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우 명가원 대표

전문가가 바라보는 차 투자의 이면은 어떤 모습일까. 국내에서 몇 안 되는 골동보이차 전문가인 김경우 명가원 대표는 일반 소비자가 티(tea)테크의 환상만을 바라보며 뛰어드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special] “보이차, 투자 환상 깨야 본연의 가치 보여”
“보이차 투자에 대한 환상과 오해가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차는 마시고 즐기는 대상인데, 이를 ‘투기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면 시장이 올바르게 형성되기 힘들지 않을까요.”

1990년대부터 대만, 홍콩, 중국을 넘나들며 보이차의 세계에 몸담았던 김경우 명가원 대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골동보이차 전문가다. 비싸게는 수억 원대에 달하는 다양한 보이차를 취급하며 수십 년을 보내는 과정에서 보이차 시장의 명과 암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그런 그가 이색 재테크로 거론되는 ‘보이차 투자’의 이면에 대해 입을 열었다. 보이차에 대한 지식이 크지 않은 일반 소비자가 섣불리 투자에 나섰다가 원금도 못 건진 채로 피해를 떠안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 보이차 투자에 대한 잘못된 오해가 시장의 투명성을 해치고 있다는 게 그의 우려다.

“요즘 나오는 보이차는 절대로 옛날 차만큼 가격이 오를 수가 없습니다. 물가 상승률 등을 반영하면 은행 이자보다는 낫다는 정도로 생각해야지, 옛날 차처럼 가격이 100배, 500배씩 급등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습니다.”

김 대표는 “보이차 시장의 진실과 투자의 이면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해야 보이차 시장이 올바른 방향으로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와 함께 보이차 투자의 이면을 짚어본다.
[special] “보이차, 투자 환상 깨야 본연의 가치 보여”
고가에 거래되는 골동보이차의 특징이 궁금하다.
“골동보이차는 생산된 지 최소 50~70년 이상 된 차를 말한다. 즉, 1970년대 중반 이전에 만들어진 차다. 이런 골동보이차는 가격이 비싼 대신 확실한 거래가 가능하다. 다만 오래된 차라고 해서 똑같이 비싼 것은 아니다. 골동보이차 간에도 가격 차이가 존재하는데, 기본적으로 오미(五味: 떫은맛·쓴맛·단맛·신맛·짠맛)가 뚜렷한 차일수록 가치가 높다. 또 1930~1940년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보이차 중에서도 변형된 제다법으로 만든 차가 있는데, 이런 차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거래된다. 우리가 비싸다고 이야기하는 골동보이차가 1억5000만 원 이상이라면, 저렴한 차는 3000만~5000만 원 정도다.”

비싼 골동보이차는 어느 정도 가격 선까지 올라가나.
“현존하는 보이차 중 고가 제품은 3억~4억 원 선에서도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단, 전제조건이 있다. 차가 깨끗하고 형태가 온전해야 한다.”



그보다 저렴한 보이차는.
“1970년대 이후에 나온 보이차는 앞서 말한 골동보이차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중국 정부가 운영했던 맹해차창 정품은 400만~500만 원을 넘고, 개인 공장에서 맹해차창 제품을 따라 만든 모방품은 100만~150만 원 정도다. 중국의 경우 1990년이 돼서야 보이차 시장이 조금씩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그 시기 개인 차창이 생겨나면서 맹해차창 모방품이 많이 나왔다. 맹해차창 진품인지, 혹은 모방품인지 구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일반인들은 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보이차를 투자 목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나.
“지금까지는 많았다. 그런데 차를 잘못 구입해 애를 먹는 분들도 그만큼 많다. 주식과 같은 원리다. 낮은 가격에 사서 높은 가격에 팔면 되는 간단한 논리인데, 문제는 어느 정도 가격이 최저인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 보이차도 마찬가지다. 맹해차창과 같은 브랜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사두거나, 개인 공장에서 만든 보이차 제품을 싸게 사서 시간이 흐른 뒤 비싼 가격에 판매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가 투자 이익을 남길 수 있을 정도로 낮은 가격에 보이차를 사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또한 투자 구조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이차를 유통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줘야 한다. 개인 간 거래는 지극히 소량에 불과하기 때문에 중간 유통인의 개입 없이는 원활한 거래가 힘들다. 그런 전제 없이 보이차 투자에 뛰어들어 곤란을 겪는 분들이 있다. 단순히 보이차를 대량으로 사 둔다고 해서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전량을 팔 수 있는 게 아니다. 해당 보이차 제품이 현시점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고, 추후 판매했을 때 얼마까지 받을 수 있는지 전문가의 견해를 바탕으로 예상해봐야 한다. 최소한 원가는 유지돼야 하지 않겠나.”
[special] “보이차, 투자 환상 깨야 본연의 가치 보여”
가격 상승을 기대할 만한 보이차 종류를 꼽는다면.
“앞서 언급한 맹해차창 제품 같은 경우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올라갈 수 있다. 다만 차는 어디까지나 기호식품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차를 사줄 사람이 있다면 수요에 따라 비싼 가격에 내놔도 팔리겠지만, 고만고만한 차라면 더 저렴한 가격에 다른 맛있는 차를 구매하겠다고 판단하는 이가 많을 수 있다.”

