요. 저희가 새로운 사람을 자주 만나는 성격도 아니고 집에 있다가 가끔 산책 나가는 생활을 하다 보니, 정말 쓸 소재가 없어서 끝까지 고민한 적은 있죠.

박세진(이하 세진) 매일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진 않잖아요. 어제와 오늘이 비슷하고 별일이 없는데, 오늘도 무언가를 발견해서 이야기를 던져야 된다는 압박감이 좀 힘들었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4~5년 동안 제가 꾸준히 무언가를 이룬 건 이거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5년 동안 빠지지 않고 썼던 건 강제성 때문인데, 나는 강제성이라는 게 필요한 사람이구나 싶었고요. 라디오도, 에세이도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과물도 눈에 보이게 (책으로) 나왔고, 우리가 했던 생각과 이야기가 그냥 휘발되는 건 아니구나 싶거든요.

독자들에게도 일기 써보는 것을 추천하셨죠. 어떤 점 때문인가요.
윤주 저는 일기를 굉장히 오래 쓴 편이긴 해요. 라디오를 하면서 에세이로 대신하다 보니 따로 일기를 안 썼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할 때는 속에 있는 내용을 글로 썼거든요. 글로 적어보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면 점점 고민의 몸뚱이가 커져요. 내가 10가지 고민을 갖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두 가지 정도의 고민을 키워 놓은 경우가 많더라고요. 일기를 쓰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고 생각해요.
사진=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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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씨는 에세이를 통해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하셨는데. 어떤 점을 알게 된 건가요.
세진 저는 그런 데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성장하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물론 많이 좌절하긴 해요. 그럼에도 뭔가 나아지는 것에 대한 욕구가 있나 봐요. 저를 제외하고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워커홀릭이 많아요. 윤주도 워커홀릭이거든요. 윤주의 장점은 힘든 일이 있어도 항상 해낸다는 점인데요. 그런 점이 멋있게 느껴져요. 윤주를 제외하고도 친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에 열정적이고, 잘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었어요. 예전에는 ‘어쩌다가 워커홀릭 사이에 내가 있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알고 보니까 제가 워커홀릭을 곁에 두는 걸 좋아하는 거였더라고요. 제가 천성적으로는 게으르지만 그걸 부단히 바꿔보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원고를 쓰고 청취자들에게 들려주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부분이 있다면.
윤주 나중에 글이 쌓이고 나서 든 생각인데, 제가 다짐과 채찍질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데 듣는 사람이 지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느끼는 감정을 너무 솔직하게 썼더니 조금 불편하게 들릴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최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써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세진 라디오는 말투에서 나오는 습관이나 그 사람의 품격이 더 잘 드러나는 매체인 것 같아요. TV는 화면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가 많고, 편집이 빠르기도 하잖아요. 라디오에서는 굳이 안 해도 되는 과한 이야기를 전하기 쉬운 것 같더라고요. 이 선에 대해 굉장히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앞서 윤주가 말했듯이, 나를 어디까지 보여줘야 하는지를 고민했죠.
사진=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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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윤주 씨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면서, 진행을 세진 씨 혼자 하게 됐다고 들었어요.
세진 윤주 없이 진행한 지 일주일 정도 됐거든요(5월 9일 인터뷰일 기준). 예전에는 서로 생각이 다른 부분을 전달하기도 하고, 제가 헛소리를 해도 이 친구가 마무리를 해줬어요. 그런데 이제는 무슨 말을 꺼내든 제가 마무리를 해야 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티키타카가 저희 라디오의 가장 큰 장점이었는데, 이제 볼을 차도 아무도 받아주지 않게 됐죠.

윤주 일단 전부 다 골이라고 생각하세요.(웃음) 저도 방송을 잠깐 들어봤는데, 굉장히 애매한 감정이 들어서 못 듣겠더라고요. 이게 무슨 감정인지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어쨌건 30살이 넘어서 사람과도 이별을 해본 적이 없었다가, 라디오와 이별을 한 거잖아요. 이런 시간을 처음 겪다 보니, 뭔가 전 남자친구가 하는 라디오를 듣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세진이가 어련히 잘할 것이라는 믿음도 있고요.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사실 10시가 되면 슬퍼지거나, 아니면 뛰어나가서 놀거나 둘 중 하나일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더 일하게 되고, 그 시간을 신경 안 쓰려고 하고 있어요. 아직은 외면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클 것 같아요.
윤주 음악으로 만난 사람과 라디오로 만난 사람(청취자)들이 좀 다르더라고요. 아무래도 매일 같은 시간에 만났잖아요. 노래가 나갈 때 웬만한 청취자 메시지를 다 봤거든요. 내적 친밀감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생이었다가 회사를 다니게 된 분들도 있고, 중학생이었는데 대학생이 된 친구들도 있고요. 정말 가족과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운 마음은 당연해요. 앞으로 다른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다시는 이런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진짜 소중한 시간, 소중한 사람들이었죠. 라디오 디제이(DJ)를 오래 했던 분들이 “진짜 네 편이 생기는 거야”라는 얘기를 했는데, 처음엔 몰랐거든요. 라디오에 마음을 주면 그때부터 정해진 시간에 (방송을 들으러) 와 버리더라고요. 우리에게 마음을 열기까지 오래 걸렸을 텐데, 내가 그냥 “안녕” 하고 나와 버리는 것 자체가 송구스러운 마음이 있죠. 세진이가 적적하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갈 준비는 돼 있으니까 불러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옥상달빛 “마음을 닮은 일기, 라디오로 전했죠”
이번 에세이집에 삽입된 사진을 모두 윤주 씨가 직접 찍으셨다고요.
세진 윤주가 사진을 잘 찍어요. 제가 15년 전부터 사진 잘 찍는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사진 이렇게 찍는 사람 많다”고 손사래를 치더라고요. 제가 봤을 때는 정말 프로에 버금가는 실력이에요.

