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국내 과세 현주소는
[한경 머니 기고=이나래 EY한영 세무부문 파트너] 이 모 씨는 아들에게 자신이 수십 년간 일궈 온 유통사 A를 물려주고 싶으나 세금 부담 때문에 증여에 대한 의사결정을 계속 미뤄 오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 씨에게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아들 명의의 회사 B를 신설하고, A의 주요 매출 거래처들을 B로 이전시키면 아들은 세금 부담 없이 B를 A와 비슷한 규모까지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이에 따라 B사는 급격히 매출 규모가 커지며 성장하게 됐다. 그러나 2년 뒤 6월, 국세청은 이런 거래처 이전으로 인한 이익이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른 ‘특수관계법인으로부터 제공받은 사업 기회로 발생한 이익의 증여의제’의 신고 대상에 해당한다면서 B사의 지배주주인 아들이 증여세를 신고·납부할 것을 고지했다.

이 씨의 사례는 상증세법상 대표적인 증여의제 규정인 상증세법 제45조의 4의 ‘특수관계법인으로부터 제공받은 사업 기회로 발생한 이익의 증여의제’(이하 일감 떼어주기 과세제도)가 적용된 것이다.

이는 자녀 등이 지배주주로 있는 회사에 특수관계법인이 기존 거래처를 이전하는 형태 등으로 해당 회사에 사업 기회를 제공했을 때, 자녀 등에게 증여한 것으로 간주해 증여세를 부과하는 규정이다. 이와 유사한 규정으로 자녀 등이 지배주주로 있는 회사에 특수관계법인에 대한 매출을 몰아주어 이익을 간접적으로 자녀 등에게 분여하기 위한 행위를 제재하고자 하는 규정인 상증세법 제45조의 3 ‘특수관계법인과의 거래를 통한 이익의 증여의제’(이하 일감 몰아주기 과세제도)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세법상 증여세는 재산을 무상으로 이전했을 때만 발생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상증세법은 2004년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함으로써 거래의 형식, 명칭, 목적 등에도 불구하고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무상으로 이전해 타인의 재산 가치를 증가시키는 모든 거래를 증여로 의제해 과세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와 떼어주기 거래 역시 전통적인 증여 방식은 아니나 그 경제적 실질을 증여 행위로 볼 수 있으므로, 이러한 변칙적 증여 행위에 대한 사전 대응 방안으로 관련 과세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올해 6월 국세청은 일감 몰아주기·떼어주기 증여세 신고와 관련해 예상 과세 대상인 수증자 2039명, 수혜법인 1635개 등에 신고 안내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2021년 국세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 과세에 대한 결정세액은 약 2644억 원에 달하는 만큼 해당 과세제도는
세수 측면에서도 중대한 축을 담당하고 있어 그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떼어주기 과세제도의 도입 배경
일감 몰아주기·떼어주기 거래는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어떻게 제재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2007년 한 대기업이 계열사에 부당하게 지원한 거래에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을 부과한 이후, 재계뿐만 아니라 정치권 및 시민단체의 높은 관심 속에서 본격적으로 관련 거래에 대한 법제화가 논의됐다. 2011년 4월 상법 개정을 통해 회사기회유용금지조항이 신설됐고, 뒤이어 같은 해 12월 세법에서도 일감 몰아주기 과세제도, 2015년 12월 일감 떼어주기 과세제도가 도입됐다.
일감 몰아주기, 국내 과세 현주소는
일감 몰아주기·떼어주기 과세제도의 주요 논점 및 대응 방안
일감 몰아주기·떼어주기 과세제도는 전 세계적으로 드문 유형의 제도인 만큼, 도입 논의 시점부터 수많은 논의를 거쳐 수차례의 개정을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해당 과세제도에서 고려해야 할 주요 논점 및 대응 방안들은 다음과 같다.

① 이중과세 논란
관련 제도의 주요 특성 중 하나는 미실현 손익에 대한 과세라는 점이다. 즉, 직접적으로 지배주주 등이 주식을 통해 얻은 실현 손익에 대한 과세가 아니라 수혜법인이 거래를 통해 얻게 된 이익을 기반으로 과세를 한다는 것이다.

