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원조 논란 ‘지재권 전쟁’
“식품 업계만큼 제품 카피가 활발한 업계는 아마도 없을 것 같다. A사가 B사 제품을 베껴 논란이 됐다고 해도, 이미 과거에 B사가 A사의 다른 제품을 베낀 사례가 있는 탓에 서로 법적 책임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식품 업계의 미투(me too·모방) 제품 출시는 유통가의 관행으로 불릴 정도로 뿌리 깊게 자리 잡힌 문화다. 메가히트 상품이 하나 나오면 수십여 종의 비슷한 제품이 쏟아져 나와, 어떤 제품이 원조인지 따지는 게 무의미해진 경우도 존재한다.
유통가, 굵직한 ‘모방’의 역사
2010년대 식품 업계를 강타한 해태제과 ‘허니버터칩’은 미투 신드롬을 부른 대표적인 케이스다. 기존 제품의 맛과 네이밍에 ‘허니(꿀)’와 ‘버터’ 콘셉트를 접목한 신상품이 우후죽순 나온 것. 허니버터칩 신드롬에 편승한 일종의 벤치마킹 열풍이었다.
다만 이들 제품의 인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초반에는 시장의 전체 파이를 확장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콘셉트의 제품이 1~2년 사이 지나치게 많이 쏟아진 탓에 소비자 피로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제품력에 신경을 쏟기보다 단순 모방하는 수준에 치우친 상품이 많아, 장기적인 판매로 이어지지 못했다. 미투 제품이 유통가에 깔리면서 원조 제품의 생명력까지 깎아 먹었다는 평도 나왔다.
원조 제품의 이미지와 콘셉트뿐만 아니라 맛과 모양을 의도적으로 따라한 케이스도 적지 않다.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초코파이’가 있다. 1974년 오리온이 개발한 초코파이는 지금까지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인기 상품인데, 이 제품의 국민적 히트 후 롯데제과 ‘롯데 초코파이’, 크라운제과 ‘크라운 쵸코파이’ 등 원조 제품의 맛과 모양, 이름을 따라한 아류가 세상에 나왔다. 1997년에는 상표권 소송까지 벌어졌으나 결국 고유한 상표로 인정받지 못했고, ‘초코파이’라는 이름은 보통명사로 남게 됐다.
‘원조 제품’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한 제품이 또 다른 업체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따라한 ‘짝퉁’이 되는 웃지 못할 사례도 존재한다. 과거 크라운제과는 자사 ‘못말리는 신짱’의 상표를 롯데제과가 ‘크레용 신짱’으로 변형해 사용했다며 ‘상표사용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런데 크라운제과가 상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 ‘못말리는 신짱’이 출시되기 전, 삼양식품이 1973년부터 ‘짱구’라는 이름의 유사한 과자를 판매하고 있었다는 점은 다소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이들 세 제품은 이름뿐만 아니라 과자의 외형과 맛이 유사하다는 평을 받았다.
식품 업계의 모방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2017년 오뚜기와 동원F&B 등이 자사 제품 ‘컵반’을 모방했다며 제품 판매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형태가 유사한 것은 맞지만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형태라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비슷한 후속 제품이 만들어져도 원조 제품으로서의 법적 권리를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물론 미투 제품 분쟁에서 이례적으로 승소한 사례도 있다. 빙그레는 ‘바나나맛우유’의 유사 상품인 ‘바나나맛 젤리’와 관련해 판매금지 가처분소송을 걸었는데, 법원은 바나나맛 우유 특유의 용기 모양 등을 유사하게 따라한 타사 제품이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2017년 당시 재판부는 “바나나맛 우유 용기 모양, 디자인이 바나나맛 젤리 제품의 외관뿐만 아니라 젤리 모양 자체도 전체적으로 상당한 유사성이 인정되므로 바나나맛 우유 용기가 가지는 구매력, 신용 등을 감소시켜 상품표지로서의 출처 표시 기능을 손상하게 하는 행위로서 부정경쟁행위”라고 판시했다.
K-문화 인기에 해외선 ‘K-푸드 베끼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해외 시장에서 국내 제품을 모방하는 경우도 두드러졌다. K-컬처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식음료 분야에서도 모방 현상이 잇따랐다. 과거에는 주로 국내 업체가 해외 제품을 모방해 곱지 않은 눈길을 받았던 것과 달리, 이제는 동남아시아, 중국, 일본 등 해외 식품 회사가 국내 제품을 모방한 짝퉁 상품을 출시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된 셈이다.
한국지식재산보호원에 따르면 지난 2017~2022년 국가별 한국 브랜드 모방 의심 사례는 중국 1만2692건, 태국 2039건, 인도네시아 1964건, 베트남 1730건에 달한다. 해당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국가까지 고려하면 국내 제품을 도용·모방한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태국 등 동남아 국가에서는 한국 과일맛 소주의 디자인, 브랜드명을 따라한 주류 제품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제품처럼 보이기 위해 상품 외관에 한글을 삽입한 것은 기본이다. 흔히 인스턴트 라면의 원조 격으로 알려진 일본 닛신식품은 삼양식품의 ‘까르보 불닭볶음면’을 따라한 모방 상품을 내놨다. 이 제품 패키지에는 한글로 ‘볶음면’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닛신식품 ‘한국풍 아마카라 양념치킨맛 야끼우동’도 농심의 컵라면 제품인 ‘매콤달콤 양념치킨’을 따라한 미투 상품으로 꼽힌다.
중국의 K-푸드 모방 사례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난 5월에는 한국 제품을 모방한 라면, 소금 등을 판매한 중국 업체에 대해 중국 법원이 배상금 지급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중국 법원은 중국 업체들이 한국 식품 업체의 제품 도안, 색상 등을 따라했다고 보고, 한국 업체에 10만~20만 위안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1심 판결이라 중국 업체들이 항소한 것으로 알려져, 최종심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의견도 나온다.
소상공인 사이에서도 뜨거운 원조 논란
식품 업계의 원조 논란은 비단 대기업에만 국한된 이슈가 아니다. 특정 도시나 동네를 상징하는 ‘명물’로 자리매김한 식품도 논란에 휩싸이곤 한다. 강릉 지역의 명물로 알려진 ‘커피콩 모양 빵’도 원조 논란에 휘말렸다. 현재 법정 공방으로 얽힌 업체는 2곳이지만, ‘커피콩빵’, ‘커피빵’ 등의 명칭으로 강릉 지역에 사업자등록이 돼 있는 업체가 20곳이 넘는다. ‘원조’를 가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상표의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서는 상품 개발과 출시, 브랜딩 단계에서부터 식별력(해당 상표를 사용하는 상품과 다른 상품을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을 갖추기 위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식품의 경우 레시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브랜드명의 ‘식별력’, 디자인의 ‘독창성’을 갖추는 것이 권리 보호에 유리하다. 대중적으로 흔히 사용되는 브랜드명이나 디자인은 피하는 것이 좋다.
한 법률 전문가는 “브랜드명과 제품명에 대해서는 미리 상표 등록을 받아놓는 것이 유리하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한 상표의 경우 따로 등록을 하지 않아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에 따라 보호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신규 상표는 불리하다”면서 “예를 들어 이제 막 브랜드가 알려지기 시작하는 타이밍에 누군가 자신의 상표를 따라한다면, 상표권 등록을 해놓지 않은 탓에 뺏겨 버릴 수 있다”고 했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각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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