윤주 사실 음악 하는 것보다 사진 찍는 걸 더 좋아해요. 만약에 사진을 일로 하는 사람이었다면 스트레스를 받았을 텐데, 저는 취미로 하니까 더 좋더라고요.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를 좋아해요. 이번 책에는 여행 갔을 때나 평소에 찍어 뒀던 사진을 조금 모아서 실었어요.
옥상달빛 “마음을 닮은 일기, 라디오로 전했죠”
책을 읽은 분들 후기를 보니, 위로받았다는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옥상달빛 음악이나 글에서 위로를 얻는다는 감상이 유독 많이 나오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윤주 저도 궁금해서 후기를 찾아보긴 했어요. 아무래도 저희가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누군가를 위해서 쓰고 싶은 생각도 분명히 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은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느꼈던 감정을 쓴 거예요. 우리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얘네도 이런 걸 느끼는구나. 나도 느끼는데’라고 공감해주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에는 “고생했어요. 괜찮아요”라는 위로는 지나간 시대인 것 같더라고요. 오히려 “나도 오늘 힘들었어”라는 이야기가 더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옆에 가만히 있어주는 친구 같은 글이라, 더 좋게 봐주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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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두 분은 어디에서 위로를 얻나요.
윤주 저는 오늘 위로를 받았어요. 아까 세진이랑 홍제천 앞에서 도시락을 먹었는데요. 바람은 적당히 불고, 앞에는 물이 흐르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세진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게 엄청 큰 위로였어요.

세진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걸 나눠 먹으며 대화하는 것 이상이 있나 싶어요. 어떤 면에서 인생은 혼자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엔 인간이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인 것 같아요. 갈수록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요즘 20대들에게는 사람을 ‘손절’하는 일이 흔해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상대방이 너무 잘못해서 억하심정이 생길 때 어쩔 수 없이 손절하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자신이 조금 상처받거나 소외감을 느껴도 손절하는 일이 생기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사실 저는 조금 아쉬워요. 인간관계도 파도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떨 때는 민물처럼 올 때가 있고, 바쁠 때는 서로 멀리 떨어지기도 하는 거고요. 그런데 그냥 손절해 버리면 나중에 만날 사람이 없을 것 같거든요. 가뜩이나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줄어들잖아요. 요즘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행복감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라디오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전했고, 창작물도 내놓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쏟아내는 만큼 고갈에 대한 부담도 있을 것 같아요.
세진 많았죠. 사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는 건데, 코로나19 기간이었잖아요. 특히나 저희는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어서, 코로나19에 걸리면 생방송이 펑크 난다는 생각 때문에 더 조심했던 것 같아요. 되도록 사람을 안 만났어요.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거예요. 저희 둘은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우리가 채우는 것 없이 계속 쏟아내고만 있고, 그래서 가사도 좀 안 써지는 것 같다는 대화를 꽤 오래 나눴죠.

윤주 주변에서 음악을 하며 라디오 DJ 했던 분들이 말하기를, 그렇게 병행할 수 있는 기간이 최대 4년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음악 작업이 안 돼서 그만두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어떻게든 2가지를 다 해보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그만두는 분들도 많고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풋을 위해서는 평소에 사람을 많이 만나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번 만나는 사람만 만나는 것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대부분은 나와 생각이 잘 통하고 편안한 사람을 계속 만나잖아요. 그렇게 되면 안정감은 채워지겠지만 뭔가를 깨닫거나 느끼는 면에 있어서는 부족할 수 있겠더라고요. 이제는 다른 분야에 있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볼까 하는 마음을 먹었어요. 그 사람들이 ‘내 편’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겠지만 뭔가 배울 점들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세진 다양한 것을 받아들이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는 받아들일 자세가 돼야 하잖아요. 그런데 똑같은 사람만 만나면 좀 배타적으로 굳어지기 쉬운 것 같아요. 새로운 생각이 흘러들어 올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된다고 해야 할까요. 저도 새로운 사람을 잘 받아들인다거나, 만나기를 즐기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이러나저러나 저는 음악이 참 좋아서, 새로운 음악을 많이 들으며 채우는 부분도 있죠.

마지막으로 이번 책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가 닿았으면 좋겠나요.
윤주 별 생각 없이 가볍게 집어 드는 책이 됐으면 좋겠어요. 다만 책을 내려놓을 때 ‘나도 한번 이렇게 써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요. 책의 내용이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저희 손을 떠난 영역의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요.

세진 어떤 한 꼭지에서라도 ‘내 마음 같은 글’을 발견했다고 하신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피드백은 없을 것 같아요. 부디 즐겁게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