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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오피스, 한국 시장 성공 가능성은
[한경 머니 기고 = 이나래 EY한영 세무부문 파트너] 고액자산가들의 재산 관리 전담에 특화된 패밀리오피스(family office)는 단순히 재산 관리 기능에 머무르지 않는다. 패밀리오피스는 투자,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자선 사업 등 대를 이어 가족의 재산을 보존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며 부의 축적과 가문의 가치 영속성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9세기 유럽의 로스차일드(Rothschild) 가문이 집사에게 체계적으로 가문의 자산을 관리하도록 한 것에서 패밀리오피스의 개념이 시작됐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석유재벌 존 데이비슨 록펠러(Rockefeller)가 처음으로 패밀리오피스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후, JP모건이 가문의 자산과 미술품을 관리하기 위해 형태를 발전시켜 오늘날의 패밀리오피스에 이르게 된 것이다.

패밀리오피스는 유럽을 시작으로 미국 등지에서 꾸준히 발전해 왔고 최근에는 아시아 지역에서도 크게 성장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자산관리의 복잡성이 높아짐에 따라 가족기업들이 부를 보존하기 위한 방법으로 패밀리오피스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패밀리오피스는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으며, 가문이 근거지로 두고 있는 국가의 법률과 가족기업의 성장 단계에 따라서 그 유형이 다양하다.

패밀리오피스는 크게 싱글 패밀리오피스(SFO)와 멀티 패밀리오피스(MFO)로 나뉜다. 싱글 패밀리오피스는 개인 자산 지분으로 설립돼 특정 자산가 및 그 가족에게 최적화된 자산관리를 제공한다. 서비스 범주에는 투자, 승계 계획 수립과 실행, 위험관리 등이 포괄적으로 포함되며 구체적인 형태는 자산운용사, 자선재단, 헤지펀드 등 다양하다. 이에 반해 멀티 패밀리오피스는 다수 자산가의 자산관리를 목적으로 하며 법률, 의료, 교육 등 폭넓은 범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이 체제를 적극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중견기업들은 기업의 영속성, 안정적인 경영 승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창업 가치의 보존을 위해서 패밀리오피스를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자산가들의 패밀리오피스 활용 사례를 검토하고, 이를 한국의 기업 현실에 어떻게 적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패밀리오피스, 한국 시장 성공 가능성은
패밀리오피스, 가업의 가치 전달한다
한국에서 흔히 하는 말로 ‘부자는 3대를 못 간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외에 다양한 언어권에서도 이런 의미의 속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에는 ‘셔츠 바람으로 살다가 부자가 돼도 3대 만에 다시 셔츠 바람으로 돌아온다(Shirtsleeves to shirtsleeves in three generations)’는 표현이 있다.

그만큼 앞 세대에서 설립한 가업을 성공적으로 승계하고 그 가치와 부를 이어가는 일이 자산가들에게는 큰 과제인 것이다. 이런 승계 과정을 원활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패밀리오피스다. 패밀리오피스를 활용하면 단순히 직위와 자산을 물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업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경영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해외 사례를 보면 오랜 기간에 걸쳐 사회의 존경을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기업을 경영해 온 자산가 가문들은 일찍이 패밀리오피스를 활용했던 것을 찾아볼 수 있다.

패밀리오피스가 가장 활성화된 유럽에서 대표적인 패밀리오피스의 사례로는 스웨덴의 발렌베리(Wallenberg) 가문이 있다. 발렌베리 그룹은 1856년에 설립돼 현재 13개의 핵심 기업과 149개의 지분 투자 기업 등 총 162개 기업을 160여 년에 걸쳐 5대째 경영하고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그룹 지배구조 최상위에 공익재단을 두고, 재단 이사회의 의장직을 가문에서 맡아 피라미드형 소유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특히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것이 특징이다. 발렌베리 가문의 자녀들은 경영권을 당연히 세습하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요건을 갖춰서 인정받았을 때에만 경영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부모의 지원 없이 혼자 힘으로 명문대를 졸업하고 해군장교로 복무하는 것 등이 요건의 일부다.

가문의 자녀라고 해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경영을 총괄하지 못한다. 즉, 기업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가문의 재단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참여하고 사회에 이익을 환원하는 데에 집중하는 식이다.

한국 시장에서 패밀리오피스의 현주소는
유럽을 중심으로 발달해 온 패밀리오피스 시스템이 한국의 기업 현실과는 다소 이질감이 있다는 시각도 존재할지 모른다. 그러나 패밀리오피스는 국가와 업종을 뛰어넘어서 기업 영속성 제고를 위해서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봐야 할 것이다.

EY에서 발행한 ‘2022년 글로벌 패밀리오피스(Global Family Office)’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패밀리오피스 운용자금의 총액이 1조2000억 달러(약 1350조 원)를 넘어서 이미 사모펀드 및 벤처캐피털의 운용자금 총액을 앞지를 정도의 규모에 도달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패밀리오피스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다. 정부 차원에서 세금 인센티브를 비롯해 다양한 기업 친화적 혜택을 적극 제공하고 홍보한 덕분에 최근 몇 년 동안 다수의 부호들이 싱가포르에 가문의 자산관리를 위한 싱글 패밀리오피스를 설립했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으로 싱가포르에 싱글 패밀리오피스의 수는 700여 개로 추정되며 이는 전년도의 400여 개에 비해서 급증한 수준이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의 저금리 및 저성장 기조 속에서 풍부한 유동성을 운용하기 위해서 자산가들이 싱가포르의 정책적 혜택에 주목한 결과였다. 한국의 패밀리오피스는 슈퍼리치 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투자 컨설팅을 중심으로 전개돼 왔는데 점차 가업승계와 패밀리오피스를 포괄하는 형태로 확장하는 추세다.

EY한영 또한 이런 시장의 트렌드에 발맞추어 2022년에 고액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NH투자증권과 가업승계 컨설팅 관련 업무 제휴를 체결한 바 있다. 이를 통해 해당 고객들에게 EY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회계 및 세무 이슈에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해외의 다양한 자산가 가문들의 패밀리오피스 사례들을 보면 결국 단순한 부와 지위의 상속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재단, 가족재단, 유한 파트너십, 유한책임회사(LLC)와 같은 법적 실체를 통해 가족의 자산을 관리하고 사업의 영속성을 도모해 나가는 방식을 채택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 패밀리오피스에 대한 논의와 실행은 아직 비교적 초기 단계에 있다. 기업들이 패밀리오피스에 대한 인식을 발전시켜 가는 와중에 우리 정부 또한 최근에 가업상속공제, 증여세과세특례제도, 상속세 납부유예 등 여러 가지 규제 완화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올해부터 세법의 기업 승계 지원제도가 대폭 개정돼, 중소·중견기업들의 부담이 크게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제도적 변화에 발맞추어 패밀리오피스가 점차 한국 사회에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 이나래 EY한영 세무부문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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