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원조 논란 ‘지재권 전쟁’

[special] ‘라면’과 ‘라멘’으로 알아보는 특허의 세계
일본의 인스턴트 라멘에서 유래한 대한민국의 인스턴트 라면은 이미 세계적으로 독자적 영역을 만들어 가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의 닛신식품이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을 표절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표절에 대한 법률적 제재를 고려해 저작권 침해, 부정경쟁방지법상의 권리 침해, 상표권 침해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최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의 적용이 확대되면서 아마도 현지에서도 이 법률을 근거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 보인다. 문화와 문명의 발전은 적극적인 교류에서 나온다. 각 나라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단점을 이해하며, 서로 이를 개선할 때 함께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피나는 노력이 투여된 창작물이나 발명에 대한 보호책이 있어야 이러한 발전에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 특허와 관련된 라면과 라멘의 이야기를 알아본다.
[special] ‘라면’과 ‘라멘’으로 알아보는 특허의 세계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 어디서 시작됐을까
대한민국 라면의 세계적인 인기는 식을 줄 모르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라면 회사 중 3대장으로 손꼽는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의 올해 1분기 해외 수출액이 역대급으로 높았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 생활에 필수가 돼 버린 라면의 유래를 따져보자.

이탈리아, 중국 등 각국이 국수의 원조가 자기라고 주장하지만, 아직도 명확히 국수를 처음 만든 나라가 어디인지는 밝혀지지는 않았다. 2000년 초에 중국 황허강 상류의 라지아 지방에서 기원전 2000년 시절의 국수가 발견되긴 했지만, 누구도 이것이 최초의 국수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의 면요리는 명나라에서 일본으로 망명한 주순수로부터 전해졌다고 한다. 한자로 납면(拉麵)에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납(拉)’은 ‘누르다’ 등의 뜻이 있다. 밀가루 반죽을 칼을 이용해 썰지 않고 누르고 늘려서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은 ‘삼양라면’으로 삼양식품(삼양공업)이 일본의 묘조식품(明星食品)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1963년 9월 15일 생산한 것이다. 일본 최초의 인스턴트 라멘은 닛신식품이 1958년에 발매한 치킨라멘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일본의 라멘 제조공법은 특허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아서 일본과 한국의 특허청에서 이들의 특허를 검색해보았고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한민국 ‘특허법’ 제2조에는 ‘발명이란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으로서 고도(高度)한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돼 있다. 특허로 등록을 하려면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인 물건의 발명(기계·도구 등), 방법의 발명(진단 방법·제조 방법·분석 방법 등), 물질의 발명(조성물·화합물·의약품 등), 용도에 관한 발명(DDT) 등이 가능하다. 라멘 자체가 과거에도 존재한 것이기에, 인스턴트 라멘은 새로운 물건은 아니다. 그리고 새로운 물질도 아니고, 새로운 용도를 발견한 것도 아니다.

인스턴트 라멘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기술은 ‘인스턴트 라멘을 제조하는 방법’이다. 삼양라면이 일본의 묘조식품으로부터 기술이전을 받고, 장비를 구매했다는 사실은 분명 ‘제조 방법’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물론 라면의 제조 장비에는 기계특허가 구현돼 있을 수도 있다.

1958년 등록한 일본 즉석 라면 특허 살펴보니
닛신식품의 치킨라멘과 관련된 특허들을 알아봤다. 닛신식품 최초의 특허출원은 ‘조미 건면의 제법(味付乾麵の製法)’이라는 명칭으로 이뤄졌다. 특허출원(출원일: 1958년 12월 18일·공고일: 1960년 11월 16일)에 대해 일본 특허청(JPO)의 자료를 검색해봤다.
[special] ‘라면’과 ‘라멘’으로 알아보는 특허의 세계
닛신식품 최초의 특허는 닛신식품의 창업자인 안모 모모후쿠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토메이 상행(東明商行)이라는 즉석면을 만들던 동종 업계의 기업 설립자인 장국문이 발명하고 출원한 특허를 양도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양도를 받은 날짜는 1961년 8월 16일로 닛신식품의 치킨라멘을 출시하고 한참이 지나서다. 아마 모종의 특허권 침해 분쟁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이에 따라 닛신식품이 해당 특허를 매입했을 수도 있다. 오른쪽 특허 내용 중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청구항이다. 특허권은 청구항이라고 볼 수 있다. 청구항에 기재된 문헌적인 정보에 기초해 필요에 따라 명세서를 참작해 권리 범위를 판단하게 된다. 따라서 오른쪽에 기재된 청구 범위가 바로 닛신식품의 특허권인 것이다.