주주가 보유 주식을 통해 이익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은 크게 보유 주식으로부터의 배당소득 혹은 주가 상승 시 처분을 통한 주식 양도차익이 존재한다. 다만, 주주 입장에서는 해당 주식이 계열사를 지배하는 순환출자의 축을 형성한다면 이를 처분할 유인이 없고, 상장을 목표로 하는 경우 배당하는 대신 사내에 유보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소득세의 과세권을 적절히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해 부의 편법적 이전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를 시행하는 것이다. 주주가 배당이나 주식 처분 등을 통해 보유 주식으로부터의 이익을 실현할 경우에는 이에 대한 과세가 이뤄질 것이고 결과적으로 이중과세 논란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세법에서는 관련 규정 도입 시, 양도소득 필요경비 규정에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가 과세된 주식의 취득가액을 계산할 때에는 증여의제이익을 반영해 계산하도록 했다(소득세법 시행령 §163⑩1). 이후 배당소득에 대한 이중과세 조정 규정이 추가적으로 반영돼 주주가 주식으로부터 배당받은 금액에서 증여의제이익 상당액을 해당 출자관계의 증여의제이익에서 공제(상증세법 시행령 §34의3⑮)하도록 했다.

② 자기증여에 대한 과세
두 번째는 일반적으로 재벌총수 집단의 지분 출자 관계가 주주별로 독립적으로 구성돼 있지 않고 계열사 간 상호출자 관계에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일감 몰아주기·떼어주기 거래는 종국적으로 자기증여 형태에 대한 과세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과세관청은 주주의 출자 관계별로 발생하는 자기증여 부분이 세후 영업이익을 계산할 때 반영되지 않는 점을 인식하고, 2013년 상증세법 시행령 개정을 시작으로 지속해서 관련법을 개정해 자기증여 성격을 가지는 매출은 과세 매출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③ 과세 대상 이익 산정의 적정성
일감 몰아주기 과세제도의 증여이익 계산은 수혜법인의 전체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산정된다는 점에서, 일감 몰아주기 거래와 무관한 사업 부문의 영업이익이 과세될 가능성도 지닌다. 반면, 일감 떼어주기 과세제도는 규정 도입 당시부터 사업 기회를 제공받은 사업 부문의 영업이익으로 과세 범위를 명확히 해 비교적 해당 문제에서 자유로웠다.

이에 과세관청은 일감 몰아주기 과세제도를 2022년 개정해 사업 부문별로 회계 구분 관리 요건 등을 충족할 경우 해당 사업 부문에 대한 영업이익에 한정해 증여의제이익을 계산할 수 있도록 변경했다(상증세법 §45의3①). 특수관계법인으로부터 발생한 이익을 보다 명확히 한 것이다. 관련법 개정을 통해 일감 몰아주기와 무관한 사업 부문의 영업이익 비중이 높았던 수혜법인의 경우 세 부담이 크게 감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감 몰아주기, 국내 과세 현주소는

일감 몰아주기·떼어주기 과세제도의 향후 과제
과세관청은 상술한 개정사항 등 외에도, 수출 기업에 대한 매출 및 다른 법률에 따라 의무적으로 특수관계법인에 대한 매출을 과세 대상 매출에서 제외하는 등 관련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납세자의 의견을 모니터링해 이를 반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해당 과세제도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해당 제도는 수혜법인이 특수관계법인과의 거래를 통한 영업이익 발생을 통해 지배주주의 주식 가치 상승으로 이어져 부의 무상이전이 이뤄진다는 전제로 과세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매출 및 영업이익이 상승하더라도 주식 가치 상승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는 난제가 동반된다.

또한 관련 제도는 상법 및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과 같은 여러 법률들과 함께 동일한 경제적 실질을 규율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복 규제 및 법률 간 정합성 문제로 인한 규제 준수 비용 등 기업 경영에 부담을 주기도 한다. 중복 규제가 적용되는 상황에서 기업은 입법 목적을 달리하는 각 법령들이 요구하는 서로 다른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역량을 투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업 활동 및 정책 효율성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수혜법인의 소액주주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제도의 취지는 지배주주의 사익편취를 방지하기 위한 것인데, 이와 무관한 제3자인 소액주주는 직접적인 과세뿐만 아니라 기업이 관련 제도에 대응하기 위해서 구조 개편을 하거나 거래비용을 늘림에 따라 발생하는 기업 가치의 감소로 인한 불이익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일감 몰아주기·떼어주기 과세제도는 단순한 과세제도의 일환이 아니라 기업 및 지배주주의 부당행위를 규율하기 위한 제재 수단으로 도입된 만큼, 높은 사회적 관심 속에서 지속적인 논의를 거치고 있다. 모든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법과 제도는 없으며, 이는 일감 몰아주기·떼어주기 과세제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규제 수단으로서의 역할과 납세자의 권익 보호라는 2가지 이해관계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사회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Y한영 세무부문 이나래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