보이차 투자로 큰 이익을 남긴 사례도 실제로 존재한다고 들었는데.
“과거 1990년대 골동보이차가 처음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하던 시점에는 차 가격이 이 정도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전무했다. 차를 좋아하다 보니 당장 소비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많은 양을 사 뒀다가, 우연히 가격이 올라 이익을 보게 된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이런 과거 사례를 최근 나오는 보이차에 접목시키는 건 맞지 않다. 요즘 차는 절대로 옛날 차만큼 가격이 오를 수가 없다. 물가 상승률 등을 반영하면 은행 이자보다는 낫다는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 옛날 차처럼 보이차 가격이 100배, 500배씩 급등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7~10년 전에 샀던 보이차 가격이 현시점 10배가량 올라 차익을 거두는 사례는 현시점에선 성립이 안 되는 건가.
“7년 전이면 2015년인데, 그 이후 현재까지 보이차 가격은 거의 변동이 없다. 그 정도의 이익을 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류의 환상과 오해가 지금의 보이차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보이차에 대해 제대로 파악한 뒤, 큰 욕심을 내지 않는 선에서 투자하는 것은 괜찮다. 옛날 보이차는 이미 만들어진 수량이 한정된 상태고, 차 애호가들이 시중에 남은 차를 마셔 없앨수록 공급은 자연히 줄어들게 된다. 골동보이차의 희소가치가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시장의 내막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마치 ‘보이차가 일확천금을 가져다주는 투자 자산이 될 것’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피해자가 계속해서 생겨날 수 있다.”

보이차를 오래 가지고 있으면 상품의 품질과 가치가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도 생각보다 많다.
“술을 예로 들어보자. 발렌타인 21년산을 오래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발렌타인 30년산이 될까. 기존에 발효가 일어났던 특정 환경에서 떠나 버린 뒤에는 약간의 변화만 일어날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다. 골동보이차가 좋은 차인 이유는 이미 특수한 환경에서 발효가 충분히 됐기 때문이다. 신차 1편을 500만 원에 사 두면 1년 뒤 1000만 원의 가치가 된다는 식으로 호언장담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발렌타인 21년산을 사서 10년 가까이 기다리면 30년산이 될 거라고 믿는 것이나 다름없다.”

보이차를 개인 간 거래할 때는 세금이 붙지 않아, 항간에는 부자들이 증여·상속에 활용한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아직까지 절세를 위해 보이차를 대물림하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상상 속에서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 있겠다’고 가정해볼 수는 있겠지만 실제 사례를 듣거나 겪어보지는 못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자산가가 증여나 상속 수단으로 보이차를 활용할 만큼 차의 자산 가치를 신뢰하는 경우가 잘 없다.”
[special] “보이차, 투자 환상 깨야 본연의 가치 보여”
우리나라 보이차 시장 상황은 어떤가.
“1990년대까지는 마니아 시장이었지만 2000년 이후로 시장이 좀 더 대중화됐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를 통해 보이차가 많이 노출되기도 했고, 다이어트, 신진대사 등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보이차에 입문하는 사람이 늘었다. 특히 2020년 이후에는 30~40대 젊은 소비자가 많이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국내 보이차 시장은 크게 두 갈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중국 운남에서 들여온 신차 시장 그리고 또 하나는 발효된 보이차 시장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취향과 몸의 체질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발효된 보이차라고 해서 비싼 제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10만~20만 원대 보이차 중에서도 맛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 차부터 먼저 접해보는 것을 권한다.”

고가 보이차에 관심을 보이는 젊은 세대도 있나.
“존재하긴 하지만,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아직은 시장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결국 우리가 가고 싶은 방향은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시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옷을 고를 때 명품 시장과 저가 시장 중 선택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인 것처럼, 보이차의 세계도 똑같다고 본다. 보이차 중에서도 명품을 고르고 싶은 사람은 맹해차창 진품을 마시고, 저렴한 차를 원하는 사람은 개인 차창에서 만든 발효차 혹은 신차를 마시는 식으로 선택할 수 있다.”

중국 보이차 시장은 우리나라와 어떻게 다른가.
“우리나라와는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 중국은 차를 좋아하는 친구가 집에 방문했을 때 갖고 있던 고가의 차를 기꺼이 열어 마시는 문화다. 심지어 1통(7편)에 12억 원 전후의 차를 구해 달라는 케이스도 봤다. 그런 비싼 차를 구하는 목적이 뭐냐고 물었더니,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라고 답하더라. 보이차를 투자 대상으로만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처럼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문화 속에서 차의 가격은 자연스럽게 상승한다. 이런 시장이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본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차를 그렇게까지 고급 문화로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한계가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투명한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명가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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