닛신의 두 번째 특허는, ‘조미 건면의 제법’ 특허 출원과 비슷한 시기에 출원된 것으로 ‘즉석 라면의 제조법(即席ラーメンの製造法)’이라는 명칭으로 출원된 특허출원(출원일: 1959년 1월 22일·공고일: 1960년 11월 16일)이며, 이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인스턴트 라면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닛신식품이 개발한 치킨라멘이고, 장국문으로부터 양도받은 ‘조미 건면의 제법’과 ‘즉석 라면의 제조법’이 치킨라멘에 대한 본질적인 특허다.
[special] ‘라면’과 ‘라멘’으로 알아보는 특허의 세계
장국문의 ‘조미 건면의 제법’ 특허가 먼저 출원되기는 했지만, 이는 토메이 상행에서 출원한 것을 닛신식품이 양도를 받아 등록했다. 반면 ‘즉석 라면의 제조법’은 닛신식품이 최초로 출원해 등록한 것으로 닛신식품의 노하우가 집약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삼양식품(삼양공업)의 특허출원을 검색하다 보니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분명히 업계에서는 삼양식품이 한국에서 라면을 제조해 판매하기 위한 기술제휴를 맺기 위해 노력한 회사가 닛신식품이지만, 결국 닛신식품으로부터 거절을 당해 묘조식품과 기술이전을 진행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삼양식품의 특허를 검색해보니 닛신식품의 특허와 동일한 내용의 특허를 1963년 5월 4일에 출원한 내역이 발견됐다. 즉, 동일한 명세서와 청구항으로 구성된 ‘가미건면의 제조법’이라는 명칭으로 대한민국에서 출원(출원일: 1963년 5월 4일·공고일: 1963년 8월 20일)해 등록까지 한 것이다.

삼양식품은 닛신식품의 두 번째 특허와 동일한 내용으로 ‘치킨(CHIK KEN) 국수의 제조법’이라는 특허를 출원(출원일: 1963년 5월 4일·공고일: 1963년 8월 20일)해 등록까지 완료한다.

특허는 국가마다 발생하는 것이 원칙이나, 등록 요건을 판단함에 있어서 국가 간 제약은 없다. 즉, 일본에서 공개된 특허와 동일한 특허는 대한민국에서 신규성 위반으로 등록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왜 닛신식품에서 출원한 특허들이 기술이전의 대상도 아닌 삼양식품에서 출원한 해당 특허들의 명세서(청구 범위)와 내용이 동일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들 특허 중에서, ‘가미건면의 제조법’에 대해서는 무효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으나, ‘치킨(CHIK KEN) 국수의 제조법’은 1968년 6월 5일자로 무효 확정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special] ‘라면’과 ‘라멘’으로 알아보는 특허의 세계
추측컨대, 해당 특허들은 당시에 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신규성 위반 등의 사유가 있음에도 등록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추후 무효가 되지 않았나 추정된다. 닛신으로부터 대한민국에 라이선스를 받고 특허출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양도받았다 하더라도, 신규성 위반에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명확한 사실관계는 오래전 일이라 알 수 없으나, 당시 라면 산업에 있어서 특허권의 확보(제조 방법)는 매우 중요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한·중·일의 문화 교류는 식문화에 있어서도 꾸준히 지식재산권에 대한 논쟁거리를 불러오지 않을까 한다. 분쟁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무관심이 제일 나쁘다. 적절한 분쟁을 통해 인간은 더욱 성숙할 수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다.

글 황성필 만성국제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ㅣ사진 각 사 홈페이지·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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